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지출 증가와 금융기관 폭리로 서민 빚 늘어
법정 이자율 제한 강화 등 실질적 대책 요구돼

외환위기, 세계금융위기에 이어 바야흐로 ‘가계부채의 위기’다. 서민 가계는 계속되는 생계비의 증가와 금융기관의 폭리 추구로 빚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발표한 ‘2010년 중 자금순환’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부채는 937조 3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1,172조원에 가까운 수치로 2002년 496조원에서 두 배 가량 증가한 규모다. 이에 반해 일반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은 부채의 증가를 감당하기에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행의 ‘2011년 1분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46%로 2005년 120%에서 크게 증가했다. 상환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무거운 부채 부담으로 서민들이 빚더미를 떠안게 된 것이다.

이처럼 가계부채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 배경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계의 소비지출이 자리 잡고 있다. 참여연대의 ‘한국 가계부채 현황 및 과제Ⅱ’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근로소득은 0.2% 감소했지만 소비지출은 1.3% 증가했으며 이후 소비지출 증가율이 근로소득 증가율보다 높은 양상이 계속됐다. 소득이 감소해도 개별가구들은 일정 수준의 소비지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생활 필수지출 영역인 교육과 주거 부분의 지출이 한 가구의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과 2009년 사이에 약 0.2%씩 증가했다. 게다가 지난 1일부터 도시가스 요금이 5% 가까이 오르는 등 주요 공공요금이 가격 인상을 예고한 상황이라 생계유지 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장상환 교수(경상대 경제학과)는 “고액 등록금과 전세대란 등으로 가계의 필수지출 비용은 늘어남에도 정부의 지원은 적어 가계가 전적으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손을 내민 서민들은 높은 대출 금리로 빚의 수렁에 빠지기 십상이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일반대출 금리는 평균 15.22%이고 캐피탈사는 24~29%, 카드사들의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는 약 28%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또 대부업체들은 신용대출금리가 무려 42.3%에 달했는데 금융위원회의 실태조사에 파악되지 않은 대부업체들의 연평균 이자율은 최대 698%까지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권오인 부장은 “저소득층 서민들은 신용등급이 낮아 제2금융권의 대출을 받아야 하지만 금융기관들이 고금리 신용대출상품만을 내놓아 서민층 가구들은 파산의 위기에 몰린다”고 말했다.

서민들의 대출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으로 현재 44%인 법정 최고 이자제한율을 낮춰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참여연대 사회경제팀 김진욱 간사는 “주에 따라 5%에서 16% 사이의 이자율 상한선을 설정한 미국 등의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이자율 제한은 미미한 상황”이라며 “필수 생계지출로 가계부채를 짊어져야 하는 가구들이 많은 만큼 법정 상한 이자율을 25% 수준까지 낮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저신용 가구들이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에 의지하지 않도록 저금리 금융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상동 경제연구센터장은 “금융 공공성 확대를 위해 저소득, 저신용 계층에 대한 무담보 신용대출사업인 마이크로 크레딧을 활성화하고 우체국과 농협 등 공공 금융기관의 공익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서민들의 가계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민생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개별 가구들이 금융기관의 대출에 의존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 교육, 주거, 의료 등 생활 필수 지출에 있는만큼 공공의 복지 정책을 확대해 가처분 소득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장상환 교수는 “취약한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해야 가계부채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해소할 수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가계 부담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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