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동향] 서울대 평화인문학연구단 출범

지난달 29일(금)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평화인문학연구단’ 출범식을 열고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연구단은 연구 교수와 연구원 20~30명 규모로 꾸려질 예정이다. 통일평화연구원장 박명규 교수(사회학과)는 전쟁방지나 분쟁해결에 주목했던 초기 평화학은 현실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예측에 주력했다며 “본 연구단에서는 초기 평화학의 주제를 넘어 인간의 심성, 가치와 정서, 담론과 습관의 차원까지 포괄하는 인간 활동의 전 영역에서 평화를 탐구하는 평화인문학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사회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에 의해 창시된 평화학은 ‘평화’라는 분명한 사회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것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가치표방적 학문이다. 이는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학계의 주류를 이뤘던 행태주의의 가치중립적 방법론이 한계를 드러냄에 따라 정립됐다. 행태주의는 논리실증주의를 내세우며 엄정한 논리에 토대를 두고 학제의 정식화에 기여했다. 하지만 정작 현실 속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가치를 수반한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이에 대해 분명한 답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이에 평화학은 ‘평화’라는 이상을 정하고 작게는 전쟁이 없는 소극적 평화 개념에서부터 크게는 자유, 평등, 정의, 환경보호와 같은 제반가치에서 삶의 질이 보장되는 적극적 개념에까지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현재 세계 각지의 학술 단체가 평화학을 연구하고 있다. 2000년 설립된 ‘세계평화포럼’은 평화개념을 정치, 군사외교, 사회경제의 세 부분으로 나눠 매년 ‘세계평화지수(World Peace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2010년의 경우 네덜란드가 76개국 중 1위에 선정됐고 한국은 북한과의 대치 상황이라는 특수한 여건으로 인해 ‘군사외교평화지수’ 부문에 낮은 점수를 기록하며 47위에 머물렀다. 박명규 교수는 “전 세계에서 평화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논의 속에 현재 한반도가 겪고 있는 조건들이 충분히 녹아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평화 전반에 대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되 이를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에 적용해 통일 연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개최된 학술대회는 ‘통일을 바라보며 평화를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한반도의 통일·평화와 관련해 서영훈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이사장, 세계평화포럼 김진현 이사장, 도쿄대 기미야 다다시 교수가 강연했으며 통일평화연구원장 박명규 교수(사회학과)의 사회로 ‘한반도형 평화구상과 모색’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반(反)폭력을 내세우는 평화학의 견지에서 현재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타개책은 통일이다. 통일평화연구원을 비롯한 국내 연구소에서는 그간 각 정부의 대북정책과 그에 대한 평가를 비롯해 남북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인식과 제반 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박경서 이화여대 평화학연구소장은 “질병, 굶주림, 무지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 ‘인간안보’의 견지에서 평화학은 근본적인 안보의 대상으로 ‘인간’을 지향한다”며 “이러한 견지에서 통일은 비폭력,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또 그는 “정전협정이 상호불가침조약을 바탕으로 한 평화협정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구체적인 연구의 분과”라며 그 전범(典範)으로 1975년 31개국의 동의와 함께 이뤄졌던 동구권 평화 협정 ‘헬싱키 프로세스’를 들었다.

또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어느 한 체제의 절대적 우위성을 전제하고 어느 일방의 주도로 통일이 진행돼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기미야 다다시 교수(도쿄대 종합문화연구소)는 29일 학술대회에서 “평화는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사회적 불공정이라는 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라며 “남북한이 어느 한 쪽을 흡수함으로써 통일을 이룰 수 있고 현상유지인 분단체제 지속은 평화가 아니라는 평화관은 평화연구의 평화와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핵 무장 문제에서도 무작정 북한의 태도만을 비판하기보다는 북한에게 핵 무장 유인을 제공했던 시대 담론에 대해서 다시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평화인문학연구단은 통일과 개방시대를 지향하는 제도적 구조와 미래지향적 융합지식체계를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10개년의 장기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박명규 교수는 “평화인문학의 융합지식체계 구성을 모색할 때 중요한 것은 한반도형 평화인문학의 이론적 근거들을 확보하는 작업”이라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언급했다. 전쟁과 갈등을 종식하고 진정한 ‘평화’의 도래를 위해 앞으로 어떤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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