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 63학번
나는 퇴직하고 일년이 된 은퇴 새내기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의 일들이 마무리 되면서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는 신선한 기분으로 지내고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부모님의 기대와 희망으로 시작됐던 초등학교 입학 시절, 음악에 대한 부푼 꿈으로 가득 차  본교 음대에 입학하던 시절과 같은. 그래서 감히 새내기라는 말을 써 보았다. 이보다 더 희망과 꿈이 흘러 넘치는 단어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정년 후를 꿈 많은 새내기의 즐거움으로 채워가고 있다.

미국 유학 시절 은사였던 하워드 캅(Howard Karp) 교수는 몇 해 전 여든살을 앞둔 시기에 슈베르트의 유작 피아노 소나타들로 채워진 피아노 독주회를 가졌다.  그 정도 연륜과 나이에 이 거대한 소나타들을 매일 연습하고 외우고, 또 자신의 느낌으로 해석하는 일은 참으로 경외할만한 일이다. 음악을 통한 창조의 즐거움과 기쁨을 느껴본 사람만이 꿈꿀 수 있는 고독한 길. 어느덧 세월이 지나 나에게도 씩씩하고 패기 넘치던 새내기 마냥 꿈에 부풀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다. 얼마 전에는 독일과 서울을 오가며 슈투트가르트 현악사중주단과 드보르작 피아노 퀸텟 OP. 81 협연을 마쳤고 요즈음은 슈베르트를 향한 나의 꿈이 시작되고 있다.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백조의 노래 등 슬픔으로 가득한  많은 가곡들을 남겼다. 특별히 그의 피아노곡들은 이런 슬픔들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예술 작품들이다. 백여페이지에 가까운 음악을 놓고 한 땀 한 땀 연습을 시작하니 끝이 보이지 않는 길로 들어선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꿈이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이다. 꿈은 간직하고만 있어도 힘이 생기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가는 가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렵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이라도 꿈만 있으면 그것을 향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긴다.

다양했던 생활, 꼭 해야 했던 많은 일들, 교수로, 세 아들을 가진 주부로, 또 음악인으로 살았던 나의 지난 날들…. 이 날들을 뒤로 하고 이제는 단순하게 음악 한 길로만  갈 수 있는 자유와 여유가 생겼다. 긴 숨을 쉬고 길게 생각할 수 있는 지금, 이제야  비로소 음악의 제 길에 들어선 듯한 기쁨을 갖게 됐다.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얘기한 “자기 속에 잠자는, 전혀 알지도 못했던 재능이나 자질을 찾아내는 기쁨, 즉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자신을 보다 깊이 인식하고 이해하는 기쁨”. 

손에 잡을 수 없으나 아름다운 세계를 향한 작업을 앞둔 나에게 기쁨과 설렘이 넘친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도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에 꾼 봄꿈(Fruhlingstraum)’을 들으며 나도 봄꿈을 꾼다. 아름다운 슈베르트 음악의 꿈이다. 이 꿈이 손에 잡힐 때 나의 슈베르트 음악도 아름다운 예술로 꽃 피우게 되리라.

“… 나는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립보서 3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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