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생사회의 미래를 묻다

‘학생사회의 위기’라는 말이 더는 낯설지 않다. 오래 전 발생하기 시작한 학생사회의 균열은 점점 더 그 틈새가 벌어지고 있다. 결국 올해는 2회에 걸친 총학생회(총학) 재선거마저 무산돼 총학이 1년 간 부재했으며 이번 달에는 사회대, 사범대, 공대 등 오랜 역사를 지닌 단과대 학생회의 선거가 대거 무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학신문』은 항상 ‘학생들의 무관심’으로만 막연히 표현되던 학생사회 위기의 보다 심층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지난달 25일부터 7일간 학부생 802명을 대상으로 학생사회 전반에 걸친 의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은 관악캠퍼스와 연건캠퍼스에서 전체 단과대 학부생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설문 부수는 각 단과대 인원 비율을 고려해 정해졌다. 설문 문항은 △학생사회에 대한 인식 △과/반 및 단과대 학생회에 대한 인식 △총학에 대한 인식 등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그래픽: 유다예 기자 dada@snu.kr

학생들은 학생사회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설문결과 응답자들은 학생사회를 △학생들이 일상생활, 정치 등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공론의 장(35.7%)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통로(20.7%) △학내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목소리를 내는 통로(20.1%) 등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본인들이 속해있는 학생사회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0.4%가 ‘학생사회가 위기’라는 말에 동의했으며 13.3%의 학생들은 학생사회가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외 36.2%의 학생들은 ‘잘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정근식 교수(사회학과)는 “‘잘 모른다’고 대답한 학생들은 결국  현재 학생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나 고민이 없는 것”이라며 “이는 결국 학생사회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한편 응답자들은 학생사회에 참여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로 학생회에 참여(63.5%)하는 것을 꼽았다. 또 90.2%의 학생들이 ‘총학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지난 53대 총학 재선거에 참여했다고 응답한 57.8%의 응답자들 중 77.4%는 ‘지지하는 선본은 없으나 총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투표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또 과/반 및 단과대 학생회가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도 88.6%에 달했다. 이는 학생들이 여전히 학생회를 학생사회의 구심점으로 여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 설문에서 학생들이 지지한 총학의 ‘필요성’이 어떤 종류의 필요성인지에 대해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73.3%의 응답자가 총학이 없었던 기간(2009년 11월~현재)동안 불편한 점이 없었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대학신문』은 학생사회가 다시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학생회를 중심으로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전히 과/반 및 단과대, 총학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임에도 연이은 선거 무산으로 총학은 지난 일년간 부재했으며 상당수의 과/반 및 단과대 역시 학생회 구성에 난항을 겪고 있다.

그동안 서울대 학생사회는 한국사회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안에 목소리를 내왔다. 2007년 제50대 총학은 한·미 FTA 반대, 반미·반전·반핵 평화운동, 비정규직보호법안 반대 등을 총노선으로 삼았으며 2008년 단과대 학생회장단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 결과 2010년 서울대 학부생은 학생사회의 사회 참여를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과/반 및 단과대 학생회가 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7%에 불과했고 총학이 집중해야 할 문제로 ‘사회중대사안에 서울대생을 대표하는 기구로 참여’를 꼽은 비율 역시 9.8%에 그쳐 서울대생들의 탈정치화 경향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설문결과로부터 학생들이 학생 복지만 원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학생회 구성 세력의 전반적인 쇄신을 촉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학내정치조직세력이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들은 대개 추상적이고 이념편향적인 경우가 많아 학생들의 실질적인 고민과 연관성이 떨어진다. 이같은 사실은 총학이 필요없다고 답한 응답자 중 ‘총학후보진영의 이념편향 때문에’ 총학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14.8%임에서 드러난다. 총학이 부재한 기간동안 불편한 점이 없었다(73.3%)는 응답은 비운동권(비권)과 반운동권(반권)이 추진하는 학내복지정책을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연석회의)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학생회가 집중해야 할 문제를 학내사안해결/사회문제참여로 구분하고 이에 따라 학생회를 △운동권 △비권 △반권 등으로 나누는 것은 총학 선거 무산을 해결하고 학생사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구분을 넘어서서 총학, 단과대, 과/반 학생회 등 다양한 차원의 학생회가 가지는 성향이나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쇄신을 촉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학생을 위한 의제설정

학생사회의 구심점인 학생회 중 가장 상위 조직인 총학의 변화 방향으로 크게 두 가지가 제시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에 발맞춰 총학의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는 방안이 있다. 총학이 학생사회를 다시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저변의 고민들을 의제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총학이 설정하는 의제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총학이 갖는 ‘대표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총학 부재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음에도(73.3%) 총학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압도적(90.2%)인 설문 결과는 학생들이 총학의 존재이유를 총학의 대표성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총학이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들은 서울대생의 수렴된 의견을 표출하는 통로가 필요해서(33.7%), 서울대 학생의 대표자가 필요해서(30.6%) 등의 이유로 총학의 필요성을 지지했다. 이는 총학이 학생들의 동의를 통해 구성된 공식 기구로서 대표성을 지니며, 학생들의 의견을 공론화 해 학내·외로 전달하는 공식적 기구로 활동할 자격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연석회의 중앙집행위원장 조성제씨(기계항공공학부·04)는 이같은 설문결과에 대해 “학생들이 학생회를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창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며 “총학이 실무를 처리하는 것뿐 아니라 학내·외 사안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총학이 어떤 사안을 의제로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학생들이 고민하는 가장 실질적인 문제는 결국 ‘취업’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총학이 고용문제에 관한 의제를 설정해야하며 이는 결국 학생사회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고용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학점·스펙쌓기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그와 비례해 학생사회에 대한 무관심도 증대된다. 따라서 총학은 학생들의 취업·고용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을 함께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예컨대 총학이 대외적으로는 막연하게 ‘비정규직 철폐’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실제 서울대생들이 노출돼있는 화이트칼라 비정규직 문제를 부각시키는 등의 노력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준규씨는 “학교에 재학하는 5년동안의 복지가 아닌 앞으로 살아갈 50년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총학이 필요하다”며 “총학이 자신들의 목표를 학생들의 목표와 일치시키고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실질적인 해결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학생들도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총학이 이같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총학 선거는 계속 무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학 구성원의 자질 향상도 필요해

그래픽: 유다예 기자 dada@snu.kr

학생들을 위한 의제 설정과 더불어 총학의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자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 ‘지난 제53대 총학 재선거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답한 42.1%의 응답자 중 35.9%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로 ‘선본들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무능력, 부도덕 등)’를 꼽았다. 그 뿐 아니라 ‘총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대해 60.8%의 학생들이 무능(21.5%), 권력욕(24.5%), 부패(14.8%) 등의 부정적인 항목을 선택했다. 이에 반해 유능(1.9%), 청렴(0.8%), 봉사(7.3%)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에 대한 응답은 약 10%에 그쳤다. 또 총학이 필요없다고 답한 응답자 가운데 총학이 불필요한 이유로 ‘총학후보진영의 무능력과 부도덕’이라고 답한 비율은 25.9%나 됐다. 이를 통해 총학의 참여 구성원에 대한 학생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이같은 인식은 2006년 경력을 속인 학생회장 황라열씨 탄핵사건, 제52대 「실천가능」총학의 식권위조 사태와 지난해 제53대 총학선거 당시 발생했던 투표함 조작, 도청의혹 사건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결국 학생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연이은 총학 선거 무산사태로 이어졌다. 학생사회의 부흥을 위해서는 총학이 ‘서울대 학생의 대표자’로서의 도덕성을 갖추는 문제가 선결돼야 하는 것이다.

과/반 및 단과대 학생회도 활발해져야

건강한 학생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학생 최고 대표기구인 총학뿐 아니라 과/반 및 단과대 학생회의 활성화 역시 중요하다. 과/반 및 단과대 학생회는 기층단위에서 학생들과 가까운 위치에서 함께 생활하며 직접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창구다. 또 입학한 이후 최초로 접하게 되는 학생사회의 실체로서 학생 개개인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설문 결과 학생들 역시 이 사실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반 및 단과대 학생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응답 비율은 88.6%였으며 필요한 이유로는 ‘과/반 및 단과대 행사를 주관하기 위해서(26.6%)’, ‘소속감과 단결력을 높이기 위해서(24.4%)’ 등이 꼽혀 기층단위 학생회의 주된 존재이유가 학생들 사이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대감을 높이는 생활·문화 공동체적 측면에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교지 「관악」 편집장 규원씨(윤리교육과·09)는 “기층단위의 학생회는 학생들 고유의 문화를 만든다”며 “기층단위의 학생회가 사라져 학생들만의 문화 역시 사라지게 되면 결국 무분별한 소비문화가 그 자리를 대체해 학생들은 뭔가를 하는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며 과/반 및 단과대 학생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현재 과/반 및 단과대 학생회의 상황은 참담한 것이 사실이다. 상당수의 과/반 및 단과대 학생회는 현재 대표기구가 없는 상태다. 과/반 및 단과대 학생회가 구성되지 못하는 일반적인 원인은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학생들이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상황의 원인으로 후보자 개인에게 과도하게 부과되는 부담이 지적되고 있다. 자치언론 「Portraits」 편집장 이태호씨(경제학부·05)는 “참여하고자하는 욕구가 있더라도 후보에게 임기 중 많은 희생이 요구되고 이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져 후보자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 공동으로 부담을 나눌 수 있는 또다른 형태의 학생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생사회 전반에 만연한 무관심 역시 지적됐다. 후보자의 부담은 과거와 동일하지만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함께 일할 사람이 부족해져 출마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보완책 마련도 시급해

한편 총학 자체의 구조와 선거 제도를 보완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설문결과 ‘총학이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 중 대부분이 총학 선거방식 자체에 변화가 필요하다(84.4%)고 응답했다. 가장 높은 응답 비율을 보인 개선안은 현행 투표규정은 유지하되 전자투표와 같은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문항(45.2%)이었으며 선거 무산의 근거인 투표율 50%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37.7%)도 높은 응답율을 보였다. 하지만 투표 방식 개정 및 투표 성사율 조정에 대해서 많은 활동가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인문대 전 학생회장 은지씨(고고미술사학과·07)는 “투표 성사율을 낮추면 단기적으로는 선거를 성사시킬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없다면 결국 투표율은 다시 낮아질 것”이라며 “투표 성사율이 하향 조정되면 ‘투표를 안해도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오히려 무관심이 조장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총학이 아닌 새로운 학생 대표 기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각종 사안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이 점차 다양화되는 추세에 총학과 같은 단일한 기구가 모든 학생을 대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보완할 대표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 총학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으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견(9.8%) 역시 존재했으며 그 중 74.1%는 총학을 대체할 대체기구가 필요하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대체기구의 형태로 과/반, 단과대 대표 등이 대의원으로 참여하는 현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 체제가 35.5%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으며 현행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 체제(25.8%)가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학생 대표체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목소리도 높다. 전학대회의 경우 학생 전체의 의견을 보다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전체 대의원의 수가 많아 성사되기 어렵고 의사결정의 효율성이 떨어져 총학 대체기구로 기능하기에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또 실제로 올 한해동안 총학의 대체기구로서 기능했던 연석회의 역시 대표성 부족, 단과대 학생회의 역량 낭비 등의 한계가 지적됐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교지 「관악」 27호(2003년 봄)의 ‘학생회에서 학생평의원회로’라는 글은 “과/반, 단과대, 총학 차원에서는 다양한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제각각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으므로 이를 폐기하고 직접결정, 직접집행을 기반으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학생평의원회 체제로 변화를 꾀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학생회 대체기구에 대한 제안은 여러 한계점을 갖고 있지만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곧 총학이 직선 대표체로서 보다 학생들의 요구에 접근하는 체제로 보완돼야 함을 의미한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 학생들은 학생회의 전반적인 쇄신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학생회를 구성하는 것은 결국 학생들 자신이다. 학생들의 비판과 선택 없이 학생회는 결코 쇄신될 수 없다. 학생회에 대한 우리의 참여의식을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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