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성애자인권연대 정욜 대표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터부시됐던 동성애 담론이 「인생은 아름다워」, 「쌍화점」 등 문화산업의 영향에 힘입어 공론의 장에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동성애를 바라보는 뿌리 깊은 선입견과 잘못된 인식으로 동성애자들이 차별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지난달 31일 헌법재판소는 ‘계간(鷄姦)이나 기타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구 군형법 제92조에 대해 합헌판결을 내렸다. 제92조는 지난 2008년 8월 육군 22사단 보통군사법원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고 동성애자들의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재청한 조항이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도 징역형에 처하게 된다. 이에 『대학신문』은 동성애자인권연대 정욜 대표를 만나 이번 판결과 관련된 한국 사회의 동성애 인식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헌법재판소가 “제92조는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은 합헌 조항”이라고 판결한 것이 적절하다고 보는가?=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보면 ‘기타 추행’에서 행위 주체와 장소의 명확성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명확성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게 판단돼야 할 것은 동성애자들의 평등권과 사생활침해 여부,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것이다. 5(합헌)대 3(위헌)대 1(한정위헌)의 판결이지만 사실상 헌법재판관들 모두 이 조항에 합헌판정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위헌 또는 한정위헌 판결을 내린 재판관들도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를 ‘음란행위’로 규정하는 등 동성애자들의 평등권을 무시하는 인식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계간’이라는 표현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은 것도 문제다. 동성 간 성행위를 ‘닭의 간음’에 비유하는 이 표현은 심각한 문제지만 헌재는 해당 위헌 재청이 ‘계간’이 아닌 ‘기타 추행’에 관한 것이므로 ‘계간’ 표현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겠다고 했다. ‘계간’이라는 표현은 그 상징적 의미때문에 동성애 혐오 분위기를 조장하므로 반드시 빠져야 한다. 헌재가 이 부분을 그대로 두면서 위헌심판을 한 것만으로도 평등권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자인한 것이라 본다.

◇군대 내 동성애가 군의 정신전력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동성애 반대 측에서는 제92조와 같은 조항이 위헌이 되면 군대 내의 동성 간 성행위가 만연할 것처럼 주장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다. 지난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상황실태조사에 따르면 군대 내 성추행과 성폭행 중 가해자가 동성애자였던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오히려 수직적 위계질서와 폭력 문화로 인해 이성애자들이 성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군대 내 성범죄를 동성애자 탓으로만 몰고 가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개선하지 않은 채 동성애자들에게 잠재적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는 일이다.

◇앞으로 군대 내 동성애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어떤 활동을 펼쳐나갈 생각인가?=우선 군형법 제92조 등 잘못된 법조항들의 개정운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또 무엇보다 “동성애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군대 내에서는 억제돼도 괜찮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을 개선해나가는 데 주력할 것이다. 동성애자가 군대에서 이성애자로 변할 수는 없으며 군 기강을 성적 지향보다 우위에 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성애와 이성 간 성행위가 구분되듯 군대 내의 동성애를 허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동성 간 성행위로 귀결된다는 식의 발상 역시 해소돼야 한다.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 퍼져 있는 동성애 혐오를 해소하고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법과 제도,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활동을 펼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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