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심의를 심의하다
대중음악 심의를 심의하다
  • 최신혜 기자
  • 승인 2011.05.29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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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서슬퍼런 유신체제는 대중들이 흥얼거리던 음악마저 옥죄었다. 그러나 대중음악에 겨눈 심의의 잣대를 되짚어보면 유신체제의 엄혹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실소가 터져 나온다. 당시 송창식의 「왜 불러」(1975)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주인공들이 장발단속을 피해 도망치는 장면의 배경음악이 됐다는 이유로, 한대수 「행복의 나라」(1974)는 가사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가 ‘지금은 불행하다’는 의미로 들린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중음악 심의들이 계속되고 있다면 믿어질지 모르겠다. 자유가 당연시되는 현 시대까지 이어지는 황당한 심의는 여전히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줘 헛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예술성과 동떨어진 대중음악 심의
곡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창작자의 여러 시도들은 사전적 혹은 윤리적인 잣대로 판단돼 심의 절차에서 용인되지 못하고 고배를 마시기 일쑤다.
헤어진 연인을 향한 그리움을 담은 10cm의 「그게 아니고」(2011)는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청소년보호위원회(청보위)가 가사 ‘술이나 마시고’에 청소년보호법상 유해 약물 범주에 속하는 ‘술’이 포함됐다며 노래를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드라마 등 대중 매체물에서도 많은 이들은 연인과의 이별 후 술잔을 기울인다. 청소년들도 이별한 이들의 목을 타고 흐르는 술이 슬픔을 달래주는 위로의 상징이라는 사회적인 약속을 알고 있다.
가수 심태윤이 ‘제일 많이 듣던 그런 소리 중에 하나’는 뭘까. 그는 「클랄라」(2003)라고 말한다. 그러나 ‘클랄라’는 사전에 없는 단어라는 이유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판정의 또 다른 이유는 ‘큰일 날라’의 줄임말인 ‘클랄라’가 대중에게 불안 심리를 심어줘 사회 불안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심의처의 편견 때문이었다. 발음 그대로 써내려간 가사에서 비롯되는 재미는 그의 의도를 살리지 못한 채 심의의 낙인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처럼 예술성을 고려치 않은 심의에 대해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는 “곡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기계적 심의는 다채로운 표현의 설자리를 잃게 할 뿐이다”고 비판했다.

◇대중음악 심의에 여전한 정치적 굴레?
한편 오늘날에도 발생하는 불만족스러운 심의는 종종 심의 과정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것을 의심케 한다. 대중음악평론가 김형찬씨는 “군사독재 시절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심의가 자행됐다면 최근에는 공개된 심의 사유가 대개 추상적이라 내부에서 정치적 심의가 이뤄져도 대중들은 알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구에 출현한 외계인 컨셉으로 찍은 이효리의 「치티치티 뱅뱅」(2010) 뮤직비디오는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며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심의처는 판정의 근거로 이효리와 댄서들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트럭을 운전하는 장면, 이들이 도로 위에서 자유분방하게 춤을 추는 장면을 들었다. 심의 결과를 들은 대중들은 정부의 집회 제지 의도가 드러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년 전 대규모 촛불집회 이후 민감해진 정부가 집회에 ‘톱스타도 도로 위를 활보할 수 없으니 일반 대중 또한 안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설명이었다.
한편 노랫말에 특정 인물을 언급해 방송불가 판정을 받은 경우도 있다. 드렁큰 타이거의 「내가 싫다」(2007)가 바로 그것이다. 심의가 거부된 이유는 ‘나의 운명을 탓해/노무현을 탓해’라는 노랫말에 대통령의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회 문제를 대통령의 탓으로 돌리는 유행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에 빗대 남 탓만 하는 현실을 풍자하려는 의도였지만 이러한 설명에도 심의 결과를 돌릴 수는 없었다.

◇건강한 대중음악 심의를 위한 목소리
방송법 33조는 ‘심의’에 대해 “내용이 공정성과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는지의 여부와 공적 책임을 준수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심의하되 매체별 특성을 고려한다”고 밝힌다. 조항에서도 알 수 있듯 심의 본연의 기능은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수용자가 창작물을 의도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절하는 공공성에 있다. 이정식 교수(수원여대 대중음악과) 역시 “표현의 수위가 지나친 창작물은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없기에 심의는 필요하다”고 밝힌다. 하지만 현재 대중음악 심의는 예술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정치적 외압이란 허점을 안은 채 창작자와 대중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심의의 온전한 기준을 위해서는 무엇이 담보돼야할까.
중요한 것은 공정한 심의다. 현재는 음반심의위원회가 음악적인 전문성이 다소 부족한 청보위의 자문기구식으로 운영되는 등 심의기구의 전문성이 담보받지 못하고 있어 공정한 심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김형찬씨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심의기구를 구성해야한다”며 “심의위원들은 창작물에 대한 심의에 적용되는 기준에 대해 심사숙고 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이정식 교수는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거나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로 심의위원을 구성해야한다”며 올바른 심의를 위해서는 예술적 배경지식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진정한 심의의 의미는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으로 창작물을 억압하기보다 다양한 표현이 드러날 수 있도록 창작자의 활동을 장려하는 데 있다 ”는 이 교수의 말처럼 심의는 창작자와 대중이 만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하는 관문이다. 심의가 본연의 기능을 다해 창작물과 대중을 가로막는 벽이 아닌 둘의 만남을 이끄는 가교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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