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세계국제문학포럼: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를 테마로 지난 24일(화)부터 3일간 열린 세계국제문학포럼은 소설가, 비평가, 시인 등 국내와 해외 유수의 작가들을 광화문 교보빌딩으로 불러 모았다. 포럼은 △다문화 시대의 자아와 타자 △문학과 세계화 △이데올로기와 문학 △다매체, 세계시장, 글쓰기 △지구환경과 인간 총 5개의 세션으로 나눠 진행됐다.

사진: 서진수 기자 ppuseu@snu.kr

각 세션 안에서 작가들은 세계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보여줬다. 미국 시인 잭 로고(Zack Rogow)가 보는 문학의 세계화는 풍부한 문학적 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는 통로이자 타 문화에 대한 호기심 충족의 열쇠다. ‘시 한 편을 지으려면 행성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으로 발제한 그는 긴밀하게 연결된 세상에서 새로운 시는 이 행성의 모든 대륙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작가들은 세계화로 문학을 더욱 두텁게 하는 양분을 공급받는다는 것이다. 또 세계화된 문학은 그에게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 타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해결책’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문학의 세계화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한 비평가도 있었다. 인도의 비평가인 아미야 데브(Amiya Dev)는 세계화 양상이 ‘영어화’에 가깝기 때문에 다른 국적의 작가들에 비해 비교적 영어를 능란하게 사용하는 인도 작가들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고 자인한다. 예컨대 2008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아라빈드 아디가(Aravind Adiga)의 『화이트 타이거(The White Tiger)』는 처음부터 영어로 쓴 덕에 인도어로 쓴 책보다 마케팅에서 유리했다. 최근 한 북미 출신 영문학 교수가 공들여 선정한 인도 소설 60선은 애초에 영어로 쓴 것이 대부분이고 번역물은 겨우 다섯 편이었다. 데브는 이와 같은 사실들을 예로 들며 세계화가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 아닌 왜곡된 형태의 ‘앵글로벌라이제이션(Anglobalization)’ 이었기에 인도 문학의 세계화가 가능했다고 말한다. 이 ‘왜곡된 세계화’ 덕분에 인도 문학이 ‘씁쓸한 성공’을 거두게 됐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문학의 세계화가 작가들의 기본 권리인 ‘쓰고 싶은 대로 쓸 자유’까지도 박탈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아르헨티나 출신 소설가인 아나 마리아 슈아(Ana Maria Shua)는 세계로 진출하고자 하는 중남미의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는 데 제약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제3세계 문학에 대해 토속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요구하는 유럽 중심적 태도가 젊은 작가들이 ‘열대풍의 토속적인 글’만을 쓰도록 독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의 세계화를 논의하기 전에 문학의 존립 여부에 대한 원초적 고민이 필요함을 역설한 작가도 있었다. 소설가 이인성은 ‘시청각 위주의 대중문화로 도배된 이 시대에 문학이 들어설 자리는 거의 없다’고 말하며 가까운 미래에 문학은 자본이 내미는 손을 잡은 ‘대중문학’과 자본의 유혹을 뿌리친 ‘인디문학’으로 대별될 것이라는 확견을 제시했다. 문학의 세계화보다는 타협하지 않은 ‘소수 집단’의 문학이 ‘작지만 깊은 문화’로서 자리잡는 게 지금 당면 과제라는 것이다.

한편 이번 포럼에서 논의된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대해서 국내 작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최근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거론한 소설가 복거일은 “언어의 장벽을 낮춰 문학의 세계화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화가 본질적으로 문명의 ‘진화’를 돕는다며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작가들이 모국어 고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세계화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원래 자신이 걷던 길을 유지하겠다는 작가도 있었다. 소설가 조경란은  ‘세계시장을 겨냥해 의도적으로 소설 속에 한국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넣을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에게 글을 쓰는 목적은 더 많은 이들의 눈에 띄기 위해서가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은 곧 ‘살아가는 이유’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2000년, 2005년 대산문화재단 주최의 세계문학포럼은 ‘경계를 넘어 글쓰기’와 ‘평화를 위한 글쓰기’라는 주제로 개최된 바 있다. 이번 포럼은 두 포럼의 연장선상에서 ‘세계화’라는 더욱 포괄적인 주제로 문학을 ‘공급’하는 당사자들인 작가들이 주체가 돼 의견을 개진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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