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금)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병인양요 당시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외규장각) 반환에 합의했다. 이번 합의에서 정부는 약탈당한 외규장각을 ‘5년 단위 갱신 가능 대여’ 형식으로 반환 받기로 했다. 1993년 양국의 논의 끝에 외규장각을 가져올 때 그 자리에 동급 가치의 문화재를 가져다 놓는다는 ‘상호 대여의 원칙’을 추진했다가 한국 문화재 전문가들의 반대로 무산된 사례를 생각할 때 이는 주목할 만한 성과다. 그러나 외규장각의 역사적 가치를 생각할 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문화계 역시 여전히 외규장각 반환을 위해 그동안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정부가 급작스럽게 프랑스와 영구 반환이 아닌 영구 대여에 합의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이러한 합의가 정부의 체계적 정책과 시스템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미완이 된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화계에서는 이번 합의가 외규장각의 소유권을 온전히 반환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졸속 합의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이번 협상에서 우리의 준비가 부족해 국가 상호 간의 논의 보다는 프랑스 문화재법에 근거한 합의를 도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반환이 아닌 임대라는 결과를 낳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화연대 최준영 사무처장 역시 “5년 단위로 외규장각의 반환 기한이 갱신되지만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문건이나 합의 조항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프랑스가 갑자기 갱신을 파기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정부의 합의를 비판했다. 이렇듯 문화계는 외규장각 반환 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프랑스 정부의 입장에 따라 외규장각의 반환 기한 갱신이 좌우될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성과주의의 온상으로 변질한 문화재 반환 협상, 문제의 원인은?

이처럼 외규장각을 영구적으로 반환받지 못한 정부가 비판받는 상황에서 이번 합의가 문화재 반환을 위한 노력이라기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합의였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이번 정상회의 중 정부는 사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프랑스 측에 영구반환이 아닌 임대 조건을 먼저 제시했다. 최준영 사무처장은 “합의 가능성에 집착한 나머지 협상 가능한 내용만을 프랑스에 요구하는 등 정부의 처사는 문화재를 G20의 성과물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또 “정부는 장기적이고 철저해야 할 환수 절차를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이렇듯 외규장각 반환 협상은 그 결과가 비판받고 있을 뿐 아니라 합의의 목적까지 의심받는 상황이다.

한편 문화재를 정치적 성과물로만 여기는 정부의 태도로 인해 해외 반출 문화재 반환을 위한 체계적 시스템과 정책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이번 협상에서도 정부는 합의가 진행되고서야 전문인력을 꾸리기에 급급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문화재 환수 관련 조치가 미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정부가 마련해온 약탈 문화재 자료를 토대로 협상이 추진될 때마다 적절한 대처를 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실제 문화유산의 관리를 총괄하는 문화재청에는 문화재 환수 문제만을 전담하는 인력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이뿐 아니라 여러 기관에서 독자적으로 조사한 약탈 문화재 자료를 통합 관리하는 부서 등도 전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 내부의 시스템 부재뿐 아니라 문화재 반환 운동을 주도해 온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 체계 역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약탈문화재환수위원회를 구성하거나 해당 국가에 국제 소송을 제기하는 등 문화재 환수를 위한 실질적 활동을 펼쳐 왔다. 그러나 이런 단체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미비하다. 이에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최대한 여러 단체에 지원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단체를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의 입장과 같이 정부가 모든 민간의 문화재 환수 운동에 지원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한정된 예산을 배정할 때 우선 순위를 지정하는 체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4년간 문화재 환수 관련 단체에 지원하겠다고 밝힌 2억4천만원의 예산 중 약 1억2백만원만을 실제 시민단체에 지원했다. 이는 당초 제출한 예산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로 민간 단체가 아닌 각종 문화재 관련 학회나 연구회에 지원하는 예산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환수의 실질적 발판이 되는 시민단체에 배정된 예산이 불과 1억이라는데 문화계는 정부의 환수 의지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문화재 반환의 정도를 찾아

고대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에서는 수십만 점의 문화재가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약탈당하거나 밀반출됐다. 그러나 이집트는 그들의 역사가 담긴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 범정부적인 문화재 반환 노력을 기울이고 문화재 환수 전담반을 꾸려 2002년부터 약 3만1천여 점의 문화재를 환수했다. 이러한 성공 사례에 비춰 본다면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우리 정부의 움직임은 아직 미흡하기만 하다.

최문순 의원은 “정부는 문화재 반환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 예산 등을 보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정부의 체계적 문화재 환수 정책수립이 촉구되고 있는 한편 민관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입장도 있다.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실행위원장 이상근 씨는 “정부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지만 시민단체와 대중의 관심과 참여는 여전히 중요하다’며 “정부와 시민단체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해외 반출 문화재를 반환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공동체의 정체성과 가치가 깃든 문화재는 본래의 역사적 장소에서 보존될 때 그 가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 때문에 제국주의의 폭압 아래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를 제자리로 옮겨오는 일은 시급하다. 이번 문화재 반환 합의를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정부가 문화재 환수를 위한 체계적 정책을 수립하고 해외 반출 문화재들을 역사의 장소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