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23년 중국에서 위, 촉, 오 삼국이 경쟁했던 시기. 촉의 군주 유비가 죽으면서 승상 제갈량에게 한실을 부흥시키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로부터 2년 후, 제갈량은 위나라를 북벌하기 위해서는 반란이 끊이지 않던 남방을 먼저 평정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오늘날 운남, 귀주, 사천성 서남부 지역 등지에 원정한다. 당시 가장 강력했던 반군의 수령인 맹획을 사로잡았으나 승복하지 않자 제갈량은 그가 마음으로 승복할 때까지 풀었다 잡았다를 일곱 번 반복한다. 결국 맹획은 패배를 인정하고 촉의 지배를 받아들이며 제갈량은 후방의 걱정 없이 북벌에만 전념하게 된다.

소설 [삼국연의]에 나오는 ‘칠종칠금’(七縱七擒) 이야기다. 수많은 전투에서의 승리보다도 상대의 민심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우치게 하는 일화다. 인심이 각박해져서인가. 현대에는 이런 미담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테러, 응징을 빙자한 전쟁, 살육 등이 난무하는 현실이다. 지난 주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이 ‘제거’됐다. 정황상 애초 미국의 작전 목적은 생포라기보다는 사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제법 위반, 오만한 제국의 폭거 등 여러 비난을 예상했을 텐데도 이를 감행한 미국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세계무역센터가 사라진 지 10년, 대테러전쟁을 일단락 지으면서 아프간에서 발을 빼기 위한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서인지, 금융위기의 여파로 어수선한 국내 여론을 결속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슬람권의 민심은 안중에 없는 듯 보인다.

빈 라덴을 제거하는 작전명이 ‘제로니모’였던 것도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일견 타당한 명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제로니모’는 아메리카 원주민 아파치족의 용맹스런 한 전사의 별칭으로 19세기 후반 인디언 소탕작전을 벌이던 미국 군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인물이었다. 당시 미국 국민들에게 흉악범이자 테러범으로 여겨졌을 제로니모는, 운이 좋았던 것일까, 사살되지 않고 연금상태에 놓이게 된다. 다른 쓸모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1898년 미국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에 등장해 야성의 시대를 추억하는 상징으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전사 제로니모의 퇴락은 결국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의 파괴를 최종적으로 선언하고 입증하는 실례였던 것이다. 미 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작전명이 제로니모였던 것은 용기와 희생의 상징인 제로니모의 정신을 작전 수행원들에게 북돋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호명을 통해 정복과 파멸의 슬픈 역사가 오버랩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맹획이 군림하던 남만을 평정한 제갈량은 전쟁으로 죽어간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사람 얼굴 모양의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만두의 유래다. 이번 작전 성공 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의 현장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해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그가 방문해 진혼제를 올릴 곳이 미국에만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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