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현 사회부장
‘생각해보면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표정을 감추고 아닌 척 해도 세상은 그대로인데’ 「사계」 등의 노래로 대중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노래패 꽃다지의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라는 노래의 시작부분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때는 혼란스럽게 짜인 동 번호 사이에서 강의실을 헤매고 선배들과 매일같이 술잔을 나눈 1학년 때였다. 2년 전 어벙하긴 했지만 나름 당찬 포부를 가진 새내기였기에 이 노랫말을 들은 나는 ‘패배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이라고 평가했던 기억이 난다. 모든 것은 역동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며 그 흐름을 바꾸는 주체가 나와 옆에 있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학년은 그렇게 가끔은 건방지게, 가끔은 당돌하게 보내는동안 금세 흘러갔다.

그로부터 어느덧 2년이 지났다. 관악에서 세 번째 맞는 봄은 관악의 눈이 녹기 시작하면 으레 오는 것이 돼 버렸다. 지난 2년 학내·외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접하고 모든 일에 무감각해지고 무뎌질 때 우연히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를 들었다. 하지만 패배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이라고 생각했던 그 노랫말이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왜일까.

멀리 갈 것도 없이 현재 한반도 전역에 걸쳐 진행되는 4대강 사업을 떠올려보자. ‘한반도 대운하’에서 사실상 이름만 바꿔 진행 중인 4대강 사업은 임기 말까지 마치겠다는 정부의 방침대로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던 MBC도 ‘조인트’ 한 방에 무장해제당한 상황이다. ‘조·중·동 특혜 시비’를 불러온 종합편성채널 배정도 큰 흐름의 변화 없이 정부와 보수신문의 뜻대로 흘러갔다. 소외받는 이들의 권익 신장을 목표로 활동한 국가인권위원회도 파행을 거듭했고 과거사 정리를 위한 진실화해위원회도 현 정권이 들어서며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해체됐다. 노랫말처럼 ‘표정을 감추고 아닌 척 해도’ ‘모든 것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렇듯 지난 3년 세상은 정부가 의도한 대로 흘러갔다. 이같은 상황의 원인은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점한 여당이 정부의 입법 청탁을 받으면 곧장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정부여당의 탓으로만 돌린다면 이는 우리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변명에 불과하다. 우리가 스스로를 ‘시민’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투표권 때문은 아니다. 국가가 시민이 이양한 권력으로 잘못된 정책을 펼친다면 우리에게는 이에 불복종할 권리가 있다. 물론 우리가 이러한 힘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 2008년 100만명의 시민이 참여한 촛불 시위가 그 중 한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촛불 이후 소멸된 시민적 감수성은 적어도 지금까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같은 태도로 계속 일관하는 것은 곤란하다. 상황을 무작정 방관하기에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오는 2012년은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 맞물린 정치적 격변기로 남은 1년 동안 우리의 태도가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할 것이다. 어떤 이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 일어나 우리에게 귀를 닫은 정당의 문을, 청와대의 큰 대문을 두드리자. 120년 전 이 땅의 농민들이 임금에게 책임을 물은 것처럼 유쾌한 봉기라도 일으켜보자.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는 아래와 같이 이어진다.
“한참을 기다려도 변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괴로워했던가 운명마저 갈아엎는 용기를”
세상의 변화는 우리가 주인의 입장에서 용기를 가지고 변화를 외칠 때 일어난다. 기억하자. 그대로인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약한 고리는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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