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하지 않은 금융상품 유통에
소비자는 무방비로 노출
‘안전할 권리’ 보장 위한
금융상품 규제 중심 입법돼야

여정성 교수

소비자아동학부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인 글로벌 금융위기는 모든 경제주체들에 의한 ‘도덕적 해이’의 총체라는 측면에서 수년 전 발생한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사태와 정확하게 맥을 같이 한다. 시장경제의 두 축인 기업과 소비자의 욕심(정확하게는 탐욕)과 무지 위에 정부의 감독책임 방치가 한 몫을 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융위기로 인해 많은 나라에서 금융 감독 실패와 금융회사들의 책임 및 의무에 광범위하게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사실이다. 월스트리트의 입김이 어마어마하다는 미국에서도 이미 금융시장 감독 개혁안이 통과됐으며,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립이 내년 초 개원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국회에 상정돼있는 몇 가지 종류의 ‘금융소비자보호법’(가칭) 안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게다가 현재 금융소비자보호나 분쟁조정 기능이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금융감독 조직이 그동안 소비자보호를 매우 소홀히 해 전혀 신뢰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금융상품에서의 소비자문제는 전형적으로 거래 지위의 불균등과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발생한다. 금융기관의 우월한 협상력은 상품개발부터 피해구제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소비자를 소외시킨다. 이러한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소비자에게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거나 그들이 상품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도록 역량을 강화시키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러나 금융상품에서 발생하는 소비자문제는 이렇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의 역량 강화를 위한 소비자 교육은 당연히 필요하다. 불완전판매로 인한 소비자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분쟁조정기구를 강화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더없이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상품에 대한 품질 규제이다.

금융상품은 더이상 우리가 은행에 가서 간단하게 가입하던 정기예금의 수준이 아니다. 날마다 새롭게 개발되는 복잡해진 금융상품을 일반 소비자들이 완전히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친절한 판매자가 충분히 설명하기만 하면 합리적인 선택에 이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 또한 무모하다. 그러므로 돌팔이 의사에게 몸을 맡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적절하지 않은 상품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걸러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에게는 ‘알 권리’와 ‘선택할 권리’ 뿐만 아니라 ‘안전할 권리’가 있다. 의료서비스나 법률서비스에 대해 상품의 안전성이 결여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규제를 가하고 있음에도 금융상품은 그러한 감시·감독 없이 방치돼 온 것이 사실이다. 자유 시장경제체제라는 이름 아래 안전하지 않은 상품이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건전성 감독’이라는 이름으로 금융기관의 재무 구조에 대한 감독만이 있을 뿐, 금융기관의 행위나 업태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입법과정에서 벌어지는 논란들은 본질에서 매우 떨어져있다.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소비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보다 어느 기구가 감독권을 가질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 마치 관치금융시대로 회귀하는 것 같다고 요란스럽게 반대를 한다. 관치금융과 감독권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어느 부처가 감독권을 갖는가도 소비자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소비자들은 안심하고 금융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바람직한 시장이 형성되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그리고 정부는 그런 시장이 형성되도록 합리적이지만은 않은 소비자와 기업을 향해 감독의 끈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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