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총회는 1992년 채택된 생물다양성 협약(CBD)의 전 지구적 실천을 호소하기 위해 올해를 생물다양성의 해로 지정했다. 그러나 생물다양성 파괴는 단순한 환경 파괴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져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치부되기 일쑤다.  이에 『대학신문』은 국제사회에서 생물다양성 보존 구호가 대두된 배경을 알아보고, 학계에서 논의되는 생물다양성의 개념과 중요성을 살펴본다. 아울러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실천적 방안을 소개한다.

꿀벌이 멸종하면 다음은 인류차례다

지난해 4월 경북 문경에서 꿀벌이 떼죽음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국립수의과학연구원 강승원 박사는 “올해까지 경북 지역뿐 아니라 전국에서 토종벌의 약 80%가 사라졌다”며 “‘군집붕괴’(CCD)라고 불리는 종의 감소 현상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5월 발표된 생물다양성협약(CBD) 사무국의 보고서 역시 “현재와 같은 환경 파괴가 지속될 경우 동식물들이 거의 멸종하고 인간만 남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빠른 현재의 생물 종 감소 속도를 문제로 지적한다. 지난 30년간 생물종은 20분에 한 종씩 사라진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 속도는 자연적 진화에 따른 멸종 속도의 약 100배다. UN은 2010년을 생물다양성의 해로 지정하고 지난 10월 일본 나고야에서 생물다양성 당사국 총회를 개최하는 등 생물다양성의 위기를 알리고 전 지구적인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사라지는 생물 종, 위협받는 생태계

생물 종은 현재 개발, 기후 변화, 외래종  유입 등으로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벌어진 페루 정부와 원주민 간 갈등은 아마존 열대림 생물 종과 생태계의 위기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폐루 정부가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아마존 열대 우림에 대한 광산채굴, 유전개발, 삼림채벌 규제를 완화해 무분별한 생태계 훼손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김원 교수(생명과학부)는 “인위적인 개발로 열대우림을 파괴하면 지구 전체 생태계가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인간의 개발 활동으로 인한 기후 변화와 외래종 유입 역시 생물 종을 크게 감소시키는 요인이다. 강승원 박사는 “1970, 80년대에 이미 태국과 중국 등지에서 벌의 집단적인 멸종이 문제가 됐다”며 “인간의 개발 사업으로 말미암은 환경파괴가 지구적 차원의 기후 변화를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아시아 벌의 종이 감소한 것은 기후 변화에 의한 이상 냉해와 잦은 강우로 벌의 면역력이 떨어져 ‘낭충봉아 부패병 바이러스’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게 유입된 외래종은 생태계 환경을 해치는 주범이다. 박상규 교수(아주대 자연과학대)는 “미국에서 들어온 베스 등의 외래종으로 국내 어류 생태계가 교란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외래종이 유입되면 일견 종이 다양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태계가 교란돼 결국 토종이 서식처를 잃는다”고 말했다.

인간의 ‘유전자변형생물(LMO)’ 이용도 종의 수를 감소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종의 유전 형질을 변화시키면 종의 단일화가 일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이 ‘유전자변형생물체 안전관리 세부시행계획’을 발표하는 등 국내 유통 중인 LMO의 생산 및 수입을 감독하려고 나선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다양성’ 갖춘 생물다양성의 개념

생물다양성의 개념은 이러한 지구적인 생물 종 감소의 위기 속에서 미국 ‘생물다양성에 대한 국가 포럼’ 세미나(1986)에서 처음 정립됐다. 이후 곤충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논문에 사용하며 널리 퍼지게 된 ‘생물다양성(Bio-diversity)’ 개념은 △종 다양성 △유전적 다양성 △생태계 다양성 세 가지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측정된다. 종 다양성은 한 생태계 내에 서로 다른 종의 수를 나타내는 지표이며, 유전적 다양성은 한 종 내에 서로 다른 유전 형질이 공존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국립생물자원관 이상준 연구사는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서는 종 다양성과 유전적 다양성이 함께 유지돼야 한다”며 “종의 수가 풍부해도 한 종 내 유전 형질이 다양하지 못하면 환경 변화가 일어났을 때 한 종이 순식간에 멸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태계 다양성은 동일 면적 내에 상이한 서식 환경이 나타나는 정도를 측정한다. 이은주 교수(생명과학부)는 “같은 지역 안에서도 구조와 기능이 다른 생태계가 공존해야 생태계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면적은 광대하지만 서식 환경이 산림 일변도로 나타나는 캐나다보다 산림, 습지, 초원이 공존하는 아마존의 생태계 다양성이 훨씬 풍부하다. 이 교수는 “아마존의 풍부한 생태계 다양성으로 다양한 생물 종의 공존이 보장된다”고 설명한다. 일례로 아마존 밀림의 나무 한 그루를 잘랐을 때 그 안에서 발견되는 약 1천 마리의 곤충은 1km 거리에 있는 다른 나무를 잘랐을 때 얻을 수 있는 1천 마리의 곤충과 거의 겹치지 않는다. 이상준 연구사는 “아마존의 사례처럼 생태계 다양성이 뒷받침 돼야 종의 다양성과 유전자 다양성이 온전히 보존된다”고 강조했다.

학자들은 현재 지구상의 생물 종이 한대 1~2%, 온대 13~24%, 열대 74~84%에 분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생물다양성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측정하는 기준은 주로 ‘풍부도’와 ‘균등도’다. 수의과학연구인력양성사업단 민미숙 교수는 “풍부도는 한 생태계 내에 존재하는 종의 개체 수와 유전자의 다양성을 측정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풍부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생물다양성’의 개념에서 볼 때 생물 종의 절대적 수와 관련된다. 한편 균등도는 종 및 유전자가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비율에 근거한 수치다. 예를 들어, A종 99개체, B종 1개체가 공존하는 갑 생태계와, A종 50개체, B종 50개체가 공존하는 을 생태계는 종 다양성 측면에서 풍부도는 같지만 균등도는 을이 더 높다. 이상준 연구사는 “동일한 풍부도를 지닌 생태계라도 이질적인 종들이 유사한 비율로 공존하는 것이 생물다양성 보존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B종 1개체의 멸종으로도 갑 생태계에서는 풍부도가 떨어지지는 반면 균등도가 상대적으로 큰 을 생태계에서는 풍부도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생물다양성 보존 외치는 다양한 목소리

생물다양성의 보존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우선 한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이 보장돼야 생물의 에너지 근원인 광합성 작용이 안정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급격한 환경 변화가 나타나더라도 생물다양성이 보존되면 식물 종이 멸종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박종욱 교수(생명과학부)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5°C만 올라도 동일한 수종만 분포하는 생태계에서 식물은 순식간에 멸종할 가능성이 크다”며 “식물의 종이 다양하고, 종 내에서도 유전적 다양성이 증진돼야 식물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인류 역사에서 생물다양성은 생존뿐 아니라 인간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해 왔다. 김원 교수는 “인류가 생물로부터 의식주를 획득해 온 사실은 자명하다”며 “특히 열대림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과 의약품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처방되는 약물의 25%가 열대림의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조제되며 현재 한방의학으로 존속하고 있는 동양의 한약 역시 5천 종이 넘는 동식물을 사용하고 있다.

생태론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주장하며 생물다양성 보존을 주창하고 있다. 반년간지 『생태』 편집위원장을 역임한 박상규 교수는 “친구나 가족이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버릴 수 없는 것처럼 생물다양성 역시 조화와 공존을 위해 그 자체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강승원 박사 역시 “인간은 지구에 사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인 만큼 숙주가 파괴되면 결코 생존할 수 없다”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강조했다. 

이제는 지켜야 할 때

이미 1992년 리우 선언을 통해 생물다양성 보존에 나선 세계적 추세보다는 다소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중앙부처를 중심으로 최근 생물다양성 보존에 나서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9월 한강밤섬을 포함한 14개의 국내 습지를 국제 람사르 습지로 등록하겠다고 발표하며 국가 차원의 습지 보호에 나섰다. 환경부 국가습지사업센터 관계자는 “한강밤섬을 비롯 멸종 위기 종이 다수 서식하는 14개의 습지를 관리해 종 다양성 보존을 증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국가습지사업센터는 2012년까지 23개의 습지를 국제 람사르 협약에 등록한다는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 구체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전라남도는 2007년부터 농지에 친환경 생태 연못인 둠벙(웅덩이)을 조성해 도내 생태계 복원과 종 다양성 증진을 위해 노력해 왔다. 전남 도청 친환경농업과 고민정 직원은 “올해까지 목포시를 제외한 21개 시군에 둠벙을 조성한 결과 35종의 생물을 보유한 자연 둠벙과 큰 차이 없이 33종의 생물을 확보해 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인공 둠벙은 수질 개선에 기여해 생태계 복원에 큰 역할을 한다. 김귀곤 교수(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는 “논에 둠벙을 조성하면 내륙 생태계의 생물들을 연결해 하나의 소생태계를 형성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보존 방안을 뒷받침할 생물 종에 대한 연구와 조사 작업도 절실하다. 지난 7월 입법 예고된 ‘국가생물종기록’ 법안은 국가 차원에서 생물 종에 대한 정보 공유 체계 확립을 골자로 한다. 양병이 교수(환경대학원)는 “개발을 우선시하는 풍토 탓에 환경보호 논의는 배제됐던 게 사실”이라며 “이처럼 멸종 위기 종 파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법안이 마련된 것은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학계에서는 계통분류학을 비롯한 생물다양성 연구를 강조하고 있다. 김원 교수는 “생물의 외관상 차이점을 통해 종을 구분하는 형태학적 분류가 일차적 과제”라며 “그 후에 생물 종의 DNA 정보를 근거로 한 분자계통분류학 연구를 통해 정밀하게 멸종 위기 종을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처럼 자연사 박물관을 통해 국가의 멸종 위기 종을 국민에게 전시하고 홍보하는 작업도 필수적인 노력으로 꼽힌다. 박종욱 교수는 “현재 인천에 소재한 국립생물자원관과 같이 생물 종에 대한 분류학적 연구를 하는 기관이 확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외면했던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 더 늦어져서는 안된다. 이젠 망설이지 말고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다양한 노력의 대열에 합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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