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수첩]

장도현 기자

에이즈 관련 활동가들과 통화하던 중 어떤 분에게 다음과 같은 답을 들었다. “에이즈의 날을 맞아서 또 언론에서 반짝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 아무리 절실하게 설득을 하며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분의 태도는 너무도 완고했다. 아무리 호소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현실이 지겹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활동가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에이즈를 바라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에이즈 환자들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에이즈에 관련한 언론의 황색 보도를 접한 순간 우리는 그들을 기피해야 할 존재로 규정짓는다. 우리들은 에이즈 환자를 전적인 타자로 규정해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도리어 그들을 소수자라는 이유로 은연중에 배제하고 차별한다. 기자와 대화했던 활동가도 이같은 우리들의 모순되는 행동에 질렸을 것이다.

사실 기자가 에이즈 환자들을 직접 만났을 때 가졌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과 대면하기 전에는 ‘에이즈 환자들은 같은 인간이니까 이들에게 거부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에이즈 환자와의 동행은 기자가 평소 자연스럽게 여겼던 행동들까지도 망설이게 했다. 친구들과 맛있게 먹었을 곱창도 그의 젓가락이 오가자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함께 간단하게 술을 마시고 “만나서 반가웠다”며 악수도 나눴지만 낯설음과 찝찝함만 남았다. 에이즈 환자를 괜스레 경계하는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문득 다시 생각해봤을 때 그는 기자를 위협하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카뻘인 학생 기자에게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자기 쪽에 있는 음식을 젓가락으로 옮겨줬을 뿐이다. 또 에이즈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기사로 다루겠다는 기자가 기특했기 때문에 헤어지면서 악수를 청한 것이다. 기자가 그를 배제해야 할 타인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기자를 배려해야 할 ‘우리’로 바라봤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면역력이 떨어져 병에 노출되기 쉬운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그들은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는 감기에 걸릴까봐 걱정하는 약자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약자라고 규정하면서 그들을 가해자로 만들었다. 사실 가해자는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똘똘 뭉쳐 그들을 차별했던 우리다. 오는 12월 1일은 ‘제 5회 에이즈의 날’이다.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배려의 손길을 내밀어 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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