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어중문학과
여전히 법인화 얘기다. 법인화라… 요즘 난 법인화 소리를 들으면 넋두리가 절로 나온다. 우리의 찬반 여부와 관계없이 서울대는 내년부터 독립법인이 된다.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인 법인화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우려도 적지 않다.

나는 법인화를 찬성하는 편이었다. 서울대에서 교수로서 생활한 지 십여년 동안 많은 부분에서 ‘답답하다’고 느껴왔다. 교육과 행정시스템이 최고 대학에 맞는 것인지 회의적이었다. 교육과 연구에 많은 힘을 쏟았지만 그렇다고 보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곱게만 보는 것도 아니었다. 소속 학과의 입장에서도, 국가적으로는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소속 학생들도 많아지는 데 비해 대학사회의 막연한 ‘함께’ 혹은 ‘동일함’ 추구는 중어중문학과가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을 자꾸 억제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인문대학에서 ‘기획’을 담당하는 부학장을 하면서도 국립대 공통의 보직체계 때문에 강의 경감 등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방치하거나 포기한 적은 없었다. 보수가 적다는 이유로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이곳을 정말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사실 교수들이 현실적인 달콤한 유혹 때문에 영혼을 팔았다는 비판을 받을 때가 없지는 않지만, 최소한 내 주변 교수들은 보수를 기준으로 서울대 교수를 선택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여간 나는 이 답답함 속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몇 가지 스트레스성 질병을 앓아야 했고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지내야하는 때도 적지 않았다.

법인화 논의가 시작되면서 나는 이것이 어느 정도는 내 ‘답답함’을 해결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대학의 자율성 확보를 통해 대학 본연의 임무를 더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며, 행정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교육과 연구를 잘 하기 위한 큰 힘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법인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법안의 통과 과정이 준 자존심의 상처가 그 시발점이다. 법안과 시행령을 보면서 서울대학교의 독립성, 자율성이 확보될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그 다음이다. 또 법인화라는 것이 곧 대학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법인화 이후 서울대학교 구성원의 연구와 교육은 우리 국가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서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나를 좌절하게 만든다. 아직까지 내가 속한 단과대나 전공영역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를 논하는 모습도 많은 것 같지는 않다. 행정의 효율성은 인력 재배치를 의미하는 것인데, 지금 진행되는 논의 속에서 교육과 연구에 필요한 효율적인 행정 인력 재배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법인화 이후에도 이사회를 통한 정부 간섭이 여전하고 행정의 효율성을 기대할 수 없다면 결과적으로 연구와 교육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굳이 법인화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직 학교 전체 차원이나 단과대, 개별 학과 차원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부족한 것이 분명하다면 법인화의 시행을 최소한 1년이라도 유보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내가 법인화 준비 상황을 몰라서 이런 생각이 든다면 그나마 다행이리라. 그리고 법인화 준비에 참여하는 많은 분들께도 죄송할 터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답답하다. 아니 이전보다 ‘더’ 답답하다.

이강재 교수
중어중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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