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에 39명의 여성의원이 탄생했다. 이는 전체의원 수의 13%로, 여성의원 비율이 5.9%에 불과했던 16대 국회를 상기해 보았을 때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7대 총선의 가장 큰 수확은 무엇보다도 여성 정치세력화의 발판을 확보한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의회 진출이 양적으로 늘었기는 하나 아직 그 질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박근혜씨를 앞세워 ‘여성 정치리더 시대’라고 표현한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2년 전 ‘박근혜 연대론’에서 제기되었던 문제의 되풀이로 보인다. 당시 박근혜씨가 유력한 대권후보로 손꼽히자 여성계 일부에서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자 독재자의 딸이자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인을 여성의 대변자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렇게 대립되는 두 입장은 일견 여성 정치세력화라는 공동 과제에 대한 전략의 차이로 보인다. 전자가 여성의 정치 참여 자체가 절박한 상황에서 여유를 부릴 수 없다는 입장이라면, 후자는 수구ㆍ반동적 여성정치인은 여성을 대표할 수 없기 때문에 지지의사 표명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구ㆍ반동적 여성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권자들은 여성이 부정ㆍ부패의 뿌리인 남성들의 학연ㆍ지연 등 연고주의에서 훨씬 자유로울 것이라고 기대하고 여성 정치인을 지지했다. 유권자들이 여성 정치인들을 선택한 것은 지역주의ㆍ연고주의ㆍ학벌주의 같은 비상식적인 차별을 철폐하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여성들도 그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구ㆍ반동적인 여성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은 여성 정치 참여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로 궁극적으로 여성권익보호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물론 여성계 일부에서 수구ㆍ반동적인 정치인에게 지지 의사를 밝히는 것도 여성들이 정치판에서 배제된 억압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표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는 철저히 막혀있었고, ‘여성주의적인 남성 정치인’은 더욱 기대할 수 없었다.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통로 자체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 문을 조금이나마 열어 보려는 절박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반개혁적인 여성 의원이 여성의 개혁적인 이미지에 기대어 정계에 진출한다면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여성 정치인에 대한 혐오만을 심어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7대 국회에 진입할 여성 당선자들에게 여성의 권익증진과 정치개혁, 민주발전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고 ‘위’만 바라보지 말고 ‘낮은 시선’으로 일상에서 차별받는 소수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성 대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그동안 정치에서 소외되었던 여성들의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며, 여성 유권자와 여성 정치인이 공존하는 길이다.

오랜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얼룩져온 한국의 정치적 지형에서 13%는 소중하다. 그러나 선진국의 여성의원 비율이 30∼40%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앞으로 여성후보할당제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여성의 정치참여를 보완해야 하며, 여성정치인들은 자신이 여성의 대표라는 것을 잊지 말고 정치 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여인천하’가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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