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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연혁 만드는 사람들 찾아오시는 길
1. 1952년 2월 4일 凡대학신문으로 탄생

『대학신문』은 6·25 전쟁 중 부산의 한 인쇄소에서 탄생했다. 당시 부산으로 내려온 각 대학이 전시연합대학으로 통합됐을 때 대학당국과 학생들은 의사소통 기구로서 범 대학적인 신문의 발간을 요구했고, 이에『대학신문』이 만들어졌다. 1953년 10월 환도 이후 각 대학이 제 각기 신문을 복간하면서 『대학신문』은 사실상 ‘서울대 신문’의 성격을 갖게 됐다.

『대학신문』은 그러므로 종래에 흔히 있었던 어느 한 대학의 교수와 학생간의 동인지와 같은 체제와 내용을 떠나서 범 대학의 공기(公器)로 출발한다. 이리하여 각 대학의 석학 독학들의 주장·견해·연구보고는 물론이요, 국내의 문교행정면(文敎行政面) 학계의 뉴-스와 해외의 학계·문화계의 동향도 수시로 보도하고 그 위에 대학생활 전반의 이모저모를 지면에 수놓아 가면서 서상(敍上) 대학 임무 완수의 협조에 매진하려한다.

1952년 2월 4일자『대학신문』 창간호 발간사 중

2. 1960년부터 1980년: 근현대 굴곡의 역사를 함께 하다

1950년대 이후『대학신문』은 대사회적 발언을 꾸준히 이어 나갔다. 5·15 부정선거 당시에는 이를 비판한 황산덕 교수의「국민을 적대시하지 말라」, 한태연 교수의「5·15는 민권의 승리」라는 기고가 문제돼 신문이 회수되는 소동도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대학신문』은 학생처 주관으로 제작돼 편집의 독자성을 잃고 사회적 발언력도 저하됐다.
그러나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학생들의 사회참여 의식이 고조되고, 이는『대학신문』의 편집과 운영에 그대로 투영됐다. 종전의 편집위원회가 자진해산했고 다시 편집국 내 국장과 기자가 편집권을 전담하게 됐다. 4·19혁명 직후 발행된 290호는 「혁명의 불길 - 4·19의 기록」을, 291호는「제2공화국 특집」을 다뤘으며 1961년 4월 17일에는 신문 8면 전체를「4·19혁명 1주년 특집」으로 채우기도 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18일(월)자 신문에 「쿠데타 성공, 학원은 평온」이라는 기사가, 5월 25일(목)자에는 「4·19와 5·16은 동일목표」라는 기사가 실리는 등 그동안 지켜온『대학신문』의 비판정신은 급속히 후퇴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대학신문』은 학생들의 정치적 요구와 대학당국·정부로부터의 압력 사이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1966년 11월『대학신문』의 어용화 시비로 학생기자가 총사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편집방향도 사회비판보다 지적 풍토 확립과 학문발전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수정됐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대학 민주화의 열기가 높아지자 당시 모든 언론이 계엄당국에 의해 검열을 받는 상황이었음에도『대학신문』은 ‘계엄철폐’, ‘유신잔재일소’ 등을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1980년 5월 12일(월)에는 ‘민주화 열기 날로 고조’라는 제목으로 『대학신문』 최초의 호외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 5·17 이후 이러한 대학자율화의 열기는 식어『대학신문』의 목소리는 다시 학내로 축소되고 학생편집권도 제한됐다. 결국 1981년 11월 2일(월)자 1면 머리기사인 대학축전기사가 문제가 돼 당시 재직한 학생기자 모두 사퇴했고 무기정간을 했다. 이듬해 3월 학부생 기자들의 편집권이 크게 제한된 사칙 하에서 신문이 발행되자 『대학신문』 수령거부사태가 빈번히 일어났고, 1982년과 1983년에 두 차례나 학생들로부터 화형식을 당하는 등 점점 독자와 유리돼 갔다.

그 때 대학신문사는 시간의 한 가운데 떠 있는 하나의 섬과 같았다. 우리는 시간의 파도를 헤치고 도서관 6층의 대학신문사를 설산의 등반대처럼 악전고투하며 올랐다. 대학신문사 복도와 계단은 항상 어두웠고 실존과 역사의 무게는 어둠의 한 자락 끝에 덩이져서 우리의 내면에 달라붙었다. 퇴계로에서 악을 쓰면서 만든 신문은 그 다음날이면 불태워지거나 버려지거나 어용신문으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그 때 우리는 정말 어용신문을 만들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실존은 정말 형편없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조영복 문학평론가, 1985~1986년 학생기자

3. 1990·2000년대: 신문의 질을 제고하려는 자체 혁신의 노력

1984년 학원자율화 조치 후 학생 기자들의 편집권 축소는 점차 해소됐다. 1986년 학생처에서 분리·독립한데 이어, 1988년에는 학생기자가 편집장을 맡아 편집의 자율화를 이뤘으며 1993년에는 최초로 기자 찬반 투표로 학생 편집장을 선출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에는 신문의 질을 제고하고자 자체 혁신이 단행됐다. 1989년 당시로는 이르게 가로쓰기를 실행한데 이어, 1993년 사진부를 신설해 상황 전달에 더욱 충실하고자 했으며, 1995년에는 한글 전용을 시작했다. 1994년부터는 책면과 과학면이 신설되고, 사회부가 취재부에서 독립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학생들의 관심영역은 다양해진 반면 이를 공유하는 폭은 줄어들었다.『대학신문』은 이런 환경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 학생 사회의 변화부터 학교 운영, 서울대에 대한 사회 각계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2006년 1학기에는 지면개편을 단행해 종합면, 독자마당면, 의견면에 사회, 문화, 학술, 책, 기획, 섹션면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상황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위기는 항상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 위기는 존재하는 그 모든 것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위기가 있었기에 저항이 있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발전 혹은 진보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위기가 없는 것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요. 저는 이것을 ‘운동’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선배들은 매학기를 ‘최악의 학기’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만큼 신문사의 위기는 매학기 있어왔고, 보기에는 아래로 끝없이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항상 절망적이었고, 때로는 패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선배들은 언제나 해답을 찾았습니다. 학생편집권도 되찾았고, 사회부도 건설했고, 고학번 기자를 뽑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번 주까지 우리는 대학신문을 만들었습니다.

이경용, 1997년~2000년 학생기자

4. 다시 한번 잠들지 않는 시대정신을 담아

반백년의 역사를 넘어 선 지금,『대학신문』은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려 한다. 한국 사회의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서울대의 위상과 발전상을 점검하고 최신 학문 동향을 전달함으로써 창간사에서 밝힌 ‘범 대학인의 공기’가 되려한다.
이를 위해 학내외 독자가 어디서든『대학신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와(www.snunews.com)과 모바일 페이지(m.snunews.com)를 운영중이며,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트위터(@snunews)를 활용하는 등 온·오프라인에서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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