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관악 교정을 거닐다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모두들 멋드러진 차림에 개성만점의 경쾌한 모습이다. 나의 대학 시절이던 1980년대 말 90년대 초만 해도 86, 88 양대 게임을 통해 사회 전반에 젊음과 자유, 활력, 개성이 넘쳐 흐르고 있었지만 그 때와 비교를 해도 오늘날의 관악은 훨씬 더 다채롭고 생명력 있어 보인다. 그 이전 7, 80년대의 관악은 시국 관련 집회나 정치, 사회적 이슈에서 늘 자유롭지 못했고, 서울대생의 외모는 개인적 정체성보다는 집단의 정체성 표현에 더 적합한 것이었다. 사실 서울대생들은 개인의 외모에 둔감한 정도가 아니라 절실한 시국 상황에서 겉치레에 신경을 쓴다는 것 자체에 죄책감을 느껴야 할 정도였다. 물론, 그런 상황은 서울대생만의 책임은 아니다. 한국의 의류 패션 산업의 성장사와도 관련되며 또한 한국 사회의 변화 과정과도 맞물려 있는 문제이다.

 

 

1950년대 한국사회에서는 전쟁 후 미군이 남긴 낙하산이 옷감의 주재료였을 만큼 열악한 시기였지만, 정치적․경제적 과도기인 1960년대는 미니스커트나 유니섹스 모드 같은 세계의 유행을 거의 동시적으로 받아 들였고, 1970년대 장발, 청바지의 시대를 거쳐 80년대 중후반부터 국민소득 증대, 컬러 TV 등 대중매체의 보편화와 함께 소비자들은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90년대 이후는 ‘서태지’라는 걸출한 패션리더의 등장과 함께 캠퍼스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젊음, 스포츠, 캐주얼이 지배적으로 등장했다. 직장에서도 닷컴을 위시로 한 벤처기업의 성장으로 수평적 사고와 창의력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변화를 캐주얼 웨어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신체를 보호하거나 몸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희적이고 표현적인 목적에서 옷을 취하고 있다.  

 

 

개인이 어떤 옷을 입게 되는지는 그 당시의 경제, 정치, 기술 수준, 이로 인한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개인의 기호로만 오늘 내가 입는 옷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 즉 사회 구성원들의 집합적 행동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특정한 시기의 대다수 사람들이 채택하는 지배적인 스타일, 즉 패션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복식에서의 패션이란 시대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가시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내가 입는, 입어야 하는 옷차림을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내가 몸 담고 있는 사회가 어떤 가치관을 나에게 강조하는지, 나는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머리가 길어서, 치마가 너무 짧아서, 배꼽을 드러냈다고 범법자 취급하는 사회를 우리는 거쳐오지 않았는가? 관악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머리에 노랗게 염색을 했다는 이유로 강의실에서 쫓겨나고, 남학생들이 반바지를 입거나 슬리퍼를 신고 수업을 듣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푸른색 옷차림을 하던 학생에게 ‘싸이코’라는 불명예스런 애칭을 붙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얘기에 ‘말도 안돼’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우리는 그만큼 한 단계 성숙한 사회, 주류만이 환영받는 사회가 아닌, 다양한 사고를 가진 소수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직도 관악의 모습은 2% 부족한 느낌이다.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모습이어도 될 듯하다. 다양한 외모 단서로 새로운 발상을 얻고 발전시킬 수 있는 패션 리더, 그리하여 사회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빨리 감지하고 이끌어 내는 진정한 패션 리더들을 관악에서 더 많이 발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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