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예술, 지평을 넓히다(下)

음악에서 시작된 크로스오버 열풍이 최근 예술 전반에까지 퍼져가고 있다. 이에 사진과 조각, 과학과 예술, 고대유물과 현대미술과 같이 경계가 뚜렷하던 장르 간의 크로스오버 역시 시도되고 있으며 예술은 그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이처럼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물고 소통을 꾀해 온 예술의 다양한 시도들을 조망해보자.

도예, 평면에 스며들다

물레 위에서 진흙을 빚어 형태를 만들고 이를 구워 그릇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지칭했던 도자기 공예(도예). 유려한 곡선과 입체 위에 새겨지는 독특한 장식으로 예술성까지 더해온 도자기는 기능적 가치뿐 아니라 예술적 가치 역시 인정받아 왔다. 이처럼 입체 예술의 한 영역으로 인식돼 온 도예는 최근 도자기의 가장 큰 기능적 역할이자 예술적 특징인 입체성의 틀을 깨고 평면 예술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두운 전시관 안에서 도자기 조각 위로 비치는 노란 빛은 깊은 밤 호수에 비친 보름달을 연상케 한다. 한국도자재단의 작품 「호수에 비친 달밤」(2009)(오른쪽 아래)은 조각난 백색의 도자기 파편을 모자이크처럼 재배치한 후 LED 조명을 그 아래 설치한 작품이다. 도자와 빛을 결합한 이 작품은 도자기라는 전통의 산물과 LED라는 현대 산물의 조화를 통해 시대를 초월한 예술의 조화를 꾀한다.

미술가 신광석씨는 흙을 구워 평면의 작품을 빚어내는 새로운 도예 형식을 만들어 냈다.(왼쪽 아래) 신광석씨는 입체의 도자기 위에 그림을 새겨 작품성을 더하는 기존 도자기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평면 회화로써의 도예를 시도한다. 그는 조선의 청화백자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흙판에 닥종이를 씌우고 그 위에 청색과 흰색의 기하학적 문양들을 그린다. 청화안료로 그려진 그림은 가마에서 구워져 평면의 도자로 재탄생한다. 이렇게 탄생한 평면의 도자는 기하하적 무늬들을 통해 현대 추상회화의 면모를 드러내며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된다.

장인의 손길로 빚어진 그릇 혹은 입체의 예술품으로 여겨지던 도자기는 이제 그 안에 평면성과 현대적 감각을 담아내며 도예에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이처럼 전통의 틀에 갇혀있던 도예는 이제 현대 기술의 산물, 현대 회화의 산물과 결합하며 새로운 예술의 경향을 만들어가고 있다.

고대유물, 현대미술에 녹아들다

고대의 유물은 당시 사회가 지녔던 문화와 예술의 성향을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고대의 유물들은 수세기를 지나며 후대 예술의 모티브가 되거나 대항예술을 이끌어 냈고 이는 곧 새로운 예술 발전의 근간이 돼왔다. 그러나 고대의 예술과 현대의 예술은 긴 시간의 장벽으로 인해 단절된 것으로 인식돼 왔다. 이에 미술가 신미경씨와 지니 서씨는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고대 예술과 현대 미술의 결합을 시도했다.

물가에 세워진 세 개의 동상은 언뜻 보면 평범한 대리석의 동상이다.(왼쪽 맨 위) 그러나 이들은 비누로 만들어진 조각상으로 대리석이 주는 매끈한 질감을 그대로 표현해 냈다. 대영 박물관 한국관에서 진행된 현대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 선보인 이 비누 동상은 물에 녹아 점차 닳아가는 비누와 같이 역사의 질곡 속에 부식되는 고대 유물의 역사성을 재현한다. 또 진품인 고대 유물 속에 자리 잡은 비누 동상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존하는 예술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신미경씨가 비누를 통해 고대 유물과 현대 미술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재현해냈다면 지니 서씨는 전시 ‘Metal Soundscape(메탈 사운드스케이프)’에서 고대와 현대의 접점을 찾아간다. 철조망 벽 사이에 고려시대의 유물 ‘청동 무인 명소종’을 설치한 이 작품(왼쪽 중간)은 철조망에 갇힌 고대 유물을 통해 고대 유물이 과거에 박제된 채 역사의 기록물로만 전해지는 오늘날의 현실을 꼬집는다. 금속이라는 재료의 공통적 속성을 가진 철조망과 청동종은 마모되지 않는 금속의 속성과 변하지 않는 예술의 속성을 대변하며 긴 시간의 차이에도 공존할 수 있는 고대와 현대의 예술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처럼 역사의 유물로만 여겨지던 과거의 예술과 현대 예술의 만남은 과거와 현대라는 간극에 새로운 가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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