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민문학 작가

다른 독일문학

다와다 요코 지음ㅣ 최윤영 옮김ㅣ을유문화사


현대 독일문학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다른 독일문학”이다. 이는 독일에서 태어나지 않은, 그러나 독일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의 문학을 일컫는 것인데 이들 비독일계 작가들은 이미 400명을 넘어서고 있고 정통 독일 문학계의 주변에서 혹은 경계에서 낯설고 새로운 목소리들을 내고 있다. 오타 필립, 아라스 외렌, 일리야 트로야노프, 페리둔 자이모글루, 라픽 샤미, 프랑코 비욘디 등이 대표 주자라 할 수 있고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루마니아 태생의 헤르타 뮐러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이민문학, 이민자문학, 상호문화성문학, 외국인문학 등 이 장르를 일컫는 다양한 용어에서 보듯 이들의 문학을 하나의 범주로 쉽사리 묶어낼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큰 특징은 둘 이상의 언어들 사이에서 이들 문학이 탄생돼 나온다는데 있다. 자기 몸에 체화된 유창한 모국어가 아니라 여러 언어들을 부유하면서 혹은 사유하면서 이들 작가들은 언어가 내 몸에 밀착된, 외부세계와 내부세계를 자동적으로 전달해주는 매체가 아니라 사실 습득된 매개체임을, 그리고 우리의 사유가 사실 얼마나 언어에 종속돼 있는가를 보여준다.

살아있는 몸의 언어

다와다 요코 지음ㅣ 최윤영 옮김ㅣ을유문화사


위에 언급한 작가들 외에 두각을 나타내는 두 여류작가로는 에미네 세브기 외즈다마(1946-)와 요코 다와다(1960-)가 있다. 외즈다마(Emine Sevgi Özdamar)의 경우 터키 출신으로 터키 민주화운동시 박해를 받고 독일에 건너와 동베를린에서 브레히트 연극을 배우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엄마혀』(1990), 『인생은 숙박소』(1992), 『거울 속에 비친 마당』(2001) 등이 대표작이다. 초기 작품은 터키에서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는 작품인데 독특한 언어, 문체, 사고, 분위기 등 이국성이 부각돼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의 작품은 터키에서의 정치탄압, 민주화 운동, 여성 억압, 독일에서의 이주노동자 체험, 동서독 극단에서의 경험, 주류사회에서의 소외, 외국 출신 여성으로서의 삶 등을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다. 『엄마혀』는 두 문화 사이에 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시작한다.

우리나라 말(터키어)로 언어는 혀이다. 혀는 뼈가 없는 굽는 쪽으로 구부러진다. 나는 굽어진 혀를 가지고 이 도시 베를린에 앉아 있다.

에미네 세브기 외즈다마


외즈다마는 독일에서 200만 명이 넘는, 가장 큰 이민 집단이라 할 터키계 집단에 대한 선입견, 특히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단박에 깨버렸다. 두건을 쓰고 다니고 아버지와 오빠라는 가부장제의 보호(억압)하에 있는, 아름답고 까만 커다란 눈을 가진, 서구 남성의 욕망과 신비의 대상인, 말이 없는, 즉 자기의 언어가 없는 터키 여성이 아니라 60세가 넘는 나이에도 긴 까만 머리칼을 휘날리며 정열적으로 활동을 하고 글을 쓰고 연극과 영화를 만드는 여성으로서 말이다. 때로는 조용한 관찰과 성찰을 되새기고, 때로는 자신의 욕망과 아픔, 분노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때로는 동료와 친구들을 대신해서 자기 말을 하는, 언어를 가진 존재로서 말이다. 외즈다마는 또한 할머니, 어머니로 이어지는 터키의 모계 전통의 새로운 문화와 전통을 유럽에 소개했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 사람이란 그가 가진 달콤한 혀 이외에 다름 아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은 단어들을 땅 밑으로 같이 가지고 가셨을까를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의 말이 너무 그리웠다. 어머니는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수를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죽은 사람들의 세상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말들이 이제 저 땅 아래 같이 있을까? (『거울 속에 비친 마당』)

이 작가를 가장 먼저 문학적으로 분석해내고 발굴한 것은 영미권의 독문학이다. 이미 1980, 1990년대를 통해 독일 독어독문학과 다른, 독자적 노선을 추구해온 미국의 독어독문학은 그들의 문화이론, 특히 포스트식민주의이론을 바탕으로 독일문학을 다르게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이들 작가군을 적극적으로 발굴해냈다. 외즈다마의 텍스트는 상호문화성, 페미니즘, 혼종성, 경계성, 노마디즘, 정신분석, 육체성 등의 담론 속에서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학으로 평가 받았다. 그 외에 특기할만한 사항은 2006년 소외 ‘외즈다마 논쟁’이 독일문학계를 일년 내내 뜨겁게 달군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자이모글루의 장편소설 『라일라』(2006)가 과연 외즈다마의 『인생은 숙박소』를 표절했는가가 쟁점이었다. 그러나 이민문학의 두 대표자 중 누구의 말이 옳은가, 누구의 문학성이 더 뛰어난가를 떠나서 거의 유사한, 한 소녀의 유년시절 고향에 대한 회상을 남녀작가가 다르게 서술했다는 것은 젠더정치학이나 젠더시학의 입장에서 매우 흥미롭다. 독일 독자들의 기대지평을 반영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어머니의 이야기를 남성과 여성의 (욕망의) 시각에서 상이하게 썼기 때문이다.

언어 밖을 사유하다

외즈다마와 대척점에 선 작가가 바로 요코 다와다(Yoko Tawada, 1960-)라 할 수 있다. 다와다는 이미 12살 때부터 소설을 써서 복사해 돌렸고 와세다 대학에서 노문학을 공부하다가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독일로 건너 간 작가다. 대표작은 『목욕탕』(1989), 『오비드를 위한 마약』(2000), 『벌거벗은 눈』(2004) 등이 있다. 다와다는 독문학 박사이며 일본문학, 러시아문학, 독일문학의 문학적, 지성적 세례를 풍부히 받았고 독일어와 일본어, 두 언어로 글을 쓰고 드물게 두 나라 문학계 모두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또 해마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다와다에 대한 심포지움이 열리고 그 연구 결과가 책으로 엮어져 나오고 있다. 외즈다마의 사회비판적 관심과 달리 다와다의 초점은 언어비판에 있다. 다와다는 과연 언어란 무엇인가, 언어를 떠나서 세상을 볼 수 있는가, 사유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자신이 성인이 돼 배운 독일어의 낯섦을 극복하거나 정복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문학의 본령으로 삼는다. 그녀에게 모국어 화자가 보여주는 언어의 유창함은 언어의 종속 속에서 더 이상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지 않으려는 비겁함, 볼 수 없는 무능함으로 해석된다. 일본어와 독일어의 차이와 엇갈림의 영역에서 그녀는 세상의 빈틈, 언어화되지 않는 세계를 탐험하고자 한다. 다와다의 작품은 천천히 또박또박 글자 하나, 단어 하나에 주목해서 읽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이 시작되는 곳』에서 다와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와다 요코

사람들이 낯설다고 느끼면 많은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고 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풀리지 않는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집에 있어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데 사람들은 이 생각을 밀쳐버리고 모든 것이 분명하고 더 생각해볼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음을 깨닫는 상황들, 그것들이 나에게는 문학의 순간들이 된다.

다와다 요코의 텍스트를 읽으면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한 독자로서의 공감을 느낄 때가 많고 또한 그 가운데 드러나는 차이는 한국계 작가들의 출현을, 독일어권의 제2의 차학경과 제2의 이창래를 기다려보게 만든다. 유럽에서 가장 큰 한국인 집단인 독일교포들의 2세가 성인으로 성장했고 많은 한국계 입양인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라 앞으로 많은 작가들이 다른 시각에서 다른 체험을 다른 언어로 쓰게 될 것이다. 또한 배수아같은 외국 도시를 오가는, 혹은 타향에 정주하는 작가들도 다른 이야기를 쓰게 될 것이다.

언어의 사이에서

이들 이주 작가들 텍스트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번역의 어려움에 있다. 거의 모든 작가들이 자신의 모국어와 독일어 사이에서 언어의 차이, 간극에 주목하고 이를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심장삽”이나 외즈다마의 “엄마혀(모국어라는 뜻의 신조어)” 등 이들이 만든 일부 신조어에서는 언어 차이에서 오는 긴장감을 어느 정도 옮길 수 있지만 다른 경우들에서는 언어몸체를 전달할 수 없어 그 의미만 전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와다의 책 제목 “Überseezungen”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작가는 “해외 Übersee”와 “혀넙치 Seezunge”를 합쳐 “해외의 혀들(외국어라는 뜻)”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가운데 겹치는 단어 "see"를 시각적으로 가운데 배치하고 독일어로 읽으면 ‘Übersetzungen 번역’으로 들리게 만들었는데 말이다. 많은 경우 한국어로 번역할 때 정말 매력적인 언어의 긴장감이 사라져 버리고 보통 독일작가, 혹은 일본작가를 옮긴 것 같은 인상을 주고 만다. 번역과 관련해서 겪는 또다른 어려움은 출판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독일어로 글을 쓰는 터키 작가, 일본 작가는 한국에서는 주변작가로 치부된다. 루마니아 출신의 헤르타 뮐러가 2009년 노벨문학상을 탔을 때 한국에 단 하나의 텍스트도 번역이 돼 있지 않았고 논문도 단 한편(박정희)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주류 문학에만 매달리는 외국어문학계와 출판계의 현주소를 드러내준다. 그런 점에서 이번 26일 대산문화재단 주최의 <2011 서울국제문화포럼>을 계기로 요코 다와다가 방한하면서 책이 두 권(『영혼 없는 작가』, 『목욕탕』) 번역돼 나온 것은 변화의 조짐이라고 희망적으로 해석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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