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전을 범하다

전을 범하다

이정원 지음|웅진지식하우스|288쪽| 1만2천원
춘향문화선양회가 영화 「방자전」 제작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열녀 춘향의 이미지를 신분상승에 눈먼 요부의 이미지로 격하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방자전」 이 춘향의 명예를 실추시켰는지는 더 따져봐야 할 문제지만 고전의 교훈을 뒤집는 발칙한 상상력이 주목받았은 분명한 사실이다.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에서 『삼강행실도』에 담긴 지배 이데올로기 강화 의도를 폭로한 이정원 교수(경기대 국어국문학과)는  『전을 범하다』에서 13편의 고전들을 새롭게 재해석했다.  ‘권선징악’의 정형화된 이분법은 거부당하고 고전의 성역이 범해진 것이다.

고전에서 ‘선’이라 여겨졌던 사례들에는 ‘악’의 면모가 숨겨져 있다. 예컨대  『심청전』은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선택을 ‘효’라 칭송하면서 ‘공동체의 살인 행위’를 포장한 것이다. ‘효’라는 미명 아래 부모를 위해 자식이 희생될 수 있다는 공동체의 이념이 개인에게 강요되고 눈을 뜨기 위한 심봉사와 부처님 사이에 이뤄진 부당 계약은 은폐됐다.

반면에 부정적 인물로 인식돼온 고전 속 주인공을 구제할 수도 있다. 한 자매를 죽음에 빠뜨렸던 ‘장화홍련’의 계모는 가부장적 사회의 희생양으로 재해석된다. 조선시대 여성은 다산과 고된 집안일로 수명이 짧았을 뿐 아니라 조혼 풍습 때문에 남편은 부인이 죽은 후 후처를 들이는 일이 잦았다. 또 남편이 죽고 나면 전처의 아들이 가장이 되는 가부장사회에서 기댈 곳이 없어지는 후처들은 아들을 꼭 낳거나 남편과 자식 사이를 이간질하는 등 미리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 했다. 이같은 사회적 배경이 ‘계모가 가정불화의 씨앗’이라는 편견을 낳았다는 것이 저자가 ‘계모’들을 변명하고 나선 이유다.

한편 저자는 『장끼전』의 까투리를 다섯 번이나 재가한 방탕한 여성에서 성에 대해 솔직하고 현실에 주체적인 여성상으로 승격시킨다. 성적 쾌락을 자유로이 추구하는 까투리는 홀아비에다 별볼일 없는 장끼를 동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우자로 선택한다. 무례하지도 않고 권세를 뽐내지도 않는 장끼를 택한다면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처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까투리의 선택이 서로 존중하는 단란한 가정에 대한 여성의 소망을 피력한 결과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편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고전들을 삐딱하게 보면 그 속에 숨은 욕망과 모순뿐 아니라 지금의 현실과 맞닿은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우치전』의 전우치가 황금 들보를 훔쳐서 굶주린 백성을 구휼했다는 대목에서 요즘 정치인들이 보이는 선심성 정치쇼를 발견하듯 말이다.

이처럼 현재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 맞게 고전을 재해석하는 ‘고전 다시보기’는 “서로 다른 숨결을 지닌” 고전을 다시 살아 숨 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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