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두리반 불킨 낭독회]

홍대입구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칼국수 가게 두리반. 지난 10일(수)은 이곳에 전기가 끊기고 어둠이 찾아온 지 113일째 되던 날이다. 이날 두리반에서는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 어둡던 두리반에 희망의 불을 밝히고자 ‘제1회 불킨 낭독회’를 열었다.

재개발 사업을 시작한 GS건설은 재개발 지역 건물을 매입했고 용역까지 동원해 철거를 반대하는 세입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이 과정에서 두리반이 GS건설의 강제철거에 맞서 농성을 벌인지도 321일 째. 그동안 두리반에선 다큐멘터리영화 상영제, 인디밴드가 펼치는 칼국수 음악회 등 많은 문화·예술제가 열렸다. 이러한 문화·예술제들은 두리반을 지키고 거대 자본에 맞서는 예술가들의 목소리였다. 이날 열린 ‘불킨 낭독회’ 역시 시인, 소설가, 음악가들이 모여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시를 통해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낭독회에 모인 작가들은 전기가 끊긴 두리반에 불을 켜고 모여앉아 두리반의 현실과 앞으로 찾아올 행복을 주제로 시를 낭독했다.

사진:  이다은 기자 daeunlee@snu.kr

작가들은 두리반의 힘겨운 상황과 고통을 담은 시를 읽어 나갔다. 시인 김명남씨는 자작시 「아, 대한민국 으깨진」을 통해 두리반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아! 언 손 품어주던 세간붙이들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그해 성탄 전날, 개들의 습격으로 쓸려나가버렸고, 가물치 눈빛처럼 반짝이던 전등은 얇은 불빛만 가까스로 매단 채 흘러내리고…’라는 시의 구절은 성탄전야 두리반에 몰아닥친 강제 철거 현장의 모습이었다. 한편 극작가 최창근씨는 상여소리를 듣고 떠올린 외할머니와 그로부터 느낀 감정을 담은 시 「그 섬에 가고 싶다-상여소리」를 낭독하며 이를 두리반의 현실에 투영해냈다. 그는 “외할머니에게서 연상되는 어둠의 이미지와 그리움, 슬픔의 감정은 두리반에 대한 나의 감정과 같다”며 이 시를 낭독한 의미를 이야기했다.

또다른 작가들은 현실의 고통을 딛고 찾아올 두리반의 희망과 행복을 말하기도 했다. 자신을 ‘시 읽는 사람’이라 정의한 시민 박린씨는 박상순의 「나무를 뱉어내는 항아리」를 낭독했다. 시는 ‘청록색 높은 하늘은 항아리가 뱉어낸 버드나무…로 가득 메워지고 있었습니다. 항아리는…온 곳을 더운 여름으로 꽉꽉 메워놓고 있었습니다’라며 버드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겨울을 밀어내는 움직임으로 표현해냈다. 낭독을 마친 그는 “버드나무가 겨울을 밀고 항아리에서 솟아나는 것처럼 두리반도 어둠을 밀어내고 원하는 것을 이뤄내길 바라는 의미이다”라고 말했다. 박린씨가 항아리에서 솟아난 버드나무를 두리반에 비유했다면 시인 이영광씨는 자작시 「반달」을 통해 두리반의 상황을 달에 비유했다. 그는 “달은 반달, 초승달을 거치며 사람의 웃는 모습을 닮아간다”며 “오늘 이 낭독회와 두리반의 상황은 가장 큰 웃음을 보이는 초승달과 초승달 사이 잠깐 있는 어둠과도 같다”며 두리반에 찾아 올 희망을 이야기했다.

낭독회에서는 시뿐 아니라 음악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낭독과 함께 흐르는 음악은 시에 감성을 더했다. 또 낭독을 마친 작가들이 스스로 노래를 부르기도 해 차분하기만 하던 낭독회에는 유쾌한 분위기가 흘러 넘쳤다. “창작행위는 작가의 열등의식을 극복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두리반의 주인 소설가 유채림씨. 그는 “낭독회는 암울한 곳, 어두운 곳, 죽은 곳으로 상징되던 두리반이란 공간의 열등의식을 극복하려는 작가들의 시도였다”며 이번 불킨 낭독회의 의의를 밝힌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철거의 위협에 놓인 현실 속에서도 두리반의 어둠과 스산함은 시의 울림을 배가시켰다. 시와 음악이 함께 한 이날, 두리반은 더이상 초라하고 어두운 곳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두리반은 절망의 공간이 아닌, 불빛이 밝게 타오르는 희망의 공간이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