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다시 전운이 감돈다. 이라크 전 지역에서 테러와 무장세력들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외국 민간인들의 피랍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며칠 사이 이라크에서는 선교 행사 참석차 이라크를 방문했던 한국인 목사 일행 7명이 무장세력에 억류되었다가 풀려나는가 하면, 일본 민간인 3명은 무장 저항세력에게 납치돼 살해위협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이라크 민중들의 저항은 독재자로부터 이라크를 해방시키고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 주겠다던 미국의 전쟁 명분이 사실은 자신의 더러운 야욕을 숨기기 위한 ‘말장난’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테러는 근절되기는 커녕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다. 예견됐듯이 더러운 전쟁은 세상을 더욱 더럽혔을 뿐이다.

공식적 종전 후 1년, 아직 총성이 멎지 않은 이라크에 한국은 전투병을 포함한 추가파병을 하려고 한다. 이번에 추가로 파병되는 ‘자이툰’ 부대는 평화유지와 전쟁 피해 복구를 주 임무로 하는 혼성부대로 그 병력규모가 이라크에 파병한 36개 국가 중 미국과 영국에 이어 3번째로 크다.

“평화 유지와 이라크 전쟁 피해 복구를 위해서라면 총이 왜 필요한가”

그러나 현 이라크 상황에서 평화유지와 전쟁 피해 복구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자이툰 역시 다른 외국 군대가 그랬듯이 이라크 민중들의 세 번째 큰 적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외국 민간인들까지 억류당하는 현 이라크 상황에서 무장한 외국 군대의 평화 유지는 점령 유지와 다를 바 없으며, 전쟁피해 복구는 전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1300명을 파병한 스페인이 6월 안에 이라크에서 철수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이러한 인식이 세계적인 추세임을 말해준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국 정부는 ‘이라크의 평화와 복구’를 위해, 부수적으로는 ‘국익’을 위해 파병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사태에 대해 필자는 국가와 국민의 이익그것이 허구일지라도에 너무나도 민감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위정자들의 생각을 비판하는 것보다, 그들의 비도덕적 생각이 국가정책으로 이어지도록 묵인한 원인인 우리의 속마음을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내면에는 옳건 그르건 우선 우리 몫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내면에 숨어 있는 이러한 비도덕적인 인식들,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들은 잠시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스스로의 정체성을 파괴시키고 말 것이다. 20세기 초 이런 동물적 사상들로 무장한 제국주의 세력이 자본의 논리와 왜곡된 민족주의로 세계를 전쟁과 착취로 몰고 갔던 것이다. 그로 인한 고통은 아직도 우리의 현실 곳곳에 남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과거 제국주의 세력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한국이 이라크에서 똑같은 일을 하려 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의 고통과 그로 인한 동족상잔의 쓰라린 아픔을 눈 앞의 이익 앞에 쉽게 잊어 버린다면 우리의 미래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혹자는 이미 국회에서 파병 동의안이 통과됐고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과의 약속이라 지키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약속은 약속”이라면 한 가지 묘안이 있다. 총을 버리고 가자. 평화유지와 이라크 전쟁 피해 복구를 위해서라면 총이 왜 필요한가? 총 대신 삽을, 탱크 대신 건설장비를 갖고 갈 일이다. 평화의 뜻을 밝히고 무장을 하지 않는다면 이라크 사람들도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겠는가. 남이 일으킨 더러운 전쟁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줄게 될 것이고 역사 앞에 조금이라도 당당할 수 있을 것이며, 조국의 이름이 조금은 덜 부끄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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