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환경과학부
하루하루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현상에는 법칙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현상들 사이에 공통적인 규칙이 존재한다. 여름철 급격히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이 비를 내리고 수명을 다 할 때까지는 수시간이 걸리지만, 태풍이 다가오고 소멸하는 데는 적어도 수 일이 걸린다. 그런가하면 엘니뇨 같은 기상현상은 수개월에 걸친 장기적 현상이다. 한편 이들이 영향을 주는 공간 규모를 살펴보면 기이하게도 시간 규모가 큰 것일수록 넓은 지역에 걸쳐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작은 규모의 기상현상은 지속 시간이 짧고 큰 규모의 기상 현상은 지속 시간이 길어, 공간 규모를 시간 규모로 나누면 일정한 비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삽시간에 빌딩과 숲을 초토화하는 토네이도와 같은 현상이 한반도를 모두 덮고 한 사흘간 지속하는 예는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태풍이 수시간 내에 소멸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가끔 이러한 규칙이 우리 일상에서 일의 시급성과 중요성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음은 신기하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아마도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순서에 따라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x축과 y축을 그린 후, 각각의 축에 일의 시급한 정도와 가치 정도의 점을 찍어 보자. x축 값이 증가할수록 시급성이, y축 값이 증가할수록 가치성이 크게 말이다. 적어도 필자와 관계되는 일들은 기상현상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비율을 가지고 일어나고 있다. 급박하게 다가오는 마감일에 임박한 보고서 제출이나, 각종 위원회의 참석, 여러 회의로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방황하는 청소년기 자녀들의 문제를 듣고 조언을 하거나 학생을 지도하며 그들의 숨은 재능을 깨우는 일들은 뒷전에 밀리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그 뒷전의 일들이 훨씬 중요하며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음에 놀란다. 나는 그 중요한 일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고 현재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장 그리 값어치가 있어 보이지는 않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없다며 중요한 일을 경시해 온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잘 알려진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인 송해씨에게 프로그램을 30년씩이나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답이 의미심장했다. 송해씨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어. 원한다고 되지도 않지. 시청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것을 하면 되는 거야’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그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꿰뚫고 있었다. 몇 년 전 해외 출장을 다녀오다 비행기에서 읽은 기사가 생각났다. 이십대에 일본에서 하와이로 이민 간 뒤 50여 년 동안 한 음식점을 운영해온 할머니 이야기였다. 작은 주방에서 손수 음식을 만드는 그 할머니는 성공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손님을 위해 일하면 되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이들은 손님이 아닌 자기를 위해 일한단다. 사업이 좀 될라치면 무리하게 확장하고 자기를 선전하고 다니다가는 결국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 할머니 이야기가 송해씨의 성공비결과 궤를 같이함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학생을 지도하고 연구하는 일을 천직으로 삼은 내가 이제껏 나 스스로를 위해 살아 온 것은 아닐까? 가치는 크나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어떤 일들을, 특히 학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무언가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지금은 그리 급해 보이지 않지만 분명 보다 가치 있을 학생들을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 주위를 돌아보아야겠다. 송해씨나 그 음식점 주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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