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애리조나 총기 사건 희생자 추도식에서 희생된 9세 소녀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별안간 연설을 멈췄다. 51초라는 짧은 시간동안 이어진 침묵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감동을 전하며 이후 오바마 최고의 연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가 침묵이라는 ‘무언의 언어’를 통해 표현한 상실감과 슬픔은 대중들의 뇌리에 깊게 파고들었으며 그간 오바마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총기 규제 문제를 적절하게 대중들에게 인식시키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수사학은 청중들의 설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한다. 오바마의 침묵도 그것이 ‘연단 위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엄연히 수사학의 대상이 된다. 이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체계로 굳이 분석한다면 연설가의 인격을 통해 대중들을 설득하는 에토스(ethos)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소위 ‘유명한 연설가’들의 연설 속에서 제각기 청중들을 설득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연구했던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연설의 파괴력을 극명하게 보여준 대표적 인물인 히틀러는 연설을 위해 고려되는 요소들 중 정념적 측면(pathos)을 부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론 자체의 특성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성적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파시즘을 청중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그들의 분노를 끌어오려고 노력했다.

연사 히틀러를 평가하는 역사가들은 대체로 히틀러가 ‘수사학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청중들은 그의 연설을 직접 듣기 위해 정치 선전장에 찾아와 입장료를 지불하기도 했다. 『히틀러의 수사학』에 따르면 히틀러는 당시 총체적 위기의 독일 사회를 꿰뚫어 보고 본능적으로 대중의 동경과 욕구를 파악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또 히틀러는 “패전의 울분을 상기시키고 체제의 무능함을 고발하는 메시지와 대중의 저항을 부채질하는 구호를 처방전 삼아 대중의 힘을 한데 모아 나갔다”.

“인류 문화의 실제적 가치에 있어서 존재하는 것은 세계주의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민족성입니다. 민족이 더 이상 창조적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세계적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실제 창조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민족이 이러한 국제주의의 전담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바로 유대민족 말입니다. 유대민족은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힘과 능력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족속입니다. 그 민족은 교활하고 투기적인 경제 영역에만 정통합니다. 인종으로서 유대인은 비상한 자기 보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만 인간으로 볼 때는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유대인은 민족 파괴의 악령이자 여러 민족을 지속적으로 파괴하는 상징입니다.”

대중들의 동의를 이끌어냈던 히틀러의 대표적인 수사 기술은 ‘적을 만드는 행위’에서 나타난다. 히틀러는 당시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었던 불만을 한데 모아 분출시킬 수 있도록 가상의 적을 설정하고 모든 폐해의 원인으로 그 적을 꼽는 화술을 사용한다.

히틀러는 당시 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여러 이데올로기를 먼저 그의 적으로 삼는다. 그는 이데올로기들에 ‘반-’을 붙여 대중 앞에 나갔다. 히틀러는 반마르크스주의, 반자본주의, 반의회주의 등 정치 선전의 중심이 된 용어들에 청중들의 적개심을 결집시킨 후 곧 보다 뚜렷한 실체인 유대인들로 적개심의 대상을 이동시켰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국제적으로 폐해를 끼치는 ‘악마’로 묘사한다. 그는 독일 민족의 불행은 유대인의 음모에서 비롯했으며 이를 타파하는 것은 히틀러만이 할 수 있는 사명이라는 점을 청중들에게 끊임없이 주지시켰다. 즉 유대인은 공공의 적이므로 이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쳐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적 영역에서도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소외와 상실감의 원인을 오롯이 유대인들에게 돌렸다. ‘창의력을 동원해 몸소 뛰는 산업가’와 대비되는 ‘이자 소득으로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이들’을 공격의 표적으로 삼았고 유대인들의 호화스러운 생활상을 과장해 덧칠했다.

히틀러는 이러한 네거티브 어법을 사용해 대중들에게 증오감을 불러일으키며 이 증오감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종종 법규와 법정을 언급했다. 즉 민중들이 증오감을 품고 있는 대상은 ‘범법 행위’를 저지른 자들이기 때문에 단죄돼야 마땅하다는 논리였다. 이처럼 히틀러는 정적에 대한 비판을 도덕적 공격으로 이상화함으로써 청중들의 과격성을 강화했다. 이는 대중에게 공격 목표를 부각시키고 그들의 광신적 개입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히틀러의 사례에서처럼 수사학은 오용된 전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학에 대한 연구는 연설 기법으로 포장된 맹목적 외침과 부정의를 발견해내기 위한 기반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수사학은 왜 사람들이 히틀러에게 열광하는지를 알려주고 더 이상 포장된 불합리에 ‘속지 않기’ 위한 지침을 주는 학문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씨앗과 오용의 위험성 모두를 품고 있는 수사학. 이렇듯 양날의 검을 가진 수사학의 향방은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말의 힘’이 존재하는 한 수사학은 앞으로도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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