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월) 대전에서 안정 나씨 분묘를 이장하던 중 미라 4구가 발견됐다. 한글 편지, 옷가지, 백자 등 유물 140여 점 등과 함께 발견된 미라는 여러 분야의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2001년 발굴된 경기도 양주의 소년미라 ‘단웅이’, 2004년 발굴된 대전의 ‘학봉장군 부부 미라’, 2007년 발굴된 강릉의 ‘최경선 선생 미라’ 등 2000년대 이후 조선시대의 미라가 발굴되며 미라를 소재로 한 사학 및 의학 분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흥미와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미라가 병리학, 사학, 복식학, 고고학 등에서 사료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매장법에서 기인한 미라의 ‘우연한 생성’=우리나라 미라는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주로 발견된다. 우리나라 미라는 이집트 미라 등과는 다르게 자연발생적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집트처럼 인공적인 시신 보존 문화가 없었고 자연적 건조에 의해 미라가 만들어지는 환경도 아닌 우리나라에서는 시신이 ‘미라’로 발굴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16세기에서 17세기 초부터 조선에서 유행한 밀폐식 매장법 때문에 국내에서도 미라를 발굴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사대부 계층에서 사용된, 관 주위에 회를 둘러 쌓는 회곽묘 속에서 시신이 우연히 미라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임세권 교수(안동대 사학과)는 “무덤에 회곽을 쓰고 관을 이중으로 밀폐시키는 과정에서 시신이 외부공기와 완전히 차단돼 시신이 썩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라로 하는 고병리학 연구=이같은 생성 과정으로 인해 우리나라 미라는 훨씬 많은 병리학적 정보를 담고 있다. 장기를 모두 적출하고 내부를 충전물(充塡物)로 채운 이집트 미라 등과 같은 ‘인공적 미라’와 달리 국내 미라는 장기의 상태가 양호하고 수분 함유율도 높기 때문이다. ‘한국미라 연구를 위한 학제간 연구모임(가칭)’에서 미라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신동훈 교수(의학과)는 “미라와 같은 고고학적 시료(試料)를 통해 질병사를 보다 과학적으로 복원할 수 있다”며 의학 분야에서 미라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연구의 실례로 작년 발표된 ‘학봉장군 부부 미라’ 연구가 대표적이다. ‘서울 정광호 치과’의 정광호 원장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 「학봉장군 부부미라의 고병리학적 분석」에서 학봉장군 부부 미라를 통해 당시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밝히고자 했다. 약 600년 전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학봉장군 부부 미라’를 토대로 당대인들의 질병, 치료법, 식생활을 추론한 것이다. 정원장은 광학 현미경 관찰을 통해 부부 모두의 장기에서 간흡충란을 발견했다. 간흡충은 민물고기를 익히지 않고 먹었을 때 감염되는 것으로 이 발견을 통해 당시 조선인들이 민물고기를 날로 먹는 식생활을 했음이 밝혀졌다. 학봉장군의 식도에서는 부들류 화분(花粉)이 다량 검출되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양의 수천에서 수만배의 화분이 검출된 것으로 보아 이 화분은 의도적으로 섭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들류의 화분이 한방에서 각혈 및 토혈을 다스리는 데 사용된다는 내용이 중국의 본초강목, 조선의 동의보감 등에 모두 기록된 점으로 미루어볼 때 학봉장군이 각혈 혹은 토혈을 동반하는 질병을 앓았고 치료 목적으로 부들류 화분을 섭취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미라 연구를 풍부하게 하는 껴묻거리 연구=미라 자체만이 연구대상은 아니다. 미라와 함께 발굴되는 의복, 편지 등 껴묻거리들 역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송미경 교수(서울여대 의류학과)는 “미라가 발굴될 때 옷이 썩지 않고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며 의복 연구에서 미라 발굴이 갖는 의의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미라가 발견된다는 것은 관 안의 보존상태가 양호함을 의미하므로 껴묻거리 물건들도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이미식 교수(서울여대 의류학과) 역시 “미라와 함께 출토되는 의복은 그 실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복식 연구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삼베로 된 수의만을 입히는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고인이 평상시 입던 옷을 그대로 입혀 입관했기 때문에 당시 의복이 그대로 출토된다. 임진왜란 이후인 1622년 사망한 것으로 기록된 ‘강릉 미라’를 조사한 송미경 교수는 미라의 의복에 대해 “임진왜란을 전후로 복식이 크게 바뀌었는데 강릉 미라의 의복은 복식의 변화상을 고찰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설명했다. 강릉 미라 의복은 앞으로도 여러 방향의 복식 연구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송 교수는 “현재 보존처리된 상태로 복식이 가진 형태나 직물, 바느질법 등을 조사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1998년 발굴된 ‘안동 미라’는 부부간 호칭 문제에 대한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주목받았다. 안동 미라를 발굴하는 데 참여한 임세권 교수는 “부인이 남편에게 ‘자네’라고 부른 것이 편지에 드러났다”며 이 호칭이 조선 전기에는 남녀가 평등했다는 기존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또하나의 증거가 된다고 말했다.

한편 안동 미라는 함께 발견된 고인의 부인이 쓴 한글 편지가 소개되며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편지는 ‘원이 엄마’로 알려진 부인이 죽은 남편에게 쓴 만사(輓詞)다. 만사는 ‘죽은 이를 슬퍼하며 지은 글’로 남편을 잃은 부인의 마음이 절절히 표현돼 있어 임진평 감독의 「우리 만난 적 있나요」, 조두진의 소설 『능소화』로 각색되는 등 주목을 받았다.

◇학제간 공동 연구로 밝히는 미라의 비밀=이처럼 미라 한 구는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학제간 연구가 필요하다. 신동훈 교수는 “샘플링 과정에서부터 협동작업이 담보되지 않으면 연구 조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연구 대상이 사람의 신체인데다 같이 발견되는 유물들이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요구하므로 일반적 연구에 비해 참여하는 연구자의 폭이 넓어야 한다”며 학문간 융합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한국미라 연구를 위한 학제간 연구모임에는 복식사·생활사·기생충학·사병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해 한 구의 미라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밝히려 노력하고 있다.

올해 가을학기에 개설되는 인하대 융합고고학 전공과정에는 ‘한국미라연구’, ‘사람시료 분석’ 등 미라 연구가 정규 교육 과정으로 처음 편입됐다. 동시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의 분야 역시 사학·유전학 등으로 다양해 한국 미라에 대한 원활한 학제간 연구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미 세상을 뜬지 오래인 미라가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어쩌면 그들만이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를 비밀을 알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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