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으로 얼룩진 개발 현장의 악몽은 언제까지 되풀이될 것인가.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며 진행되는 개발의 폭력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고통을 안기고 있다. 『대학신문』은 강제 철거 집행이 이뤄진 상도4동 산65번지의 개발 현장을 찾아갔다.

◇사라져 가는 마을, 상처만 남은 사람들=지난달 27일 기자가 찾아간 상도4동 산65번지는 한차례 폭격을 맞은 것처럼 무거운 적막감이 돌고 있었다. 마을 어귀부터 걸려있는 “부자만을 위한 막 개발 규탄! 상도4동 철거민 주거권을 보장하라!”등의 현수막과 낙서들은 현장의 분위기와 마을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을 실감나게 했다.

사진: 서진수 기자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곳곳에서 강제 철거의 상흔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발짝씩 내딛을 때마다 밟히는 무너진 담벼락의 파편과 깨진 유리 조각들은 이곳을 휩쓴 철거의 흔적을 드러냈다. 한 주민은 좌절감과 무기력함이 서린 눈빛으로 기자를 봤다. 익명을 요구한 이 주민은 무참하게 헐린 동생의 집을 보여주면서 “모든 것을 다 부수고 빼앗아 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고도 없이 모든 것을 앗아간 철거의 광풍(狂風)=이처럼 마을이 좌절과 슬픔의 공간으로 변한 이유는 개발 추진 회사에서 고용한 용역 업체가 강제 철거를 집행했기 때문이다. 기자가 방문하기 이틀 전 25일 새벽 4시부터 이곳에서는 600여명의 용역업체 직원들에 의해 강제 철거 및 명도(사람과 가구 등은 밖으로 내보내고 집을 철거하는 행위)가 진행됐다. 이날 철거 대상은 76가구로 그 중 34가구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용역들은 주민들에게 사전 통보도 없이 철거를 진행했다. 아침 8시까지 용역들은 철거 현장의 주민 거주 여부 등을 판단해 철거 시행을 허가하는 집행관도 동행하지 않은 채 철거를 집행했고 철거에 필요한 펜스 및 분진막도 설치하지 않았다. 또 철거 전문 인력이 아닌 용역 아르바이트생들이 철거를 진행하는 등 법망을 피한 편법 철거 정황이 여기저기서 드러났다. 결국 철거는 오후 3시경 용역들이 석면 실태 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철거를 진행한 사실이 드러나며 중단됐다.

비록 몇시간 동안의 철거였지만 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사실상 거주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파괴됐다. 25년째 이 마을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이은주씨(75)의 집은 용역의 횡포로 심각하게 훼손돼있었다. 이씨네 담벼락은 용역의 해머질로 벽돌 몇 조각만 남겨놓은 채 모두 허물어졌고 집 주변 여기저기서 쓰레기와 부서진 가구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 성당에 가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 십여명의 용역 직원들이 망치 등 철거도구들을 들고 서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뇨병을 앓는 데다 눈도 잘 보이지 않는 이씨는 용역에 저항할 수 없었고 집을 비울 수 있도록 3일만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용역들은 이씨를 억지로 끌어내고 집 안의 가구와 집기들을 트럭에 실었다. 용역들이 이씨의 시신기증 서약서와 신분증 및 복지카드 등도 가져가 이씨는 이를 돌려받기 위해 보관 창고까지 찾아갔지만 “찾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이씨는 “용역들은 아무 예고도 없이 나타나 모든 걸 부수고 갔다”며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형편에 그나마 지붕은 무너지지 않았으니 여기서 그냥 지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진: 서진수 기자

가족과 함께 이 지역에 정착한 김모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철거 하루 전날 용역들은 김씨의 집에 찾아와 “근처의 빈 집만 철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튿날 새벽 남편이 직장에 나간 사이 용역들은 집에 들이닥쳤고 김씨와 두 딸을 끌어내 철거를 집행했다. 갑작스러운 용역의 등장에 놀란 김씨는 두 딸에게 나갈 준비를 시키고 급한 짐이라도 꺼내 오겠다고 호소했지만 용역들은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철거를 집행했다. 그날 아침 용역들은 자녀의 학자금을 위해 모아둔 돈과 기본적인 생필품도 모두 빼앗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김씨는 잠옷 바람에 길로 끌려나온 딸들 앞에서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10분만 시간을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용역업체는 물론이고 근처의 경찰들까지 침묵하더라”며 “보증금 한 푼 못 받고 모든 것을 뺏긴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의 집을 찾아갔을 때 집 안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벽과 유리창은 산산조각 나있었다.


사진: 서진수 기자

◇사람을 위한 개발 아닌 사람 위의 개발=이처럼 주민들에 대한 고려 없는 일방적인 개발의 배경에는 상도4동 산65번지에서 벌어진 오랜 개발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은 원래 양녕대군을 모시는 사당인 지덕사 소유의 땅이었다. 임대료가 낮은 이 지역에는 45년 전부터 저소득층 가구들이 모여들어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0여년 전부터 이 지역을 재개발한다는 소식이 퍼졌고 지난 2004년에는 주택재개발 기본계획이 수립됐다. 2007년 6월에는 이 지역이 서울시의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재개발이 추진됐고 같은해 12월 주민과 가옥주를 중심으로 조합이 설립됐다. 무허가 건물도 개발 시 건물주들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는 ‘무허가 건축물 관리대장 제도’를 통해 이 지역 주민들도 조합을 설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발 이익을 노린 ‘세아주택’은 지덕사의 이사, 조합설립을 담당하는 구청 공무원, 조합 간부들에게 뇌물을 주는 등 비리를 통해 조합이 땅을 매입하기 전에 이 지역을 사들였다. 이후 세아주택은 조합에 소송을 걸어 이 지역의 재개발 계획을 취소시켰고 사업 시행권을 얻어냈다. 그 결과 상도동 개발은 민영개발로 전환돼 세입자들은 아무런 보상을 못받고 쫓겨나게 됐다. 재개발의 경우 조합원들은 해당 지역에 대한 우선 입주 자격을 부여받고 세입자들은 임대주택을 공급받는 등의 보상이 이뤄지지만 민영개발은 시행사에서 지역주민들에게 보상해줄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09년 10월 세아주택의 뇌물 공여 사실이 드러나며 상도4동의 민영개발은 중단되는 듯했다.

그러나 몇달전 세아주택 대표 기모씨가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빈민해방철거민연합에 따르면 기모씨는 부인 명의로 ‘세아건설’이라는 회사를 세워 이 지역의 철거 및 명도 집행을 감행했다. 세아주택이 당시 여러 은행들로부터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대출받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자금 1,600억과 이에 대한 이자를 갚기 위해 무리한 철거를 개시한 것이다. 현재 세아건설은 가구당 보증금 200만원을 지급한다는 단서를 달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강제 명도를 집행한다는 입장이다. 주민 강모씨는 “며칠 뒤에는 용역 직원 20여명이 마을에 상주하며 남은 집을 철거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이전에도 몇차례 철거 집행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살벌한 분위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담당 구청에서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며 “법적 문제를 떠나 주민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지만 해당 구청과 정부가 뒷짐 지고 있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마을에는 120여 가구만이 남아 언제 철거당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주민들은 한 목소리로 개발 추진 과정에서 ‘선 대책, 후 철거’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도4동 가족대책위원회 오경숙 부위원장은 “개발을 추진하더라도 세입자에 대한 임시 주거지 마련이나 이주비 지급이 이뤄져야 하고 가옥주들에게 분양권 등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며 “지덕사의 땅이 국가 유산을 통해 받은 땅인만큼 국가의 적극 개입을 바탕으로 한 개발로의 전환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한 상도4동 개발 현장에서 푸르게 물들어가는 5월의 시간은 하루하루 절망으로 느껴질 뿐이다. ‘사람 위의 개발’이 아닌 ‘사람을 위한 개발’이 이곳에서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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