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국가들간 상호작용이자
다양성 인정하는 호혜적 교류
제3자 입장에서 한국문화 돌아보고
타인 이해하는 ‘공평한 관찰자’되길

홍기현 교수

경제학부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언론매체에서 다른 참가국들을 많이 소개 하고 있다. 정상회의 개최와 그 성과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세계화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과연 우리 생활에서 세계화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세계화(Globalization)는 지구 전체 규모에서 시장이 통합되고 각 나라 사람들의 생활이 서로 긴밀해지는 경향을 말한다. 세계화에 대해 한국에서 논의가 많이 되기 시작한 것은 거의 20년 전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려고 할 즈음이라고 기억된다.  선진국 클럽이라고 생각되는 이 기구에 가입하기 위해, 선진국의 위상에 걸맞게 여러 가지 제도들을 고치는 것이 유행처럼 인식돼있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화는 ‘선진국 따라하기’와 동일시됐고, 남을 따라한다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그리 쉬운 일도 아니어서 거부감이 생기기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려고 너무 일찍 자본시장을 개방하여 1990년대 말에 외환위기를 겪게 되었다는 비판도 생겨났다.

그런데 세계화 과정에서 우리들이 잘 깨닫지 못했던 점이 있다. 그것은 세계화란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 작용이라는 점이다. 세계화는 우리가 살아오던 방식을 고수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한편 우리의 삶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호간의 교류과정은 반드시 세계인의 삶을 단순하고 똑같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닮아가기도 하지만, 이질적인 요소가 섞이면서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각 나라의 음식만 해도 20년 전에 비해 몇 배로 늘었을 것이다. 

이런 추세 속에서는 다양성과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한 덕목이다. 필자는 얼마 전 서울대에 논문을 발표하러 온 외국인 학자와 점심을 먹으면서 이 분의 곤혹스런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분은 몇 차례 한국에 온 적이 있고, 고기류를 좋아하지 않아 비빔밥을 시켜 먹는다고 한다. 이 분은 비빔밥의 섞인 맛보다는 들어간 재료 각각의 맛이 좋아서 조금씩 음미해가면서 먹는다고 한다. 이것을 본 옆의 한국 사람이 ‘외국인이 비빔밥 먹는 방법을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해 도와주려 하는 상황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많은 한국 사람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런지, 말로 설명하기보다 그릇을 뺏다시피 해 직접 비벼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식당 종업원들이 그렇게 하는 경우는 그나마 이해가 되지만 비행기에서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옆 좌석의 승객이 아예 비벼놓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사실은 이때 나도 이 분이 비빔밥을 왜 비비지 않나 생각하다가, 비빔밥의 말뜻이 ‘섞어서 먹는’ 것이라는 것을 열심히 설명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무척 창피했다. 우리가 ‘한식의 세계화’를 부르짖을 때  ‘우리가 먹는 방식을 그대로 전하자’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한식을 세계화하자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어떻게 먹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세계화의 진정한 뜻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호혜적으로 교류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우리와 남을 넘어 제3자적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일찍이 경제학의 시조 아담 스미스는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공평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눈이 길러진다고 말한 바 있다. 외국인 학자의 비빔밥 먹는 방법은 제3자적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능력의 중요성을 깨우쳐준 좋은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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