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번역과 해석은 종교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완역 출간 100주년을 맞은 현재 한글 번역 성경이 있기까지 성경은 긴 번역의 역사를 갖고 있다. 수천년 전 쓰인 신의 말이 우리나라에 한글로 번역돼 표준 한국어의 토양을 마련하기까지 성경의 번역사에서 의미 있었던 몇 가지 일을 중심으로 성경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성경의 시작, 성경 번역의 시작

학자들은 대체로 성경 저술이 유대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킨 지도자 모세로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비롯한 5경(經)을 모세의 저술로 추정한다.

기본적으로 성경은 예수의 탄생을 전후로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뉜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신을 찬미하는 시, 예언 등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하는 구약에서는 책의 서술 연대나 저자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반면 신약 27권의 저자와 저술 연대는 대개 밝혀져 있다. 신약은 주로 예수와 사도들의 행적과 말, 예언으로 이뤄져 있다.

성경의 반을 이루는 구약은 유대인들의 역사서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모두 구약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다. 다만 유대교에서는 개신교에서 39권으로 나눠지는 구약을 크게 율법, 예언서, 성문서의 세 부분으로 나눠 22권이나 24권으로 정리했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기록돼 유대인이 히브리어를 구사할 동안에는 번역할 필요가 없었지만 점차 유대 민족이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로마 등의 영향을 받으며 점차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이 실종되자 번역의 필요성이 커졌다. 가장 오래된 구약 번역본이자 성경 번역사에서 중요한 저본으로 꼽히는 것이 ‘70인역’으로 불리는 그리스어 판이다. 이 판은 과거 2천년동안 구약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경우 권위 있는 그리스어 출처로 자리 잡았다. 초기 기독교회에서도 이 성경을 썼고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오늘날까지 구약의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다. 이후 구약은 아람어(Aramaic language)로도 번역됐다. 아람어는 셈족에 속하는 아람인들의 언어로 예수가 썼던 언어며 후에 동·서로 분파가 나뉘어져 현재도 시리아 일부에서는 쓰이고 있다.

신약의 경우에는 가장 많이 참조되는 본이 그리스어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이다. 신약 성서를 사용하는 교회가 1900년간 보편적으로 사용해왔으며 여러 사본으로 제작되면서도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후에 종교 개혁자들도 성경의 번역에 이 본문을 사용했다.

번역의 기반이 되는 정경은 무엇인가

번역은 원전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기에 성경을 번역할 때도 구문에 대한 이해와 번역 서술 방식에서 번역자들마다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논쟁을 낳았는데 가장 첨예한 논쟁은 무엇을 진정한 성경 번역의 저본인 정경(正經)으로 인정할 것인가였다.

기원전 300년에서 30년 사이 이집트에서 ‘70인역’이 번역됨에 따라 구약에 몇 가지 저술이 추가됐다. 이를 개신교와 유대교에서는 외경(外經), 가톨릭에서는 제2정경이라고 부른다. 이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할 것인가하는 문제로 거듭된 논쟁은 기원후 90년경 ‘얌니아 회의’에서 일단락을 맺는다. 이 회의에서 히브리어 이외에 그리스어로 쓰인 문헌을 제외하기로 한 결정으로 외경이 유대교 정경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는 외경 15권을 여전히 성서 속에 포함시켰다.다만 로마 교회의 교부로 불리는 제롬(Eusebius Hieronymus)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 외경에 예수나 사도들이 언급되지 않았다며 번역하지 않았다. 오늘날 천주교가 정경으로 인정하는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에 외경을 더한 73권으로 구성돼 있다.

외경 논란은 종교 개혁의 선두에 섰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번역 성경에 와서 다시 불거졌다. 루터는 1534년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외경을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따로 배치했다. 루터의 종교 개혁에 반발해 소집된 1545년의 트랜트 공의회에서는 외경을 여전히 성경으로 인정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와 그리스 정교회는 트랜트 공의회의 결정을 따라 여전히 외경을 성경에 포함하고 있다.

한편 신약에서 어떤 것을 정경으로 삼을 것인가는 393년 히포 공의회와 392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결정됐다. 신약을 제정하기 전에도 지금 신약으로 공인돼 남아 있는 27권의 책들은 이미 교회가 이전부터 공통적으로 사용해 왔던 주류였다. 이러한 카르타고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신약 27권외에도 존재했던 다른 문헌들은 교회로부터 엄격하게 배제되고 탄압받기 시작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았던 성경 번역본은 5세기 초 성경 전체를 라틴어로 옮긴 ‘벌게이트 번역판’이었다. 4세기 번역의 문체가 제각각이었던 라틴어 성경의 통일 작업으로 교황이 제롬에게 먼저 번역 작업을 맡겼다. 이후 여러 사본이 제작되면서 변형이 발생하자 이를 교정해 8세기 코덱스 아미아티누스본을 제작했다.

종교 개혁과 번역의 새 지평

1521년 성경 번역사에서 일대의 변혁을 가져온 성경은 마틴 루터가 라틴어에서 번역한 독일어 신약 성경이었다. 이후 1534년 신구약 완역본이 184종의 목판화와 함께 출간됐다. 이 성경은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새로운 정신을 낳은 것을 비롯해 유럽의 많은 나라에 자국어로 된 문헌 출판을 독려하는 역할을 했다. 루터의 번역은 여러 방언으로 분화돼 있었던 독일어를 표준화했다. 이뿐 아니라 대량 인쇄를 가능하게 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맞물려 루터의 번역 성경은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어났고 루터 성경을 저본으로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아이슬란드어, 이탈리아어 등 여러 언어로 성경이 번역돼 유럽 전역으로 퍼지기도 했다.

루터는 이전까지 “고해성서를 하라”라고 번역됐던 라틴어 성경 구문(마태복음 3장 2절)을 그의 성경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로 번역하며 직접 신을 대면하는 일을 강조했다. 루터역의 전파와 함께 세력이 약화된 로마 가톨릭교회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트랜트 공의회를 소집해 “교회는 프로테스탄트 이단에 대응해 교리를 확고히 지킬 것”이라며 라틴어 벌게이트 성경에 대한 정통성을 재확인했다.

세계성서공회연합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성경으로 번역된 언어의 수는 2,527개에 달했다. 지금의 바그다드에서 약 300km 떨어진 갈대아 우르에 울려 퍼졌던 신의 음성은 현재도 여러 언어들로 번역돼 전해지고 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