김영오 교수

건설환경공학부
어린 시절 미술시간에 한국화의 아름다움은 ‘선과 여백’에 있다고 배운 기억이 난다. 사전에서 여백은 ‘종이 따위에 글씨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자리’로 정의돼 있지만, 우리 선조들에게 여백은 단지 ‘남겨진’ 빈 자리가 아니라 절제를 통해 ‘창조된’ 공간임을 요즘도 한국화를 감상할 때마다 확인하고 있다. 남은 빈자리, 남겨진 공간은 공학 논리로 평가하자면 그 자체로 낭비이며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대상임에 틀림없다. 주어진 공간에 최대한의 정보를 담아야 공학 효율(engineering efficiency)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백의 공간을 창조적으로 설계함으로써 공학 효율을 오히려 높일 수 있는 훌륭한 사례는 건축물에서도 발견된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는 미술관뿐 아니라 도서실, 영화감상실, 디자인, 음악연구실 등 예술에 대한 모든 것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곳이다. 이 건물을 디자인한 렌조 피아노와 쟝 두벨은 퐁피두센터 대지의 1/2을 아무 시설도 없는 빈 공간, 즉 광장으로 설계해 공학적으로는 엄청난 공간 손실을 초래하였다. 대지의 반을 차지하는 빈 여백의 공간은 시민과 예술가들에게 자유로운 공간으로 재창조됐고 그 결과 퐁피두센터를 완벽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격상시켰다. 빈 공간을 뜻하는 여백이 오히려 꽉 채움으로써는 도저히 이루어 낼 수 없는 무언가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주입식 교육으로 하루가 꽉 차있는 사람에게 여백이 존재할 자리는 없으며, 여백이 없는 사람에게 창의적 사고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나라에 선행학습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본인도 고등학교 입학 전에 그 유명한 **영어와 **수학 참고서들을 반드시 미리 떼야 한다는 세뇌를 받고 죽어라 외우고 풀고 하던 세대다. 하지만 요즘은 중학교 입학 전에 고등학교 수학을 모두 끝내야 한단다. 학부형들도 이를 한탄하지만, 똑같이 안하면 뒤떨어지니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러 가지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여백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청소년들에게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사고력과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독창성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목고와 대학입시를 향해 과속 질주해 선행학습에만 올인 해서는 21세기 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만들어 질 수 없다.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멍하니 있는 여백을 돌려줘야 할 시점이다.

여기서 나도 후학들을 위해 한 가지 고백을 해야겠다. 일단 문제가 주어지면 이 문제를 푸는 능력에 있어 나는 내 분야 세계 어느 학자들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를 실생활에서 찾아내고 이를 공학적 문제로 만드는 창의적인 일에서는 선진국 저명학자들의 뛰어난 능력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도 아마 선진국 다른 동년배에 비해 어린시절 사고의 여백이 많았던 세대가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일찍이 여백의 미로 세계적 걸작품을 탄생시킨 선조를 둔 우리가 이제 회복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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