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영문학과 09

눈이 내리고 곧이어 수북하게 쌓여갑니다. 쌓인 눈 위로 다시 눈이 내리고, 쌓인 눈과 쌓이는 눈의 경계는 자연스레 사라집니다. 생각해 보건데 관악을 하얗게 메웠던 우리는 모두 눈이었습니다. 어두운 세상의 논리도, 노란 황금에 대한 맹신도 차마 범할 수 없던 하얀 눈. 우리는 학우라는 이름 아래 평등했고 별다른 마음의 경계와 장벽 없이 서로의 삶에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향기를 교환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모습 그대로 진정 아름답게 하나된 순수한 눈이었습니다.

하지만 만남과 이별은 본래 떨어질 수 없는 한 편인지라 거짓말처럼 끝을 향해 달리는 이 겨울과 함께 당신은 우리 곁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그 당사자도 아닌 제가 형언하기 어려운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지금, 당신은 무엇을 바라보며 어떤 꿈을 그리고 계신지요.

선배님, 문득 당신이 처음 캠퍼스를 거닐었을 그 날을 떠올려 봅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저의 처음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겠지요. 처음 당신이 캠퍼스를 거닐며 느낀 감정은 설렘이었을 것입니다. 미지가 낳는 설렘의 뜨거움과 이에 대한 반작용과 같은 두려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이 두 감정 사이에서 당신은 오랜 시간 많이 웃고 울었을 것입니다. 물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지금, 당신은 이러한 설렘을 다시금 느끼고 계시겠지요.

감사한 점은 당신이 그러한 설렘의 아름다움을 제게 전해 줬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제 마음 속에 가득하던 알지 못하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셨습니다. 충고와 격려, 그리고 경험 섞인 조언을 통해 당신은 삶에서 두려움보다는 설렘의 가치가 더 소중함을 깨우쳐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당신은 부족한 저에게 오히려 그 부족함이 잠재력이며 가능성일 수 있음을, 그리하여 나 자신이야말로 그 누구도 모르는 설렘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결국 당신 덕분에 저는 사람 앞에서도, 사랑 앞에서도, 꿈 앞에서도, 그리고 세상 앞에서도 보다 설레길 바라는, 설렘의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야말로 당신이 제 행복의 원천을 일궈 준 셈입니다. 그런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저 역시 후배들에게 당신이 주신 가르침을 전하는 좋은 선배가 되겠노라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 동안의 감사와 이별의 아쉬움을 전하기 위해 글을 시작했지만 짧은 글에 제 마음을 다 담을 수 없음을 뒤늦게나마 느낍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전하고, 갚도록 하겠습니다. 아쉬운 마음은 새로운 세상에서 선배의 비상을 기원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설렘이 가득한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겨울이 가고 기적처럼 봄이 오지만 언젠가 다시 우리가 눈이 돼 만날 날이 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선배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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