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명예교수
(자연대)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요즈음 우리 캠퍼스는 화사한 봄꽃들로 가득 차 새내기 신입생들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하고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1955년의 봄도 그러했다. 동숭동 문리대 캠퍼스는 마로니에 한 그루를 가운데 두고 3월부터 개나리와 벚꽃이, 그리고 5월에는 라일락이 만개해 그 진한 향기가 캠퍼스를 덮어 새 학년이 시작됐음을 실감하게 하였다. 참고 서적이 절대 부족했던 그 시절 학문에 목말라 수강신청 없이 그냥 들어가 수업을 듣는 소위 ‘도강’이 유행해 유명 교수의 명강의들은 일찍 가지 않으면 뒷자리에 서서 강의를 들을 수밖에 없을만큼 강의실이 차고 넘쳤다. 자연과학을 전공하면서도 철학이나 역사, 문학 강의들에 더 관심을 가지고 도강하려고 기웃거린 것은 아마도 기초 학문을 교육하는 문리대의 학풍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 자유전공학부를 설치하고 학제간의 벽을 허물려는 것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후 사라져버리고만 문리대의 통섭적인 교육을 되살려보려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런데, 평생을 대학에 몸담아 있던 나를 유감스럽게 하는 것은 교수에 대한 호칭이다.  예전에는 대학 교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는데, 언제부터인지 그것이 ‘교수님’으로 바뀌어 이제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거의 들을 수 없게 됐다. 후학이나 제자들로부터 듣는 이 교수님이라는 호칭은 나를 너무나 낯설게 한다. 그들에게는 내가 학문이나 팔면서 사는 직업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가. 적어도 스승이었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데 말이다. 낯선 사람 아무에게나 쓰는 가장 편한 호칭이 선생이기 때문에 자신들을 교육한 은사를 존경하는 뜻으로 교수님이라 부른 것이라고 자위하지만 그렇게 따진다면 교수님 또한 너무 남용돼 대학 아닌 다른 직업인에게도 얼마든지 쓰는 말이 아닌가!

일본 대학에서는 ‘제자’와 ‘가르친 학생’, 그리고 ‘선생’과 ‘교수’라는 호칭은 엄격히 구분한다. 제자는 자신의 학문을 전수한 그야말로 학문적인 제자이고 가르친 학생은 강의를 들은 학생, 그리고 선생은 내게 학문을 가르친 은사이고 교수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호칭은 마음의 표현이다. 대학에서 교수가 은사로 보이지 않는다면 선생님이라는 말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개학 첫 시간 수업에 들어갈 때 마다 학생들에게 일러주는 이야기가 있다. 이 책 속에 들어 있는 한줄 문장의 진리를 찾아내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생을 전부 바쳐 헌신하였는지 아느냐고, 아니 그렇게 일생을 다 던졌지만 그 연구업적을 교과서에 단 한 줄로도 남기지 못한 무명의 연구자들이 얼마나 많이 뒤에 숨겨져 있는지 생각해 본 일이 있느냐고. 대학에서 배울 학문은 글이 아니라 정신이고 마음이다. 그것을 가르친 사람은 교수가 아니라 스승이고 선생인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