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강의 묘미

김영롱

지리학과 석사과정

9월 1일 아침 컴퓨터를 켜고 가장 먼저 접속한 사이트가 어디였는가? 필자는 sugang.snu.ac.kr이었다. 9월 첫 주 내내 수강 신청 기간에 넣지 못했던 인기 강의에 혹시라도 빈자리가 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수시로 확인해보고 직접 초안지를 싸들고 평소 갈 일 없던 학과 사무실의 문도 두드려 본다. 새학기 수업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시험, 과제물, 학점에 대한 압박감을 다시금 경험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가졌던 환상 중 하나는 듣고 싶은 과목만 골라서 들으니 신나게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소리조차 내기 힘든 단소 실기를 평가하는 음악 과목은 안 들으면 그만이고 이름만 들어봤던 스와힐리어 과목을 듣고 아프리카 배낭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학기가 흘러가면서 학점을 위해 공부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욱 간사한 것은 종강 즈음에는 참 좋은 수업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뒤 성적을 보고 생각이 바뀔 때다. 나 역시 ‘학점의 노예’인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지곤 한다.


그러나 대학과 사회는 갈수록 이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엄격해지는 학사 규정으로 학생의 수업 선택권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사회의 요구를 반영한 변화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학점에 연연하며 공부해서야 되겠느냐는 질타는 취업, 유학, 장학금, 교환학생 등 모든 것에 학점이 중요한 학생들에게 공허할 뿐이다.


학점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능동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독서를 통해 지식의 폭을 넓혀 갈 수도 있고 학우들과 세미나를 진행하거나 학회·동아리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의 맹점은 공부의 방향을 체계적으로 이끌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필자는 학교 수업을 청강해 이를 채워볼 것을 권하고 싶다.


재학생들에게는 수강편람을 빼곡하게 채운 수업들이 당연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한발짝 물러나 생각해보라. 이곳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학계 전문가들이 장기간의 커리큘럼을 구성해 강연하는 곳이 있는가. 이곳처럼 국내 최고의 젊은 지성들이 모여 그 주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곳이 있는가. 그것도 공짜로. 일례로 서울대 평생교육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설하는 강좌 중 일부는 학교 수업과 상당히 비슷한 구성이면서도 상당한 액수의 수강료를 지불해야 한다.(물론 학생들도 등록금을 내지만 청강을 하면서 추가로 지불하는 금전적 비용은 없다.)


청강생이기 때문에 더욱 겁 없이 수업 토론에 참여할 때, 청강생이지만 조별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발표까지 할 때 느끼는 청강의 묘미는 수강생으로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묘미를 느낄 수 없을뿐더러 수업 분위기까지 흐리는 불성실한 청강생이 되지는 말자. 아울러 사전에 선생님께 청강 허락을 받는 것이 예의다.


새 학기에 청강의 묘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이번주, 즉 개강 첫 주가 가장 중요하다. 청강해볼만한 수업들의 첫 시간에 들어가 보고 강의가 흥미로운지, 정말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인지 수강 과목보다 훨씬 더 까다롭게 판단해야 한다. 수강 과목과는 달리 나를 통제할 장치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학문을 향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수업을 공짜로 즐기는 청강의 묘미. 더 많은 학우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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