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충성을 다할 것을….” 중·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번쯤 뜨겁게 달궈진 운동장에 모여 ‘국기에 대한 맹세’를 읊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영광’을 위하고 ‘충성’을 다해야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무엇인가. 한반도 남부에 위치한 한글 사용자들의 집합인가 아니면 단군 이래 한 핏줄이 흐르는 민족공동체인가. 어떤 식으로든 지금 발 딛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는 오랜 역사를 가진 근원적 실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국민국가’에 대한 독자들의 통념에 문제를 제기하고 오늘날 세계 국가들이 처한 상황에 날카로운 비평을 담은 책이 출간됐다. 바로 가라타니 고진의 두번째 강연집 『문자와 국가』다. 『트랜스크리틱』, 『근대문학의 종언』등 다수의 저서를 남긴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비평가이자 사상가다.
1992년 걸프전쟁 전후 가라타니 고진의 강연들을 모은 『문자와 국가』는 원래 『<전전(戰前)>의 사고』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다. 가라타니 고진은 ‘<전전>의 사고’라는 말로 공산주의의 종언, 근대의 종언처럼 ‘끝’과, 존재하던 문제들의 ‘해결’이 이야기되는 통상적인 사고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은 무엇이 끝난 게 아니라 무엇이 폭발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이라는 것이다. 소련·동구권의 붕괴가 자본주의, 의회민주주의의 승리로 여겨지고 신자유주의로 인한 국민국가의 해체가 예측됐지만 가라타니 고진은 오히려 이러한 담론들을 문제삼고 도래할 세계를 예비하고자 한다.

그는 ‘국민국가’, 즉 ‘네이션=스테이트’라는 개념은 근대에 와서야 형성된 ‘상상의 공동체’라고 지적한다. ‘네이션=스테이트’는 봉건적 구속에서 해방된 시민들이 구성한 것이므로 혈연적·지연적 공동체인 민족으로 환원될 수 없다. 우리는 국가 정체성을 아주 오래전부터 형성된 실체가 있는 관념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그에 기반을 둔 ‘네이션=스테이트’개념은 짧은 역사 동안 작위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일례로 아프리카의 ‘네이션’들이 서양의 식민 지배에서 독립된 후에야 확립된 것을 들 수 있다. 서로 관련이 없던 부족들이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나뉜 국경 안에서 통합돼 네이션=스테이트가 이뤄진 것이다.

이처럼 상상적으로 통합된 ‘네이션=스테이트’의 형성에는 문자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메이지시대 이후 이뤄진 ‘언문일치’ 운동을 통해 말(言)과 내면 사이의 거리가 없어지자 일본은 국민국가로서의 동일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중국이라는 제국의 초월적·보편적 언어인 한자로부터 독립한 ‘국어’가 생김으로써 ‘일본적인 것’의 형성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가 한국어판의 제목으로 『문자와 국가』를 택한 것도 이처럼 국가형성과 관련된 문자론을 다루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네이션=스테이트’의 결합 고리에 자본이 전제됨을 잊지 않는다. 자본은 이윤을 얻을 수 있으면 ‘네이션’ 구별 없이 교차하는 ‘트랜스내셔널함’을 갖고 있지만 뿌리 내릴 국민경제가 어딘가 있어야하는 모순점을 갖는다. 이렇게 형성된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삼위일체는 상호보완하면서 강력하게 근대국가와 자본주의경제를 확립한다.

그런데 ‘트랜스내셔널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오늘날 유럽공동체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생기고 있다. 근대국가의 틀이 흔들리고, 보다 구체적인 세계블록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트랜스내셔널 공동체’가 근대국가를 넘어서는 유일한 선택지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문자와 국가』에 실린 가라타니 고진의 강연이 있은 후 20년이 지난 지금, 그가 지목한 ‘전쟁’은 어떤 식으로 가시화되고 있는가. 세계화와 이에 맞서는 반세계화 진영의 저항, 그리고 9·11테러와 같은 비극으로 분출되기도 하는 새로운 갈등이 그가 예감한 전쟁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문자와 국가』는 단순히 오래 전의 강연집이 아니라 우리가 오늘을 보다 긴장감 있게 바라 볼 계기를 마련해줄 ‘엄한 선생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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