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누가 베이컨을 식탁으로 가져왔을까

누가 베이컨을 식탁으로 가져왔을까

J.M.애도배시오 외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343쪽 | 1만6천5백원
남자가 석기를 들고 거대한 동물들을 사냥하는 동안 여자는 동굴 속에서 아이를 돌보며 남자를 기다린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선사시대의 무대에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간간히 등장하는 여성은 여신이나 여왕의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

『누가 베이컨을 식탁으로 가져왔을까』는 그간 선사시대 무대 뒤의 ‘보이지 않는 성’(The Invisible Sex)이었던 여성을 무대 앞으로 끌어와 새로운 고고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고고학자, 인류학자, 프리랜서 기자로 구성된 책의 저자들은 최신 연구를 통해 남성에게 집중되던 생존과 진화의 공적을 여성에게 돌린다.

먼저 인류 최초의 직업군의 등장과 사회적 관계맺기의 시작은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부터 기원한다. 직립보행을 하게 된 여성의 골반이 점점 좁아져 출산이 고통스러워졌기 때문에 출산을 돕는 산파가 인간 최초의 직업인으로서 등장했다. 또 어미가 아이를 두 손으로 안으며 양육하는 형태가 자리잡으면서 두 손이 부자유스럽게 된 여성이 함께 모여사는 공동체 생활을 택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사회성을 증진시키는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돼 인간이 더욱 사회적 관계에 의존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인류의 큰 특징인 언어의 탄생에도 여성의 역할이 컸다. 어미가 아이를 안심시키느라 재잘거리는 소리가 원시 언어의 모태가 됐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여성들이 아이나 다른 어미들과의 소통을 위해 타인의 감정을 사회적인 언어로 이해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고 이는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여성이 실제로는 진화과정에서 눈부시게 활약했음에도 남성이 진화의 중추라는 인식은 아직까지 뿌리 깊다. 남성이 사냥을 통해 고기를 공급했고 이것이 뇌의 발달과 인류의 진화를 가져왔다고 보는 통설이 그 예다. 그러나 저자는 선사시대에 남자들이 사냥을 해서 얻은 고기보다는 하이에나 등이 남긴 고기찌꺼기를 먹거나 골수를 먹는 일이 더욱 빈번했다고 주장한다. 또 여자사냥꾼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증거로 들며 남자만 사냥한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남성이 곧 진화의 중추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고고학 연구는 남성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남성이 주로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들과 달리 여성이 썼다는 직물, 실 등은 남아있지 않고 썩어 없어져 연구할 수 없었다.

인류 생존과 진화과정에서 여성의 활약을 조명하는 이 책은 여성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거나 남녀를 경쟁 구도에서 바라보지는 않는다. 반대로 남녀 모두 진화 과정에서 위대했다며 젠더간 협력과 균형을 지지한다. 남성의 독무대라 알려졌던 선사시대를 이 책을 통해 여성들에게도 정당하게 되돌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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