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에서 살펴본 장애인 이동권의 현재와 미래

자유롭게 움직이고 이동할 권리, ‘이동권’은 2003년에야 국립국어원에 신어로 등재됐다. 비장애인에게는 권리로 인식조차 되지 못했을 만큼 당연했던 ‘이동할 자유’. 인간으로서의 삶을 이루는 모든 일이 있기 전에는 이동이 전제된다. 이동권이라는 말이 등장한 지 약 20년이 된 2022년 현재, 한국 사회 속 장애인의 이동권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그리고 한국보다 약 20년 앞서 이동권에 주목하기 시작한 일본 사회는 어떨까. 『대학신문』은 지난달, 한국과 일본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대학생의 이동 과정을 따라가며 장애인 이동권의 실태를 파헤쳐 봤다.

 

 

 

휠체어를 타면 보이는 것들

◇휠체어 이용자의 험난한 주말 외출=“기사님, 기사님! 휠체어 탈게요!” 전동 휠체어를 탄 정혜인 씨(가톨릭대 생명공학과·18)는 약 15분을 기다린 끝에 저상버스를 탈 수 있었다. 휠체어 이용자는 저상버스가 아닌 버스로는 이동할 수 없기에 버스를 타려면 비장애인에 비해 길게는 2배 이상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저상버스의 수가 아직 턱없이 부족해 발생하는 일이다. 지난 6월 기준 서울시 전체 시내버스의 69.3%가 저상버스로 운영되고 있지만, 광역버스 및 마을버스 노선에는 저상버스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저상버스라고 하더라도 공간이 충분하지 않고 탑승이 어려워 이용을 꺼리는 이들도 있다.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운영하는 김지우 씨(사회학과·20)는 “버스는 승차 거부가 많아 거의 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지하철은 어떨까. 정혜인 씨는 제일 먼저 환승이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1호선 종로3가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니 엉뚱한 곳에 도착한 것이다. 한참 헤맨 끝에 겨우 3호선 승강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 ‘1역사 1동선’, 교통약자가 승강장까지 타인의 도움 없이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한 역사당 최소 한 개 존재한다는 의미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서울시의 1역사 1동선 확보율은 93.6%이며 2024년까지 100%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위치에 대한 안내가 미흡하거나 환승 시 역 밖으로 나가 다른 출구로 재진입해야 하는 경우가 잦은 등, 이미 만들어진 1동선마저도 험난하다. 평소 통학할 때 지하철을 이용하는 정혜인 씨는 “환승하는 길을 찾는 데만 최소 10분, 헤매면 15분 이상 걸린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거나 불시 점검 중인 경우에는 하나 있는 동선마저 이용할 수 없다. 이 경우 휠체어 이용자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 인근 역으로 우회해야 한다.

한참을 헤매다 도착한 승강장에는 ‘주의! 열차와 승강장 간격 넓음’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역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안전발판을 요청했다. 열차가 혼잡해 두 대를 보낸 뒤에야 지하철에 탈 수 있었다. 역무원이 놓은 안전발판 위에 정혜인 씨의 휠체어가 올라가니 발판이 덜컹거렸고, 정혜인 씨가 완전히 타기도 전에 열차의 문이 닫혀 안전발판이 문 사이에 껴 버렸다. 문이 급히 다시 열리며 상황은 일단락됐다. 휠체어 이용자는 역무원을 호출해 안전발판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이를 요청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번거로워 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실제로 정혜인 씨에게 발판을 지원한 역무원은 “역사에 근무한 2년 동안의 첫 안전발판 요청”이라고 말했다. 탑승도 환승도 쉽지 않다. 

대체 이동수단으로 장애인 콜택시(장콜)도 있지만 이마저도 이용하기 쉽지 않다. 귀갓길에 정혜인 씨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장콜 배차를 시도한 지 30분 정도 지나 차를 배정받았다. 정혜인 씨는 “이 정도면 배차가 원활히 된 편”이라고 말했다. 대다수의 장콜 이용자는 예측 불가한 배차 소요 시간에 피로를 호소한다. 서울시 장콜은 미리 예약을 하고 다음날 오전 7시, 8시, 10시에 이용할 수 있는 ‘전일접수’와 필요할 때 배차를 신청해 차량을 배정받는 ‘바로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전일접수가 쉽지 않아 정혜인 씨는 주로 바로콜을 이용한다. 정 씨는 “예상보다 일찍 배차돼 차량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고 5시간까지 기다려 본 적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트렁크 칸에 휠체어를 실을 수 있도록 승합차를 개조한 장콜의 형태에서 기인하는 불편도 있다. 김지우 씨는 “휠체어가 묶여 있는 방식이기에 고정이 미흡하면 심하게 덜컹거리는 데다 사고가 났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도 무섭다”라고 말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서는 장콜과 같은 특별교통수단의 법정 운행 대수를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150명당 1대’로 정해두고 있다. 2021년 기준 특별교통수단의 법정 기준 대수를 충족해 보급률 100% 이상을 달성한 지방자치단체(지자체)는 경기도와 경상남도뿐이다. 같은 해 서울시는 85.8%로 미충족 상태였으나, 올해 서울시 자체 조사에 따르면 109.7%의 보급률로 특별교통수단의 법정 운행 대수는 충족했다. 그러나 장콜을 이용해야 하는 장애인은 중증 장애인에 국한되지 않은 데다 비장애인과 달리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차량은 이용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왼쪽) 미우라 씨가 역무원에게 환승 경로를 안내받는 상황. (오른쪽) 정혜인 씨가 안전발판을 이용해 지하철에 탑승하던 중 안전발판이 지하철 문에 낀 상황.
(왼쪽) 미우라 씨가 역무원에게 환승 경로를 안내받는 상황. (오른쪽) 정혜인 씨가 안전발판을 이용해 지하철에 탑승하던 중 안전발판이 지하철 문에 낀 상황.

◇일본은 무엇이 달랐나=한국은 교통 시스템 정비 과정에서 일본의 시스템을 참고했다. 일본은 1977년 장애인의 버스 승차 거부에 항의하는 ‘가와사키 버스 투쟁’을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후 교통 배리어프리(무장애)법 제정 등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어쩌면 한국의 가까운 미래일 일본에서 미우라 슌페이 씨(조치대 사회복지학과·21)와의 동행은 한국과 사뭇 달랐다. 도쿄 하치오지역에서 출발한 미우라 씨는 역무원의 도움으로 안전발판을 이용해 순조롭게 열차에 탑승했다. 별도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일어난 일이었다. 무려 11개 노선이 교차하는 신주쿠역에서 환승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하치오지역의 역무원이 미우라 씨에게 환승역을 물어본 뒤 신주쿠역의 역무원에게 미리 연락했기 때문이다. 미우라 씨가 하차할 때도 안전발판을 들고 마중 나온 역무원이 그를 도왔다. 그는 미우라 씨의 앞에서 길을 뚫으며 경로를 안내했고, 미우라 씨는 환승 승강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헤매지 않고 탑승했다. 

기자가 방문한 역사 내에는 교통약자를 위한 동선이 잘 정비돼 있었다. 역사 곳곳에는 휠체어로 이용 가능한 경사로가 있었으며 환승 노선에는 모두 승강장까지 바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마련돼 있었다. 여전히 1역사 1동선 완비만을 외치고 있는 한국과 달리, 1역사 1동선이 완비된 일본은 1역사 2동선 논의로 나아가고 있다.

버스를 타고 식사 장소로 이동하는 길, 도로를 지나다니는 버스는 모두 저상버스였다. 정류장에 있는 미우라 씨를 본 운전 기사는 버스에서 내려 수동 경사로를 꺼냈고, 미우라 씨는 빠르게 탑승했다. 일본은 2000년 제정된 교통 배리어프리법에서 기존 버스를 대폐차*하는 경우 의무적으로 저상버스를 출고하도록 규정해 빠르게 전면 저상버스화가 진행됐다. 도쿄뿐 아니라 오사카에서도 이용자 수요에 따라 경로를 설정하는 ‘온디맨드 버스’(On-demand bus)를 제외하고는 모두 저상버스다. 

식사 후 학교에 방문한 미우라 씨는 택시를 이용했다. 일본에서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있는 택시로는 복지 택시와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UD) 택시가 있다. 복지 택시는 한국의 장콜과 비슷한 구조의 민간 택시로, 누워서 이동해야 하거나 무거운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주 이용자다. 이와 달리 UD 택시는 트렁크가 아닌 좌석에 휠체어를 탄 채로 탑승할 수 있는 택시다.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미우라 씨는 복지 택시에 탑승했다. 그는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충분히 편해 복지 택시 이용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미우라 씨의 사례처럼 일본의 장애인은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수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경우 UD 택시에 자유롭게 탑승할 수 있다. 실제 기자들이 도쿄의 거리에서 목격한 택시는 대부분 UD 택시였다. 거리에서 장애인 콜택시를 발견하기조차 어려운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장애인 이동권,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현행 이동권 정책과 사각지대=한국에서도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토교통부는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법에 의거해 5개년 단위의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완벽히 달성되는 경우는 드물다. 일례로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행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을 위한 재정소요분석」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시행된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서는 2021년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42%를 저상버스로 교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이행 실적은 30.6%에 그쳤다. 

계획이 존재하는데도 문제가 여전한 것은 제도가 간과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통약자법은 시행령으로 예외 조항을 두거나 ‘지원할 수 있다’는 식의 임의규정이 많아 규제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교통약자법 조항 중 △국가 차원의 특별교통수단 확보 지원 △저상버스 운행을 위한 정류장 정비 비용 국가 지원 △광역이동지원센터 설치 소요 자금 국가 지원은 모두 임의규정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성가연 활동가는 “예산을 반영하지 않거나 턱없이 모자라게 반영해도 임의규정을 통해 법적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라며 비판했다.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협동조합 ‘무의’ 홍윤희 이사장은 “장애인 이동 편의 인프라를 갖추려면 법으로 규정해 점진적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데, 현행법은 사업자들이 해당 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라고 꼬집었다. 

현 정책의 관심 밖에 놓인 부분도 존재한다. 대중교통에 집중하는 한국의 장애인 이동권 논의에서 장애인의 자가용 이용은 논외다. 일본은 장애인용 자동차 개조 사양이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다. 차량 개조를 위한 비용 지원 및 자동차 취득세와 자동차세 면제 혜택도 있다. 반면 한국은 장애인 차량 개조에 관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관련 규정 또한 미비하다. 김필수 교수(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는 “장애인 개조 차량은 제도적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 구조 변경 검사를 받지 않고 제작돼 위험한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 자가용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이동권 보장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우리나라는 고용 상태인 장애인에 한해 일률적 비용 지원이 이뤄질 뿐 장애 종류에 따른 면밀한 지원책이 전혀 없다”라고 짚었다. 

◇예산 편성 부족=더군다나 국가 차원에서 편성되는 예산 규모는 계획 이행에 필요한 예산 규모에 비해 현저히 낮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의 저상버스 도입 목표치 달성을 위한 소요 비용은 4,317억 원이었으나 실제 편성 규모는 2,364억 원에 불과했다. 한국은 현재 저상버스로 교체하는 운수업자에게 저상버스와 일반(고상)버스 가격의 차액(약 0.9억 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하며, 국가와 지자체가 각각 50%(서울시의 경우 국가가 60%)씩 부담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민영 운수업체에 저상버스 도입을 요구하려면 국가의 보조금 지원이 필수적인데, 사업비가 부족하니 저상버스로의 교체에도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장콜과 같은 특별교통수단의 경우 지자체 주관 사업인 만큼 지자체별 재정자립도 및 재정 규모에 따라 보급 여부가 천차만별인 것 또한 큰 문제다. 국토교통부의 ‘2021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특별교통수단 보급률은 가장 낮은 부산이 64.6%, 가장 높은 경기도가 112.7%로 거의 두 배의 차이를 보였다. 

 

배리어프리에 다가가려면

◇예산 확보를 위한 과제=국회예산정책처장을 역임한 김준기 교수(행정대학원)는 장애인 이동권 관련 예산 규모를 키우기 어려운 이유를 “한정된 예산 내에서 우선순위 싸움이 벌어지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전체 예산에서 복지 지출이 적은 데다 그 안에서도 여러 항목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평가해 예산을 배분하기에 장애인 이동권 예산만 단숨에 늘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에 편성하는 예산의 규모를 비약적으로 확대하기가 쉽지 않다면 예산을 부담하는 주체를 분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일본의 경우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시설 설치에 드는 예산을 국가와 철도 회사 등의 기업이 협의해 함께 부담한다. 가령 2000년 교통 배리어프리법 제정 시 일본은 중앙정부, 현과 시정촌*, 사업자가 3분의 1씩 엘리베이터 설치 비용을 분담하는 ‘엘리베이터 설치 조성 제도’를 실시했다. 일본DPI(국제장애인연맹 일본지회)는 “이 제도에 의해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대폭 증가했다”라고 평했다. 나아가 올해 일본은 국토교통성과 철도 회사의 주도로 ‘철도역 배리어프리 요금 제도’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전철 운임을 인상해 배리어프리화에 쓰일 예산을 충당하려는 것이다. 요금 인상률은 국민의 반발을 사지 않는 선에서 점진적으로 인상되도록 책정됐다. ‘장애인의 자립과 완전 참가를 목표로 하는 오사카 연락회의’(장대련)는 “모니터링 결과 해당 제도를 공표한 후 반발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라고 해설했다. 

예산 확보와 더불어 지출의 효율화도 이뤄져야 한다. 장애인 이동권 증진이 여러 부처와 관련된 과제인 만큼 부처끼리 긴밀히 협력해 예산을 활용하는 것이 과제다. 현재는 장애인 이동권 관련 정책을 여러 부서에서 파편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 따른 특별교통수단 도입은 국토교통부에서, 특별교통수단 이용자 수 산정 및 이용자 설문 조사는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하는 식이다. 이에 대해 서현수 교수(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는 “부처 간 칸막이가 높아 예산 및 정책을 총괄하는 일관된 주체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장애인 이동권 증진이라는 큰 틀하에서, 개별 지자체장이나 정부의 임기에 구애받지 않고 장기적·체계적으로 사회 서비스 전반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당사자의 목소리=우리나라는 정부가 간헐적으로 개최하는 토론회나 행사 외에는 장애인 이동권 정책 수립에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창구가 거의 없다. 이에 서현수 교수는 장애인 당사자로 구성된 위원회가 행정 기구로 설치된 핀란드의 사례를 소개하며 “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된 정책 생태계의 구축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일본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스가와라 마이코 교수(토요대 인간환경디자인학과)는 “일본은 약 300개 정도의 지자체에서 배리어프리 위원회를 설치해 단기, 중장기,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고 꾸준히 점검한다”라고 전했다. 또한 장대련은 “오사카부와 300명 규모의 ‘올라운드 협상’을 30년째 지속해 오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올라운드 협상은 장애인 당사자가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소통 창구다. 해당 회의에서 제시된 의견은 정책 당국이 수렴한 후 철도 및 버스 회사 등에 개선을 권고하는 절차로 이어진다. 최근 사례로는 일본DPI에서 국토교통성에 요청서를 제출해 UD 택시의 장애인 승차 거부 문제를 시정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일본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는 피상적 절차 참여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 꼭 필요한 지침이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장애인 단체 간의 연대도 필수적이다. 장대련과 일본DPI는 장애계의 요구가 정부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를 “정치적 성향이 상이한 단체들이 이동권 보장이라는 목표로 결집해 하나의 목소리를 낸 덕분”이라고 풀이했다. 반면 한국의 장애인 단체는 정치적 성향 및 방향성에 따라 갈려 맞불 집회를 벌일 만큼 분화된 상황이다. 일본의 사례는 ‘장애인 이동권 증진’이라는 큰 틀에서 협의를 통해 의제를 수렴하고 함께 목소리를 낼 필요성을 보여준다.

 

 

이동권 증진, 모두를 위한 변화

◇근본적인 변화는 인식 변화에서부터=지금까지 한국의 장애인 이동권 증진 노력은 통계와 수치에 집중한 채 이를 달성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 왔다. 장애인 단체가 시위를 통해 강력한 목소리를 내면 정부는 개선을 약속했지만, 관심이 사그라들면 약속 이행이 지지부진해지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이 과정에서 개선이 지속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들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올해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여러 차례 발의했지만, 이동권 시위로 대중에게 화제가 된 문제에 관련한 개정안만 통과됐을 뿐 다른 개정안은 일말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기각됐다”라고 털어놨다. 이번에도 거듭되는 승하차 시위 방식에 관한 옳고 그름에 초점이 맞춰졌을 뿐, 장애인 이동권 자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미비하다.

“사람이 변해야 한다.” 국가와 분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핵심적 차이도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일본에서는 배리어프리에 관한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 이를 토대로 미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반이 지속해서 마련되고 있다. 가와사키 버스 투쟁 때부터 이동권은 대중에게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특히 2020 도쿄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배리어프리화를 향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후 아카바 가즈요시 전 일본 국토교통상과 같은 정책 결정권자들이 배리어프리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아카바 장관은 취임 이후 아키야마 테츠오 교수(주오대 연구개발기구)등 저명한 교통 전문가 및 장애인 단체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후 국토교통성과 장애인 단체 사이의 연락망이 형성됐고 정체 상태였던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빠르게 진전됐다. 배리어프리의 필요성에 관한 국민 전반의 공감대가 생기고 정책 결정권자도 이에 부응하며 변화를 지속해 나가기 위한 체계가 구축된 것이다. 

예산도, 정책도 결국 관심의 문제로 귀결된다. 김준기 교수는 “예산은 정치적 판단의 문제”라며 정치적 우선순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대중 공감을 많이 이끌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애인 이동권 예산에 관해서도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 장애인 이동권 증진의 필요성에 대한 전반적 공감대가 높아져야 예산 편성에도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노력이 시혜적 복지의 차원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당연한 일이라는 인식부터 자리 잡아야 한다. 

◇유니버셜 디자인, 모두의 이동권을 향해=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사회는 곧 모두가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 엘리베이터 및 다목적 화장실의 미비, 저상버스 부족 등의 문제는 장애인뿐 아니라 유아를 동반한 부모, 어린이, 노약자 등 다양한 교통약자가 함께 겪는 문제다. 일본에서는 이동권에 관해 휠체어 이용자뿐 아니라 여러 교통약자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장대련은 “오사카 장애인 운동에는 누구나 탈 수 있는 지하철을 목표로 여타 교통약자와 장애인이 함께 참여한다”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함께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하는 과정에도 여러 종류의 장애를 가진 당사자와 교통약자가 두루 참여 중이다.

전 세계는 모두의 이동권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에 주목한다. UD는 연령, 성별, 국적, 장애의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건축, 환경, 서비스를 가리킨다. 한국에서 UD에 관한 논의는 아직 시작 단계다. 반면 일본에서는 UD를 중심에 두고 이동권 증진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가령, 교통 설비 외에도 각종 편의시설의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 학생들과 함께 ‘배리어프리 맛집 지도’를 제작한 마츠모토 세이이치 교수(긴키대 경영학부)는 “이동 자체의 편의는 많이 개선됐으나, 식당이나 스포츠 센터 등 이동 후 방문하는 목적지의 접근성, 즉 건축 분야의 UD를 이루는 것이 지금의 과제”라고 짚었다. 일본은 또한 UD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스가와라 마이코 교수는 “일본은 현재 초등학교 4학년과 중학교 2학년 교육과정에서 배리어프리 및 UD에 대한 수업을 실시한다”라며 “이동권이 진전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UD를 이해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다쳤을 때, 무거운 짐을 들었을 때, 유모차를 끌었을 때 등 누구든 언제나 교통약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외침은 결과적으로 모두를 위한 외침이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길이 막히면 지하철을 탈 수 있고, 버스가 오지 않으면 택시를 탈 수 있는, 비장애인에게 당연한 선택지가 장애인에게도 동등하게 보장돼야 한다. 완벽한 배리어프리는 없겠지만, 그 이상을 향해 꾸준히 걸어갈 때 비로소 모두가 더욱 편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에 가까워질 것이다.

 

*대폐차: 버스 등 운수업에 사용되는 차량을 다른 차량으로 교체하는 것.

*시정촌: 일본의 기초 행정구역 체계로 기능적 측면에서 한국의 시·군·구와 유사하다.

 

삽화·인포그래픽: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레이아웃: 채은화 기자 chae129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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