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진정사효선쌍미’에 그려진 모자

▲ © 삽화: 강동환 기자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명문선독과 비평’이라는 교양과목을 몇 년 동안 담당한 적이 있리 고전 중 좋은 글들을 읽고 선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었는데, 학기마다 교재를 재편성하느라 고전들을 다시 검토하곤 했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삼국유사(三國遺事)』 「효선(孝善)」 편에 수록된 「진정사효선쌍미(眞定師孝善雙美)」이다. 어떤 학기인가 강의 자료를 뽑던 중 이 작품을 다시 읽고서는 이것이 단순히 진정법사가 효도와 선업을 다 이뤘음을 기렸을 뿐 아니라 그 어머니도 기린 것임을 비로소 알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진정법사의 어머니야말로 우리 민족이 기념해야 할 어머니의 전형적 형상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진정법사의 이야기는 이렇다. 진정은 출가하기 전에 군대에 예속되어 있어서 복무 여가에 품을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했다. 재산이라곤 다리 부러진 솥 하나였는데 그것마저 어머니가 시주를 청하는 스님께 주고 말았다. 진정은 좋은 일을 하셨다며 기뻐하고는 질그릇동이를 솥으로 삼아 어머니를 봉양했다. 진정은 의상대사가 태백산에서 설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문득 가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겨 어머니에게 효도를 다한 뒤에는 의상대사에게 가서 배우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당장 떠나라고 했다. 의지할 곳 없는 어머니를 두고 출가할 수 없다고 했으나 어머니는 쌀자루를 모두 털어 밥을 짓고는 밥을 지어먹으면서 가면 늦으니 당신 보는 앞에서 먹고 나머지는 모두 싸 가지고 떠나라고 재촉했다. 거듭 울면서 간청해도 듣지 않자 마침내 진정은 길을 떠나 밤낮으로 걸어 사흘만에 태백산에 이르러 의상의 제자가 되었다. 3년 뒤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오자 진정은 선정(禪定)에 들어 7일만에 일어나서는 의상에게 아뢰니, 의상대사는 그 어머니를 위해 소백산 추동(錐洞)에 가서 제자 3천명에게 90일 동안 화엄경을 강했다. 강의가 끝나자 그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나는 벌써 하늘에 환생했다”고 했다.


어머니란 어떤 존재이고 자식된 도리란 또 무엇인가. 진정이 참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자 그 어머니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곧바로 결단을 내린다. 일상에 묻혀 평범하게 살지만 어떤 결정적 순간이 오면 매섭게 결단력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역사상 훌륭한 어머니들이 갖고 있었던 자질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이 결단력에는 또한 통찰력도 포함되어 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불도에 귀의하겠다는 진정에게 그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불법은 만나기 어렵고 인생은 너무도 빠른데 효도를 마친 뒤면 늦지 않겠느냐. 어찌 내 생전에 네가 불도를 들었다는 소식을 내게 들려주는 것만 하겠느냐.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가는 것이 좋겠다.” 이 결단력과 통찰력은 오늘날 우리의 어머니들에게도 잠재해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한편 진정은 역시 효녀 지은(知恩)(『삼국유사』의 「효선」편과 『삼국사기』 「열전」에 나온다)이 깨달았던 것처럼, 물질적 봉양보다 그 어머니의 마음을 편케 하는 것이 효임을 자각하고 태백산으로 떠났다. 그가 떠날 때 당대의 선지식인 의상을 만나 불법을 듣고 깨달았다는 소식을 어머니에게 들려주리라 결심하고 떠났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 마음을 편하게 하는 길이 불법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만 여기지 않았을까. 그래서 사흘 밤낮 쉬지도 않고 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먹밥을 먹으면서 갔으리라. 어쨌든 진정은 의상의 화엄 10대 제자의 반열에 들었고, 의상대사가 진정의 어머니를 위해 추동에서 화엄경을 설법한 요지는 제자 지통(智通)이 정리하여 『추동기(錐洞記)』 2권으로 펴냈는데, 현재 그 이본이 『화엄경문답』이란 이름으로 일본에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김종철 사범대 교수ㆍ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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