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학술지평가제 개선방안

지난달 22일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학술지 평가제도 혁신방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1998년부터 한국연구재단(구 학술진흥재단)은 학계의 학술지를 심사해 기준을 통과한 학술지를 등재시키는 방식으로 학술지를 관리해왔지만 평가제도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대학신문』 2010년 11월 22일자). 이에 학술지 평가제도 개선 노력의 일환으로 열린 공청회의 논의 사항을 소개하고, 학술지 평가 방식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현행 학술지 평가제도, 무엇이 문제인가?=현재 한국연구재단은 정량평가(30%)와 규제전문가평가(50%), 패널평가(20%)를 통해 100점 만점에 75점 이상을 받은 학술지는 등재 후보지로 지정하고, 이후 정량평가(45%)와 패널평가(55%)로 이뤄지는 심사에서 2년 연속 80점 이상을 얻으면 등재 학술지로 선정하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 교과부 학술정책자문위원장 왕상한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는 현행 학술지 평가제도가 갖는 문제점을 크게 △학술성의 훼손 △학술지의 하향평준화 △평가 집행·결과 적용의 난맥으로 꼽았다. 왕 교수는 “행정 권력의 지나친 개입으로 학문의 자율적 발전을 왜곡하고 획일적인 평가기준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해 학문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역기능이 발생했다”며 현행 제도가 통섭 및 범학문적 접근 저해와 분과학의 지나친 미세분화를 초래해 학술지의 난립을 막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교과부 학술정책자문위원 김태윤 교수(한양대 행정학과) 역시 “학술지들이 경직된 정부의 평가 기준과 가이드라인만을 충족시키려고 해 ‘목표전도 현상’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정부 주도의 평가는 원칙적으로도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김태윤 교수에 따르면 현행 평가제도는 평가를 하는 주체와 그 결과를 활용하는 주체가 같아 자율적인 자정 기능을 확보할 수 없다. 국가 주도 R&D나 연구 사업에서 정부는 학술지 평가 결과를 필요로 하는데, 그 평가 역시 국가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인증 및 선도저널 인센티브 제도, 대안이 될 수 있을까?=이번 공청회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된 방안 중 가장 주목할 점은 평가에서의 정부 역할 축소다. 김태윤 교수는 ‘인증 및 선도저널 인센티브 계약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 이 제도는 간소화된 기준으로 인증제도를 실시하는 한편 정부가 지정한 제3기관 또는 단체가 학회 등과 계약을 맺고  지원을 하며 추후 계약 이행여부를 감시하는 방식이다. 계약의 속성에 따라 약속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계약을 파기하고 지원금을 환수한다. 인증을 통해 수준 미달의 학술지가 난립하는 것을 막는 한편 선도저널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으로 학술지의 수월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김재춘 교수(영남대 교육학과)는 “누가 어떻게 계약을 맺어 선도저널 인센티브 학술지를 선정하며 그들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지, 그리고 그 성과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더 나아가 그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학술지가 인증 학술지와 인센티브 학술지로 이원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계 주도의 학술지 평가, 가능할까?=일부 연구자들은 학계의 역할을 강조하며 학술지 평가를 학계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박배균 교수(지리교육과)는 “학술지를 평가하는 데 학계가 스스로 자생적인 생태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자들이 인맥이나 친소 관계를 앞세워 논문의 질이나 학문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순수한 아카데미즘의 이상에 입각한 학문 공동체가 형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한용 교수(국어교육과)는 해당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하는 위원회에서 평가를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평가 위원들을 위촉하는 과정에서 위원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며 전문화·세분화되는 학문의 추세에 국가가 일관된 기준을 만드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그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하되 그와 관련한 인접 학문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하지만 단순히 학계 자율에 맡기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김재춘 교수는 “학계는 교수들이 모여 이름만 올려놓는 경우가 많아 책임과 실체가 없고 전담 인력도 없다”며 “주체 선정이 어렵지만 민간에 맡기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이에 일부 학자들은 학계 역할 강화를 뒷받침할 제도·정책과 정부 지원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조만형 교수(한남대 행정학과)는 “한국 학계에 학술지의 체계와 형식을 확립한 한국연구재단의 공은 인정하지만 학술지 평가는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평가가 꼭 필요하다면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 학자들을 대상으로 권위있는 학술지에 대한 설문조사와 한국연구재단이 구축한 학술지 신용도 데이터를 함께 활용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배균 교수 역시 “순수한 학문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학자들의 인식이 확고히 자리잡는 것은 물론 정부가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학문 활동 자체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자들은 연구 성과를 학술 공동체인 학회를 통해 발표하므로, 다른 학자들과 지식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학술지는 중요한 매체가 된다. 조만간 교과부가 발표할 개선안이 어떠한 형태로서 현행 학술지 평가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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