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학과
조선의 제21대 임금인 영조는 강력한 금주령으로 유명하다. 종묘에서 역대 임금에게 올리는 제사에 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적도 있고 금령을 어기고 술을 마신 장군의 목을 베기도 했다. 물론 자신도 철저히 금주했다. 이런 엄중한 분위기에서 위반자가 생기자, “술이 다시 나오면 조선은 반드시 망할 것이다”라는 극언을 하기도 했다. 금주령의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로부터 백 년 후 조선을 방문한 프랑스 신부 프티니콜라가 동료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영조가 금주령을 내린 배경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술 취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왕에서부터 상하층 관리까지 모두가 매일 술에 절어 있습니다. 양반을 포함한 수많은 조선인이 자기 정신을 술병 바닥에 두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조선과 얼마나 다른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술 소비량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대한민국에 술이 철철 넘쳐흐르는데 서울대만 어찌 독야청청하겠는가. 2년 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생 3명 가운데 1명이 상습적 과음과 알콜의존증 등의 음주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학생만이 문제가 아니다. 올해 초 뉴욕 주립대의 김성복 교수가 서울대 교수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자기가 2년 동안 서울대에 머물면서 보니 교수들을 지켜보니 진지한 학문적 토론은 하지 않고 술이나 마시며 시시콜콜 정치 이야기나 하더라고 했다.

왜 이렇게들 술을 많이 마실까? 특별히 술을 사랑하기 때문일까? 나는 술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술판이 잦을 뿐 아니라 밤늦게까지 길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술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특별한 술판의 사회학과 정치학이 있다. 정말 중요한 인간관계는 술판에서 맺어진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업종에 따라서는 술접대가 본업무일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된다. 술판이 사회생활이며 업무인 이상 누구도 술판을 거부할 수 없고 누구도 쉽게 술자리를 뜰 수 없다. 이것이 폭음과 만취로 이어진다.

술판은 한국인을 불행하게 하고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는 암덩어리다. 술판 때문에 잠을 설치고 이것이 쌓여 만성 피로가 되며 결국 가정이 깨진다. 개인과 가정만 문제가 아니다. 집짓는 사람이 술판에 마음을 두면 집이 부실해지고 다리를 세우는 사람이 이렇게 하면 다리가 무너진다. 학문하는 사람이 술판이나 기웃거리면 부실 학문이 나오고,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이 밀실 술판에 의지하면 반드시 나라가 망한다.

이뿐만 아니다. 술과 술판이 좋고 즐거운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술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술이 싫은 사람,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자리에 앉아도 술이 나오고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은 술잔을 받아야 하며 잔을 받은 모든 사람은 술잔을 바닥까지 비워야 한다. 여기에다 술잔을 건네고 폭탄주를 돌리며 이른바 파도를 타기까지 한다. 기쁘고 즐거워야 할 술자리가 도리어 고역이 된다. 이런 술판에서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주는 술을 받지 않을 수 없고 거부하면 ‘고얀 놈’이 된다. 이것은 남의 의사나 취향까지 통제하려는 강압이며 일종의 폭력이다. 애정 표현이 경우에 따라 성희롱이 되는 것처럼 이것은 ‘술희롱’이다.

대한민국의 음주문화를 바꿔야 한다. 교육계부터, 언론계부터 바꿔야 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서울대부터라도 바꾸어야 한다. 영조처럼 금주령을 내리지는 못하더라도 총장이 건전한 음주문화를 위한 선언이라도 해주기 바란다. 음주문화를 바꾸기 위한 기초 연구를 하고 그에 따라 행동 지침을 만들며 그것을 교육하길 바란다. 영조가 다시 살아나서 이 땅에 오면 이렇게 경고할 것 같다. “술판을 막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반드시 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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