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과목 축소하는 수능개편안은
시야 좁은 ‘강력한 문외한’ 만들 뿐
제도수정보단 본질적 개선으로
참된 안목 기르는 교육 행해야

국어교육과 박사과정
지난 18일(목) 수능이 끝나고 요즘 거리는 수험생 할인 행사로 시끌벅적하다. 인생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시험을 하나 끝내버린 고3 학생들이 지금 얼마나 홀가분할까를 생각해보면 수능을 본 지 10년이 넘는 나까지도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다.

그렇지만 기실, 요즘 수험생들은 수능을 보고도 내가 상상하는 것만큼 홀가분하지는 않다고 한다. 복잡한 입시제도로 인해 각 대학의 입시 전형을 알아보고 그에 맞춰 자신의 성적을 분석해보는데 골몰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시 면접, 논술, 정시, 게다가 새롭게 도입되기 시작한 입학사정관제까지, 입시 제도가 어찌나 복잡한지, 이것을 혹자는 ‘엄마 수능’이라고 부를 정도다.

갑자기 툭 튀어나와 엄마들을 당황케 한 입학사정관제와 더불어, 정부에서는 ‘2009개정교육과정’과 ‘2014수능개편안’을 새롭게 발표하였다. 요지는 ‘이수 교과목의 축소’이다. 새 교육과정에 따르면 학기당 이수 교과목이 축소되고, 선택한 과목만을 집중이수할 수 있으며, 교과별로 수업시수의 20%를 학교의 재량으로 증감 운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수능에서도 역시 선택과목이 축소되고 문이과별로 각각 다른 범위와 난도의 문제가 출제된다고 한다.

이것은 늘 그래왔듯 ‘학교 교육의 정상화’와 ‘사교육 근절’의 기치를 걸고 있지만, 늘 그래왔듯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 이수 교과목이 축소·집중되면 결국 어떤 과목이 축소되고 어떤 과목이 집중될지는 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이제 영어, 수학에 ‘올인’하는 동시에 문과 학생은 수학, 과학에, 이과 학생은 국어, 사회에 ‘보다 강력한’ 문외한이 될 것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경쟁의 구도가 정해져 있을 때, 학생들이 10과목을 공부하든 2과목을 공부하든 고생하기는 매한가지라는 점이다.

학교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입시 제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입시 제도로 인해 학생들 자신이 공부하는 내용에서 ‘소외’된다는 데 있다. 학교에서 문학을 배우는 것이 학생들 스스로 독서를 즐기고 그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안목을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내신과 수능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전락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과 학생이 12년 동안 문학을 배우고도 수능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볼 일 없을 것이라며 아낌없이 ‘현대시 100선’을 버려버리는 장면이 그 왜곡의 결과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지금의 교과과정 개편은 학교 공부 자체가 학생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악의 근원이므로 최대한 적게, 골라서 배우게 해주면 조금이나마 학생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몇가지 주요 과목에만 편중해 공부하고, 하나의 교과목마저도 갈가리 쪼개져 그 중 한 둘만 골라 배운 학생들은 더더욱 자신이 공부한 내용의 근원적 의미가 무엇인지 알 도리 없이 학교 공부에서 소외돼갈 수밖에 없다.

지금 교육 문제의 핵심이 교과목의 양적 과중이 아닌 질적 변질에 있는 만큼, 앞으로의 교육 개편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과목들이 실제로 학생들의 삶에 의미있는 것이 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야장천 입시제도만 주물러터트릴 게 아니라, 정부, 학계, 교육 현장이 함께 교과 교육의 실제적 내용과 방법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학교 교육이 고등학생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본질적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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