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손혜영 기자 rewjie@snu.kr

백주지창(栢舟之唱)

백주지창(栢舟之唱)

백주지창(栢舟之唱)김진규

등장인물: 유몽인, 정회, 은개, 광대, 막동, 낭관(郎官) 1, 2, 의금부 하리(下吏) 1, 2

때: 1618년 3월 28일. 대북이 계축옥사를 통해 영창대군을 사사(賜死)하고, 인목대비의 폐모정청을 이용하여 정권을 독점한다. 계축옥사의 빌미를 제공한 강변칠우의 은상 도적질(1612년)에서 박치의가 홀로 도망쳐 아직 잡히지 않았으며 전국에서 역적에 대한 고변이 끊이지 않는다.

남산 중턱. 유몽인, 은개, 정회 세 사람이 무대 가운데 둘러 앉아 봄놀이를 하고 있다. 광대 오른쪽 구석에 엎드려있다. 무대 위 인물들은 아무도 그를 보지 못한다. 의금부 하리 1, 2는 무대 뒤편에 정좌하고서 해금과 대금을 연주한다. 반주에 맞춰 은개 노래한다. 조명, 점차 밝아지며 술자리를 비춘다.

은개 (일어서서 관객을 보며)
조화로운 사슴의 울음소리여 들의 쑥을 먹네
내 아름다운 손님을 두니 덕음이 매우 밝아서
백성에게 보여 박하지 않게 하니
군자가 이에 법삼고 본받으리로다
내 맛 나는 술을 두니 아름다운 손님이 잔치 벌여 노네

呦呦鹿鳴 食野之蒿
我有嘉賓 德音孔昭
視民不恌
君子是則是傚
我有旨酒 嘉賓式燕以敖

유몽인 (만족해하며) 노래 잘하기로 성내 제일이라더니, 옥같은 목소리가 그지없구나. 10 여 년 전 내 너를 승형에게 맡겼을 땐 사낸지, 계집인지 모르겠더니 어느새 노래하는 꽃이 되었구나. 녹명이라, 그래 네 주인이 골라준 노래이더냐.

은개 어르신의 안색과 풍경을 살펴 노래하라 하셨고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에 풍광이 명민하고 고요한 술 잔 위에 웃음소리 일렁이니 태평성대에 성군이 벌였던 주연이 이와 같을 것이기에 녹명을 불렀습니다.

유몽인 태평성대라, 그래. 임금의 말씀이 밝아 온 나라가 들고 일어나 역모의 그림자만 보여도 이를 고해바쳐 옥이 장래의 대역 죄인들로 그득하니, 내 어찌 맛 나는 술로 태평성대를 노래하지 않으랴. 자, 처사촌 내 술을 받으시오.

정회 (주위를 살피며) 형님, 술이 약하기로 성내 수위를 다투시는 분이 오늘 과하게 드시는 듯합니다. 게다가 유시(酉時)에 역적 박치의와 함께 역모를 꾀한 무리들을 추국한다 하셨으니 이제 술은 그만 드셔야하지 않겠습니까.

유몽인 무송당(撫松堂), 무슨 말을 그리 하는가. 안처인의 무고로 밝혀진 마당에 잡혀온 백여명 중 한 명을 추국하는 일로 다시없을 오늘의 상춘을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한 편의 광대놀음 본다 여기고, 내 아무 말 안할 터이니 술에 취한들 실수할 일이야 있겠는가. 자 그러지 말고 내 잔을 채워주게.

정회 이미 무고로 밝혀졌는데도 추국을 계속한단 말입니까?유몽인 안처인이 잡아 바친 막동이 그놈이 아직도 자신이 역적질에 가담했다하니 어찌 추국을 그만 둘 수 있겠나.

가운데 조명 꺼지며, 왼쪽 조명 들어온다.

낭관 1, 2 왼쪽 단상에 올라 서 있다. 그 앞에 막동이 의자에 앉았다. 헝클어진 머리 남루한 옷차림이 그가 오랫동안 옥고를 치렀음을 말해준다. 하리 1, 2 무대 뒤편에 칼을 차고 섰다.

낭관1 네 대답에 추호도 거짓이 없어야 한다. 네가 역적 박치의의 종 막동이 맞느냐?

막동 네, 네 그러습니다요.

낭관1 너는 박치의의 눈 아래 검정 사마귀와 털이 있는 것을 아느냐?

막동 사마귀와 털, (잠시 생각하다) 있지요, 있고 말구요.

낭관1 네가 지리산에 숨은 박치의와 장수 고을 역도들 사이에서 서찰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였느냐?

막동 그 일로 지리산을 수 만 번 오르내렸습니다요.

낭관2 (낭관 1을 보며) 이미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강조하며) 현 영상 대감 어르신 밑에서 의병활동을 했던 안가 놈이 고을로 돌아와 역을 문란하게 운영하는 등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자, 보다 못한 고을 향사들이 그들의 만행을 바로잡았고, 이에 앙심을 품은 안가 놈이 막동을 이용해 장수 고을 사람들을 역적으로 몰아 거짓 고변 한 게 아닙니까. 이제 죄인을 박치의와 연관 짓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낭관1 (당당한 목소리로 낭관 2를 노려보며) 추안문서를 작성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찌 그리 쉽게 결론을 내리십니까. 행여 이번에 역모의 싹을 온전히 잘라내지 못해 훗날 역적의 무리가 창궐하면 어찌 책임지려 하십니까. 아니면, 혹시 마음에 꺼리는 바라도 있으십니까.

낭관2 꺼리는 게 있다니요. 그 무슨! (낭관 1을 노려보다 다시 막동을 향해) 네 이놈! 어디서 거짓을 늘어놓느냐. 서찰을 날랐다 하나 주인이 어디 있는지 모르고, 박치의의 집에서 나고 자랐다 하나 그 집 종 애수(愛守)도 너를 알지 못한다. 게다가 네놈이 안처인의 첩이 장수로 데리고 온 자식이라는 증거도 있느니라. 이래도 네가 박치의의 종 막동이 맞단 말이더냐?

막동 (두려워하며) 거짓이, 거짓이 아닙니다요.

왼쪽 조명 꺼지고 가운데 조명 들어온다.

유몽인 수많은 막동이를 봐왔지만, 그런 막동은 처음이야.

정회 수많은 막동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유몽인 박치의가 종 막동과 함께 도망쳤다는 말 이후 팔도의 감사들이 수많은 막동을 붙잡아 들여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받아 이리로 올려 보냈지. 이번 막동도 가짜임이 분명한데, 외려 곤장을 맞고 쇠로 지짐을 당해도 자신이 그 막동이라는 말을 바꾸지 않으니, 허허.

정회 (술을 따르며) 어찌 됐든 이미 무고로 밝혀졌다면 이제 이 소란도 곧 잦아지겠습니다.

유몽인 그럴리야 있겠는가. 아무리 무고라 해도 박치의가 지리산에 몸을 숨겼다는 고변이 들어왔으니, 비변사에서 토포사를 보내어 지리산을 샅샅이 뒤지지 않겠는가.

정회 이미 네 해 전에 영창대군이 사사받고 대비마저 유폐된 마당에 조령에서 비적질 하다 도망친 도적놈 하나가 뭐가 두려워 토포사까지 보낸단 말입니까.

유몽인 도적 놈 하나 잡자고 이리 난리를 피우겠는가. 한낱 도적을 역적으로 만들어 세상에 던져 놓고 수많은 역적을 낚아내겠다는 게야. 자신만이 군자라 칭하는 자들에게 세상은 역적으로 가득 차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임금이 직접 역모를 고발한 자에 대한 포상을 내걸고 이를 독려하며, 무고로 밝혀져도 벌을 받지 않으니 어찌 고변이 끊이겠는가.

정회 그럼 앞으로도 형님은 국청 일로 바쁘시겠습니다.

유몽인 (씁쓸하게 웃으며) 이번 무고가 마무리 되는 데로 다시 사직소를 올릴 걸세. 이번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옥에 갇히는 한이 있더라도 출사하지 않으려하네.

정회 조정의 뭇 신하를 드내리는 이조참판을 내던지려하시니 사람들이 형님을 두고 어리석다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 합니다.

유몽인 그깟 코풀덩이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벼슬이 높아질수록 시마(詩魔)는 날 떠나 돌아오지 않으니, 이제 산속에 들어가 시마의 시달림을 받으며 살고자하네. 자 은개야, 네 노래로 내 부귀영화를 보내주고 싶구나.

하리 1, 2 무대 뒤편에 정좌하고 해금과 대금을 연주한다. 은개 이에 맞춰 노래 부른다.

은개 용풍의 백주편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둥둥 떠있는 잣나무 배여 저 황하 가운데 있도다
더풀거리는 저 더벅머리한 분이 실로 나의 짝이니
죽을지언정 맹세코 다른 데로 가지 않으리라
어머니는 하늘이시니 어이 나를 몰라주시는가

汎彼柏舟 在彼中河
髧彼兩髦 實維我儀
之死 矢靡它
母也天只 不諒人只

둥둥 떠있는 잣나무 배여 저 황하가에 있도다
더풀거리는 저 더벅머리한 분이 실로 나의 짝이니
죽을지언정 맹세코 나쁜 마음 품지 않으리라
어머니는 하늘이시니 어이 나를 몰라주시는가

汎彼柏舟 在彼河側
髧彼兩髦 實維我特
之死 矢靡慝
母也天只 不諒人只

유몽인 (노래가 끝나자 감은 눈을 뜨며) 용풍의 백주라, 은개야 네가 공강의 고사를 아느냐.

은개 위나라 세자 공백이 일찍 죽자 그의 처 공강이 의를 지키려 하나 그의 부모가 그 뜻을 빼앗아 개가시키려 하여, 이 시를 지어 스스로 맹세하였다는 이야기인 줄 압니다.

유몽인 부모의 뜻과 자신의 의라, 재미있는 노래를 골랐구나. 그래, 처사촌이라면 어버이의 뜻과 자신의 의가 어긋날 경우 어떻게 하겠소?

정회 어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더 큰 효이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높은 자리에 있는 자라면 뭇사람의 본을 보여야겠지요.

유몽인 그래 은개야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은개 저라면 제 아비의 뜻을 따를 것이옵니다.

정회 뭐, 개가를 하겠다는 말이더냐. 네가 아무리 비천한 몸이기로서니 어찌 그리 쉽게 말하느냐.

유몽인 가볍게 던진 말이니 그리 화내지 마시지요. 그래 은개야 네 어버이의 뜻을 따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은개 공맹의 도에 밝으신 뭇 선비님들도 각자의 의로 상대를 죽이시는데, 비천한 제가 어찌 자신의 의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옳은지는 알기 어렵고 제 어버이를 행복하게 하는 길은 눈앞에 있으니 마땅히 가까운 것을 취하고자 합니다.

유몽인 (크게 웃으며) 네가 재미난 말을 하는구나. 네 말대로 모든 사람이 의를 버리고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쫒는다면 이 세상은 어찌되겠느냐.

은개 제 형제를 죽이고 어미를 쫓아내는 의로 밝혀진 세상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정회 이 놈, 네가 어디 선비를 가르치려 드느냐. 형님 어찌 비천한 자와 더불어 도를 논하십니까.

유몽인 도를 논하는 데 비천이 어디 있겠소. 내 국청에서 수많은 죄인을 만나봤으나 저토록 대범하게 말하는 이는 없었으니 그 호기로움이 오히려 가상하지 않소. (은개를 보며) 은개야, 의가 무엇인지 바로 알기가 어려운 것이지 그것이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허나 현실을 보면 네 말도 그른 말은 아닌 듯하구나. 성인의 말을 빌려 한쪽은 사직과 대의를 위해 동생을 죽이고 어미를 폐하라 하며 다른 한 쪽은 이를 패륜이라 하니, 성인은 하나인데 어찌 그 뜻은 여럿인고. (사이) 그래, 그러고 보니 네 아비는 잘 지내고 있느냐. (광대 고개를 들고 귀를 기울이며 무대 가운데로 다가온다.)

은개 어르신이 거두어주신 그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몽인 허허 어미에다 아비까지, 네가 상심이 컸겠구나.

정회 형님, 이 아이를 거두시다니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유몽인 (시선을 멀리 두며) 십 여 년 전 세자의 명을 받아 우도를 감찰하러 내려가는 길이었네. 입춘이 지나 한강물도 조금씩 녹기 시작한 터라 배를 건널 때를 저울질하고 있었지. 그 날 동냥질 하던 광대가족이 귀신탈을 쓰고 한강 위에서 놀이를 하고 있었어.

가운데 조명 꺼지고, 왼쪽 조명 들어온다. 왼쪽 단상, 누더기 옷을 걸치고 귀신탈을 쓴 은개와 광대가 춤을 춘다. 유몽인 서서 이를 바라본다.

은개 (미끄러진다) 아이고, 이 얼음 바닥이 내 남편 대머리만큼이나 미끄럽구나.

광대 다가와 손을 내밀어 일으켜준다. 은개 손을 잡고 일어 선 후 왼팔로 광대의 목을 감싸 아래로 숙인 후 오른손으로 정수리를 쓰다듬는다.

은개 아이고, 당신 혼자 뭔 기름진 걸 자셨길래, 머리밭이 이리도 기름지우. (오른손으로 아랫배를 매만지며) 여기 이 거미줄 친 밭뙈기도 신경써주오. 배가 고파 못살겠소. 허긴, 웬 힘이 다 여기로 갔으니 농사지을 씨라도 남아 있겠어?

은개 광대의 머리와 성기를 친 후 도망간다. 광대 좇아간다. 무대 주위를 뛰 놀다, 은개 갑자기 물에 빠진다. 얼음이 갈라지는 효과음과 물에서 첨벙거리는 소리. 푸른 색 조명.

은개 아이고, 날 살려주소. 거기 그렇게 눈만 뻐끔거리지 말고 내 손 좀 잡아주오.

허우적거리는 은개와 은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당황하는 광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사람들의 웃음소리. 이윽고 은개는 바닥에 엎어지고, 광대 주저앉는다. 유몽인 광대에게 서서히 다가간다.

유몽인 (관객을 향해) 아니, 네 놈들은 언제까지 그리 웃을 작정이야. (웃음소리 그친다. 몸을 돌려 광대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이보게나, 그만 일어나게. 여기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하지 않겠나. (유몽인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다.) 그리고 아내가 물에 빠져 죽었는데 언제까지 이 우스꽝스러운 탈을 쓰고 있을 겐가. 이러니 저들이 비웃는 게 아닌가. 어서 벗게나.

유몽인 광대의 귀신탈을 잡고 벗기려 한다. 완전히 벗겨지기 전에 조명 점차 꺼진다. 조명, 다시 술자리를 비춘다. 광대 술자리 옆에서 웅크려 있다.

유몽인 (이야기의 계속인 것처럼) 그길로 광대 부녀를 승형의 집에 맡기고 길을 떠났지.

은개 그날 어르신의 도움으로 저희 부녀가 무사히 겨울을 보냈고, 저는 지금까지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늘 그 은혜를 갚지 못해 안타까워하다, 오늘 이렇게 어르신을 뵙고 인사를 드리게 되어 하늘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광대, 은개와 함께 유몽인에게 절을 한다.)

유몽인 사람 된 자로서, 더욱이 한 나라의 신하된 자로서 어찌 다른 사람들처럼 너희를 보고 웃고만 있을 수 있었겠느냐.

정회 사람이 죽어가는데, 웃다니. 허허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공맹의 도가 이 땅에 뿌리내리려면 얼마나 기다려야할는지.

유몽인 전란이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든 탓이야. (사이) 그래, 은개야 네 아버지는 어쩌다 세상을 떠났느냐?

은개 제 어미가 죽은 지 일 년이 되던 해 한강으로 가 귀신탈을 쓴 채로 물에 빠져죽었습니다.

유몽인 (놀라며) 아무리 아내를 잃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기로서니 어찌 너를 두고 그리 간단 말이더냐. 허허.

은개 (유몽인을 향해) 어르신, 아비는 죽은 제 어미와 강가의 사람들보다 어르신의 눈이 무섭다하였습니다. (광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유몽인에게서 몸을 돌린다.)

유몽인 뭐 내 눈이 무서웠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은개 주인님의 집에서 겨울을 난 후 아비는 몇 번을 저잣거리에 나가 예전처럼 광대판을 벌이려 했으나, 탈을 쓸 때마다 나리의 눈이 떠올라 괴롭다 하여 이내 탈을 벗어버렸습니다.

유몽인 (언짢은 듯)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냐. 그래 죽은 아내도, 자기를 보고 웃던 사람들도 아닌, 이 유몽인이 너의 아비를 한강으로 내몰았단 말이냐.

정회 아니 그런 배은망덕한 말이 어디 있나! 추운 겨울 불쌍한 네 가족을 거두어 주셨건만 감사는 못할망정 원망이라니. 에잇, 상 것들의 은혜 모름이 이와 같구나.

은개 원망이 아닙니다. 제 아비도 어르신의 은혜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누누이 말하였고 저도 늘 은혜를 갚아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다만….
유몽인 어서 말을 해 보거라.

은개 다만, 그날 어르신이 저희를 거두어주지 않으셨다면 제 아비가 광대놀음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고….

유몽인 한강에 빠져 죽지도 않았을 거라, 이 말이냐!

은개 … …

정회 (유몽인의 눈치를 보며) 형님, 고정하시지요. 곤경에 처한 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군자의 마음을 저들이 어찌 알며, 자신의 잘못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저들이니, 그 말을 어찌 괘념하십니까. (은개에게) 뭣하고 있느냐. 어서 사죄드리지 않고!

은개 어르신 제가 때와 장소를 분별 하지 못하여 어르신의 여흥을 깨뜨렸습니다. (절을 하고 일어나 고개를 들고) 평생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터라, 어르신에게는 꼭 터놓고 싶었습니다. 어르신이라면 제 아비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광대, 유몽인의 주위를 돈다.)

정회 네 이년! 네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어디서 말대답이냐!

유몽인 (차갑게) 내 어찌 네 아비의 마음을 헤아리겠느냐. 더욱이 나를 원망하며 죽었다면, 그 마음 알고 싶지도 않다.

은개 원망이 아닙니다, 어르신! 어르신마저 그리 말하시면 죽은 제 아비가 어찌 편히 눈을 감으며, 저는 또 어찌 산단 말입니까.

유몽인 그래서, 너도 한강으로 달려가겠다는 게냐.

은개 어르신....... (고개를 떨군다. 광대, 은개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 안는다.)

하리1 (급하게 달려와 숨을 고르며) 나으리 추국정에 납셔야 합니다. 이미 다른 분들은 납시어 어르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유몽인 그래 시국이 이리 어수선한데 무슨 봄놀이며 노래란 말이냐. 그래 가자. 그물질한 이의 비위를 맞추러 어서 가자.

정회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유몽인을 잡으며) 괜찮으시겠습니까. 국청을 연기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유몽인 역적을 추국하는 일을 어찌 미루겠는가. 게다가 무고로 결론이 난 일이니 나 하나 눈 감고 있다하여 탓할 이는 없을 게야. (은개를 향해 차갑게) 내 추후 너의 주인을 찾아가 고마움을 전하겠다. 처사촌, 은개를 잘 데려다 주구려. (하리를 향해) 자 어서 의금부로 가자.

두 사람의 전송을 받으며 하리와 유몽인은 퇴장한다. 광대는 유몽인을 뒤따라 나가고, 정회는 은개를 나무라듯 바라본다. 조명 점차 꺼진다.

의금부, 왼쪽 단상에 낭관 1, 2가 서 있고 반 보쯤 뒤에 유몽인이 의자에 앉았다. 의금부 하리들은 칼을 찬 채, 무대 뒤 쪽에서 객석을 향해 서있다. 막동은 무대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광대는 막동의 뒤쪽에서 눈앞의 추국을 구경하듯 앉았다.

낭관2 (어떤 이야기의 계속이듯) 막동아, 네 말이 거짓이라면 너는 안가 놈과 함께 반좌율로 목숨을 잃을 것이야. 네 말이 맞다하더라도 너를 잡아 역모를 고변한 안가 놈과 네 어미는 큰 벼슬과 상금을 받고 너만이 역적으로 죽을 것이야. 게다가 장수 고을 사람들은 죄 없이 죽고 노비가 되어 너를 원수로 여기며 살 텐데, 정녕 그리 되길 원하느냐?

막동 아닙니다, 절대로 그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요.

낭관2 그렇다면 무엇 때문이냐? 안가 놈이 네게 무고의 대가로 무엇을 약속했던지 네 앞엔 죽음밖에 없느니라.

막동 (떨리는 목소리) 뭘 받다니요, 사람 목숨을 뭘로 산단 말씀입니까요. 분명 그들은 역적의 무리라 했습니다요. 저들을 잡아들여야 나라가 산다고.

낭관2 (막동에게 다가가며) 역적의 무리라, 누가 그리 말하더냐? 사실대로 고하는 것이 너와 네 어미를 살리는 길이니라.

막동 (광대 막동 옆에 주저앉아 귀를 기울인다. 막동 망설이다 입을 연다.) 안처인 어르신과 제 어미가 그리 말했습니다요.

낭관1 (화를 내며)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말을 뒤집느냐!

낭관2 (낭관1을 보며) 지금이라도 사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막동에게) 좀 더 자세히 말해 보거라. 너는 누구고 어떻게 안처인과 관계를 맺게 되었느냐.

막동 저는 본디 정주 교노 배언복의 아들로 십 여 년 전 어머니를 따라 장수에 왔습니다요. 안처인 어르신은 갈 곳 없는 저희 어머니를 거두어주셨고, 어미는 곧 저를 장사치에게 맡겨 밖에서 장사를 배우게 했습니다. 얼마 전 어미가 저를 찾는다 하여 다시 장수로 돌아오니 어르신과 어미는 이 고을이 역적으로 꽉 찼으나 증거가 없어 못 잡고 있으니, 제게 그들을 잡아 나라를 구하는 일을 맡기고자 한다 하였습니다요. 제 어미를 거둬주신 데다 의병활동을 하셨던 어르신의 말씀이며 또한 저를 낳은 어미의 부탁이니 제가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요.

낭관1 네 이놈! 역모가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큰일인 줄 몰랐더냐. 국청은 너 같은 무지렁이들이 사사로운 이익으로 거짓을 고하고도 무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네가 국청을 능멸함이 이와 같으니 반좌율에 따라 네놈들을 도륙할 것이다!

막동 (다급한 목소리로) 제가 어리석어 거짓 증언 한 죄 죽어 마땅하나, 그들은 역적입니다요. 제가 죽는 것은 억울하지 않으나, 제 어미는 그렇지 않으니 역적들을 다시 한 번 심문해 주십시오.

낭관2 모를 생각하는 네 마음은 알겠다. 허나 부모의 말을 좇아 무고한 이들을 역적으로 몰았으니 어찌 의롭다 하겠느냐. 모자간의 사사로운 은혜만 알고 백성과 임금간의 더 큰 의리를 알지 못하니 네 어리석음이 크다. 어찌 살기를 바라겠느냐.

막동 (벌벌 떨며) 나으리, 나으리 제 어미를 용서해 주십시오. 나으리!

광대, 울부짖는 막동 주위를 춤을 추며 돈다. 도는 중간 중간 막동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고개를 돌려 단상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유몽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를 보지 못한다. 유몽인 광대와 눈이 마주친 후, 서서히 단 아래로 내려간다. 다른 인물들은, 뭔가에 홀린 듯이 단 아래로 내려가는 유몽인을 의아하게 바라본다.

유몽인 (광대를 향해) 네 놈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여기 나타나 이리 난리를 피우는 게냐!

막동 (유몽인을 향해) 어르신, 제 어미를 살려주십시오.

유몽인 (막동을 향해) 내 이제껏 매를 맞다 막동이가 된 놈은 수없이 봐왔것만, 죽인다 해도 막동이라 하는 놈은 네가 처음이다. 너는 누구냐?

막동 (어리둥절하며) 저, 저는 전주 교노 배언복의 아들 막동이옵니다요.

유몽인 그래 넌 막내로 태어난 수많은 막동이 중 하나이나, (단상을 가리키며) 저들은 네게 역적의 가면을, 천치의 가면을 씌워주는구나.

낭관1 동지사 어른,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유몽인 이놈에게 살길을 열어주려 하오. (막동을 향해) 막동아 네 어미를 위하는 마음은 가상하나, 그로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문초를 당하고 그 중 몇은 목숨을 잃었다. (자신을 막아서는 광대를 옆으로 밀치며) 네 어미는 간부(奸婦)요, 안 가 놈은 모리배다. 그리해도 네 어미만을 변호하겠느냐?

막동 (울먹이며) 무지렁이인 제가 어찌 옳고 그름을 알겠습니까요. 저는 다만 저를 낳은 어미와 저희 집에 은혜를 베푸신 어르신의 말을 믿고 따를 뿐입니다요.

유몽인 모든 죄를 너 혼자 뒤집어쓰고, 네 어미만 살아남는데도?

막동 제가 죽어 어미만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요.

유몽인 (광대를 한 차례 곁눈질 한 후) 너도 손에 닿지 않는 의보다 눈앞에 보이는 효를 취하겠다는 게냐. 좋다, 허나 네 어미가 살기 위해서는 저 옥에 갇힌 사람들이 역적이 되어야 한다. 안씨 놈과 함께 너를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한 네 어미를 위해 너와 저들이 죽어야 한단 말이냐!

막동 (고개를 들어) 어르신, 절 더러 어찌 살라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요. (광대 화가 난 듯 어깨를 들썩거리며 막동 주위를 돌다 유몽인을 막아선다.)

유몽인 (광대를 노려보며) 비켜라! 이놈에게 살 길을 내주려는 게다. (막동을 향해) 빌어라! ‘어미가 거짓으로 저를 속였으니, 용서해주십시오’하고 빌란 말이다!

막동 나으리, 제 어미는 저를 속이지 않았습니다요.

유몽인 시끄럽다. 우습지도 않은 광대 짓거리는 집어치워라. 너는 효자도, 충신도 아니다. 간악한 어미의 어리석은 아들일 뿐이다. 그 우스운 탈일랑 벗어버리고 어서 살 길을 구하란 말이다.

막동 (울먹이며)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요. 제 어미도 믿지 못하는 세상을 절더러 어찌 살라고 그리 말씀하십니까요. (광대, 막동을 두 팔로 감싸며 유몽인을 쏘아본다.)

유몽인 (비틀거리며 웃는다) 흐흐흐. 탈을 벗고 살아갈 바에야 탈을 쓰고 죽겠다는 게냐. (광대를 향해) 네 놈도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게냐. 하하하.

낭관1 동지사 어른,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유몽인 이놈이 제 어미가 자신을 속인 세상을 살 바에야, 충신인 부모에게 효를 다하다 죽겠다하지 않습니까.

낭관2 모자간의 사사로운 정에 눈이 어두워 세상을 밝히는 의를 보지 못하니, 어찌 이를 효라 하겠습니까. 성인도 은혜는 가볍고 의리는 중하다 하셨습니다. (막동을 가리키며) 이놈의 어리석음이 이와 같으니, 살길을 마련해 준들 은혜로 여기겠습니까.

유몽인 의로 밝혀진 세상이라, 좋지요. (광대를 향해) 네놈은 이 의로 밝혀진 세상을 맨 눈으로 보는 게 그리도 힘들었더냐. 나는 너를 살리기 위해 탈을 벗겼것만, 네놈은 탈을 쓰고 죽었구나.

낭관1 동지사 어른 지금 누구에게 말씀하십니까.

유몽인 (광대를 가리키며) 귀신탈 쓴 광대 놈이 여기 있지 않습니까? (광대를 향해) 흐흐흐 맨 얼굴로 맞은 삭풍이 그리도 찼더냐. 귀신탈 없이는 네 아내를 보낼 수 없었더냐. (광대 비틀거리는 유몽인을 부축해준다.)

낭관2 어르신! 술이 과하셨습니다. 국청에서 어찌 이리 해괴한 행동을 하십니까. 아랫것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유몽인 허허,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끄럽다니요. 부끄러움을 버린 지 벌써 오랩니다, 오래. 부끄러움을 알았더면, 수십 명의 막동을 봐오면서도 이 자리에 앉아 있었겠습니까. 하하하.

막동 (필사적으로) 어르신, 어르신 제 어머니는 죄가 없습니다요. 저는 죽어도 좋으나 저희 어머니는 살려주십시오.

유몽인 그래 제 어미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의로 가득한 세상인들 어찌 살아가겠느냐. (광대를 보며) 그래, 나도 안다. 이놈에게서 효자의 탈을 벗기면 어찌 살까. 허나 저 놈이 살기 위해서는 저 옥에 갇힌 이들이 역적이 되어야하니, 어찌 한단 말이냐.

낭관1 동지사 어른, 어찌 (막동을 가리키며) 저놈과 더불어 도를 논하시려하십니까. 백성이 어찌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큰 의리와 참 효를 알겠습니까.

유몽인 그렇다면 저들은 어떻게 살아야한단 말입니까.

낭관1 마땅히 군자가 저들을 가르쳐야하지요. 우리가 저들을 참다운 도로 이끌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유몽인 그 가르침이 전해지지 않아 도를 알지 못하는 백성은 어찌 합니까.

낭관1 (당당하게) 불쌍하게 여겨야 하지요.

유몽인 불쌍하게 여겨라, 하하하. 그래, (광대를 보며) 네 놈 기분이 어떤지 조금은 알겠구나.

낭관2 계속 누구에게 말씀하십니까?

유몽인 있소, 내 분별함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광대 놈이 하나 있소이다. (낭관1을 보며) 그렇다면 도를 알지 못해 죄를 범한 이를 어찌 벌을 준단 말입니까. 도를 가르쳐야 할 자들이 서로를 역적으로 몰아 공신에 녹훈되니, 비루한 시골 선비까지 들고 나서며, 남편이 아내를 속이고, 어미가 자식을 속여 결국 저 막동이 놈이 역적이 되어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게 아닙니까. 이 상황에서 저들만 벌한다면 그야말로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낭관2 그렇다면 저 막동이가 죄 없단 말씀이십니까?

유몽인 누가 죄 없다 하였습니까. 도가 바루어진다면 저들이 각각 눈앞의 은혜를 따라 움직여도 세상은 마땅히 잘 다스려 질 것입니다. 허나 저 막동이 역적이 됨은, 제 어미를 죽여 세상을 밝히는 의로 제 어미를 살려 나라를 어지럽히는 은혜를 벌하는 것이니 어찌 도가 행해졌다 하겠습니까. 도는 저 멀리 있는데, 자신들만의 의리로 세상을 역적 천지로 만들어 그물질 하는 큰 도적놈들을 놓아두고 저 막동이 앞에서만 큰소리 치는 것이 부끄럽단 말입니다.

낭관2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큰 도적이라 함은, 박치의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유몽인 하하하 도망친 지 여섯 해가 지나도록 이 좁은 조선 땅에서 털 끝 하나 본 사람이 없는 비루한 도적놈 따위가 무엇이 무섭단 말입니까.

낭관1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유몽인 왜 그렇게 노여워하십니까. 이제 이 몸을 (막동이 앉은 의자를 짚으며) 이 자리에 앉히고 싶으십니까. 하하하.

낭관1 (하리를 향해) 뭣들 하느냐, 동지사 어르신이 몸이 편치 않으시니 어서 안으로 뫼시어라.

유몽인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하리를 향해) 내 괜찮다 하지 않았느냐. 물러서라. 내 어느 때 보다 정신이 맑으니 어찌 의자에 앉아 졸고만 있겠느냐. (비틀거리며 광대를 바라본다.) 내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난 세자 저하를 도와 전란으로 피폐해진 이 나라에 바른 덕을 실현하리라 마음먹었단 말이야. 저들에게서 저 우스꽝스러운 탈을 벗겨 바른 도로 인도하리라, 하였지. 그런데.......

낭관2 (유몽인을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진정하십시오! 듣는 귀가 많습니다.

유몽인 (광대를 바라보며) 내가 죽였어, 내가 너를 죽인 게야. 누가 너희를 추운 겨울 한강으로 몰았으며, 가슴을 후비는 삭풍을 귀신탈 없이 어찌 견뎌낸단 말이냐. 내 어리석음이 너의 탈을 벗긴 게야. 하하하 (광대, 이 후 유몽인의 타령에 맞춰 춤춘다.) 너의 탈은 괴로움을 보내고 사람을 웃게 만드는 탈이나, 내 탈은 사람을 분별하여 슬프게 만드는 탈이로구나. 임금이 제 동생을 죽이고, 어미를 유폐시켜도 그 장단에 춤추고, 저들이 전란의 공을 들어 홀로 군자라 칭하며 거짓 역적을 도륙할 때, 그 옆에서 노래하니, 천하에 몹쓸 탈이로구나! 하하하.

낭관1 (떨리는 목소리) 동지사 어른! 그 무슨 해괴한 노래입니까. 이곳은 음풍농월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늘 일은 불문에 부칠 터이니, 그만 퇴정하시지요. (하리에게) 넌 무얼 하고 있느냐 동지사 어른을 안으로 모시라 하지 않았느냐!

유몽인 (우왕좌왕하는 하리들을 보며) 난 괜찮으니 너는 어서 종이와 붓을 찾아 오거라. 남산 술자리에서 지어둔 시구를 적어 두어야겠다. 그리고 당신들, 언제까지 그 귀신탈을 쓰고 있으려 하오. 갑갑하지 않소이까. 홀로 큰 의로 다른 사람 죽이는 그 탈일랑 벗어두고, 여기 이놈과 같이 어울려봅시다. 허망한 말로 세상을 속이며 저 홀로 슬픈 노래를 불러 세상을 그물질할 생각일랑 말고, 어서 이곳으로 오시오.

하리1은 종이와 붓을 가지러 나가고, 낭관1, 2 못마땅한 기색으로 유몽인을 바라본다. 노래 장단에 맞춰 유몽인은 광대와 어울려 어깨춤을 추며 막동의 주위를 돈다. 막동은 당황하며 자신의 주위를 도는 유몽인을 바라본다.

유몽인 (광대를 보며) 태평성대로다, 정녕 그렇지 아니하냐? (광대 고개를 끄덕인다) 자 내 시를 들어 보거라.

성 안의 가득한 꽃과 버들에 봄놀이 즐기는데
미인이 잔을 놓고 백주장을 부르누나
장사가 홀연히 장검을 짚고 서서
취중에 늙은 간신의 머리 찍으려 하네

滿城花柳擁春遊
玉手停盈唱栢舟
壯士忽持長劍起
醉中當斫老姦頭

유몽인 노래에 맞춰 광대는 하리 2의 칼을 뽑아들고 춤을 추며 낭관 1, 2의 곁으로 가 두 사람의 주위를 돈다. 낭관 1, 2 처음에는 광대가 다가오는 걸 모르나 칼이 자신의 머리로 다가 올 때 깜짝 놀라 피한다.

유몽인 하하하 이놈아, 그 놈들이 아니다. 늙은 간신들은, (관객을 가리키며) 저 안에 있지 않느냐. 자 이리 오너라. 늙은 간신배 목을 치러 가자꾸나.

낭관2 (하리에게) 뭣들 하느냐 동지사를 붙잡아라!

낭관1 허허 이 무슨 해괴한 꼴인란 말인가.

유몽인 (유몽인 자신을 붙잡는 하리들을 뿌리치며) 가자, 늙은 간신의 탈을 벗기러 어서 가자꾸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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