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특집 기고]

노광표 부소장
한국노동사회
연구소
어제는 세계 노동자들의 생일날인 121주년 노동절이었다. 하지만 생일을 맞은 노동자들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임금은 하락했고 전세대란, 물가폭등으로 살림살이가 각박해진 결과이리라. 최근 발표되는 경제 통계들은 노동 현장의 불만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인 노동소득분배율은 2006년 61.3%에서 2010년 59.2%로 떨어졌다. 반면 국민소득 중 기업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지난해 보다 16.4% 늘었다. 경제위기 극복은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고통분담이 아닌 노동자의 ‘고통전담’으로 귀결된 것이다.

노동자 살림살이가 팍팍한만큼이나 어려운 환경에 놓인 것은 노동조합운동이다. 노동조합 조직 내부의 활력은 떨어지고 사회적 지지도 날이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 기업규모간·고용형태별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는 확대되고 노동조합은 이에 대한 제어 기능을 상실했다. 노동조합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역할과 기능은 갈수록 축소되고 자본 독주의 기업사회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불평등 완화와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은 노동조합이 떠맡아야 할 1차적 몫이다. 결국 한국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 하락과 세계 최장의 근로시간은 노동조합의 약화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강력한 조직자원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말해지는 한국 노동조합의 조직 역량은 드러내기 부끄러울 정도로 초라한 형편이다. 노동조합의 힘을 가늠하는 노조조직률은 1989년 19.8%에서 지난 20년 동안 줄곧 하락하여 2010년 현재 10.1%이다. 프랑스를 제외하면 우리의 노조조직률은 OECD 국가에서 가장 낮다. 낮은 조직률과 함께 조직 역량도 취약한데 그 원인은 ‘기업별노조’ 체제에 있다. 160만의 조직 노동자들이 기업별로 나뉘어 1개 노조당 평균 265명씩 쪼개져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유럽과 같이 산업별로 묶여 있는가 아니면 우리처럼 기업별로 분단되어 있는가는 노동조합 활동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유럽 노조운동은 교육비 부담과 노후 생활 대책을 국가에 요구하여 쟁취하지만 한국의 노동자들은 기업에 요구해 해결하고자 한다. 최근 논란이 됐던 현대차지부의 25년 이상 장기근속 직원의 채용 가산점 요구는 기업별 울타리에 예속돼 있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심리에 편승한 기업이기주의의 전형적 사례다.

낮은 조직률과 함께 노동조합 조직의 대표성도 취약하다. 종업원 1,000인 이상 사업장의 조직률은 62.4%인 반면 100인 미만 사업장은 22.7%에 불과하다. 게다가 기업별노조의 조합원 자격은 회사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에 한정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현재의 노조운동은 영세중소업체 및 비정규직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전체 사회에 구조화된 ‘양극화의 그늘’은 노동조합운동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진정한 ‘벗’이 되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나라 노조운동의 구조적 취약점과 연관돼 있는 것이다.

취약한 노조의 힘과 사회적 위상 저하는 다시 노동 양극화를 부추긴다.  노동의 양극화를 극복하고 계급 연대를 실현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노동조합운동의 당면 과제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년의 노동운동은 전체 노동계급의 희망이 아닌 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바다 위에 고립된 섬 지키기 싸움이었다.  

2011년 양대 노총은 그 동안 주력했던 정규직 중심의 활동에서 벗어나 저임금노동자의 생활개선을 위한 ‘최저임금 시간당 1,000원 인상’과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 및 정규직화에 주력할 것을 선언했다. 노동계 요구의 현실화에는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그 방향은 옳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실천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기업별 울타리에 안주하고 정규직의 이익에 갇혀있는 한  미래는 없다. 121주년 세계 노동절에서 다짐해야 할 노동의 청사진은 ‘같이 살기’ 운동이다. 지역과 업종, 고용형태와 성별 그리고 인종을 뛰어넘는 공동체의 구현이야말로 노동의 방향이고 비전이다. 노동조합운동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노동운동의 자기 혁신 및 창조적 파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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