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 본부는 외국인특별전형 지원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통계를 인용해 서울대의 국제화가 날로 진행되고 있다고 자평했다.본부의 발표처럼 이제 캠퍼스 어디에서나 외국인을 마주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제화는 어느새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국제화의 본보기로 일컬어지는 외국인 학생들이 실제 학교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캠퍼스 국제화의 현 주소를 짚어봤다. 
글: 이옥지 기자 okjiblue@snu.kr   삽화: 김태욱 기자 ktw@snu.kr


외국인 학생 유치 현황

2000년대 들어 서울대는 △국제 이해의 증진 △인력의 상호활용 △교육의 상호보완을 꾀하고  국내에서 재학생들에게 국제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10대 국제화 사업’ 중 하나인 외국인 학생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이러한 사업의 일환으로 2008년 외국 국적 보유자와 재외국민을 포괄하는 현재의 외국인특별전형 제도가 정비됐다. 또 2010학년도 입시부터는 한국과 졸업일정이 다른 외국 학생들의 서울대 지원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9월에 입학하는 후기 외국인특별전형이 신설되기도 했다. 그 결과 서울대 내 외국인 재학생의 수는 2000년 271명에서 2010년 2,609명으로 10년 사이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외국인 구성원 증가를 통해 ‘캠퍼스의 글로벌화’를 이루겠다는 비전은 법인화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담당자 없는 외국인 지원 업무

학내 외국인 구성원이 증가함과 함께 생활상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져갔다(『대학신문』 2009년 10월 10일자).  현재 기존에 제기됐던 생활상의 문제점은 과거에 비해 상당 부분 개선된 상태다. 한식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구성원들을 위해 기숙사와 제2식당(언덕방)에 각각 World Menu와 채식 식단이 설치됐으며, 지난해부터는 정부화본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보서비스 영문화 사업으로 마이스누와 eTL 등에서 영문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특히 대외협력본부와 외국인 지원센터로 분산됐던 업무가 국제협력본부(SNU International Office)로 통합되며 입학생 대상 오리엔테이션, 의료 지원 서비스 등 기초적인 생활 복지 체계를 어느 정도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외국인 학생 지원을 위한 행정 서비스는 여전히 미흡하다. 일례로 단과대와 본부 각 부처 등 대부분 기관에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영어로 서비스를 제공할 인력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이를 외국인을 위한 정책·서비스 마련으로 보완하고자 하는 노력조차 미약한 실정이다. 한 단과대 관계자는 “단과대에서 외국인 학생까지 신경써줄 수는 없다”며 “외국인 학생이 문의해오면 국제협력본부로 연결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제협력본부도 이러한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국제협력본부는 교환학생 유치, 교류 협정 체결 등 전반적인 대외 업무에 주력하고 외국인 학생 지원에 관해서는 비자, 주거, 의료 등 생활 지원 업무만 담당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제협력본부 황정남 팀장은 “국제협력본부에 외국인 학생 지원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인력은 단 3명에 불과하다”며 “이 정도 인력으로는 2천 명이 넘는 외국인 학생들의 생활 민원을 처리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외국인 학생들은 학칙, 수강 요건 등 기초적인 정보조차 어느 곳에 문의해야 하는지 몰라 어려움을 겪거나 때로는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중국에서 온 요연씨(국어국문학과·석사수료)는 “연구생의 비자 연장 관련 학칙에 대해 문의하려고 단과대 행정실과 학사과, 국제협력본부를 찾아갔지만 어디서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황정남 팀장은 “도서관 개방 시간, 성적표 발송 여부를 묻는 학생부터 심지어는 자신이 가르치는 외국인 학생의 심리 상담을 요청하는 교수들도 있다”며 “전문적인 사항의 경우 국제협력본부에서 담당하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이 원하는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갈 길이 먼 학업 지원 체계

외국인 학생들이 원활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무엇보다 중요한 학업 지원도 부족하다. 실제로 본부는 충실한 영어 커리큘럼을 홍보하며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지만 개설 강좌 중 실제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제한적이다. 2011학년도 2학기 현재 학부에 개설된 영어 강의는 총 347개로 전체(3002개)의 11.5% 수준이다. 여기에 기초영어(11개), 대학영어(73개) 등 원칙적으로 외국인 학생들이 수강할 수 없는 수업을 빼면 비율은 더 낮아진다. 전공 필수 과목의 경우 개설된 수업 680개 중 영어 강의는 11.6%(79개)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공대(29개), 경영대(17개) 등으로 단과대별 편차가 커 80개가 넘는 학과·학부 가운데는 전공 필수 과목 중 단 한 과목도 영어로 개설되지 않는 곳도 있다. 한편 개설된 영어 강의 중 일부는 공지된 바와 달리 한국어로 진행되는 등 운영상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대학신문』 2010년 11월 22일자). 켄트씨(농경제사회학부·10)는 “영어 수업에서 갑자기 교수님이 한국어로 답해 당황스러웠다”며 “영어로 된 보충 교재를 주고 자세한 내용은 한글판을 참조하라고 명시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어 교육 체계가 미비한 점도 문제다. 서울대에서 수학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이 필수적이지만 학내 외국인 학생들의 한국어 구사능력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다. 현재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수업으로는 정규 과목인 초급·중급·고급 한국어와 외국인특별전형생을 위한 대학국어, 언어교육원에서 제공하는 한국어 프로그램 등이 있다. 하지만 정규 과목은 각 수업의 정원이 20명 남짓인데다 개설된 강좌 수도 대여섯 개에 불과해 전체 외국인 학생의 수준별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초교육원에서는 올해부터 ‘교양 피어튜터링’의 일환으로 대학국어를 수강하는 외국인 학생에게 내국인 학생 멘토를 배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 학기 단위로 이뤄져 연속성이 낮은데다 수혜 대상이 소규모라는 한계가 있다. 기초교육원장 허남진 교수(철학과)는 “대학국어 수업의 경우 같은 반 내에서도 외국인 학생들의 한국어 구사능력은 천차만별”이라며 “세분화된 수준별 수업 개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추진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언어교육원 프로그램의 경우 정규과정이 1~6급과 연구반으로 세분되고 한자반, 발음반, 맞춤법반 등이 개설돼 보다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한국어 교육이 가능하다. 그러나 10주 코스에 135~150만원의 고액을 지불해야 하는데다 정규 수업 시간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일반 학생이 신청하기에는 부담이 따른다.

또 학부와 연계되는 수업이 없어 가르치는 내용이 실제 학과 수업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왕량씨(체육교육과·08)는 “학교에 적당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이 없어 자비로 언어교육원에서 1년 동안 수강하고 입학했다”며 “한국어 습득을 외국인 학생 개인의 문제로 보지 말고 대학 차원의 한국어 교육 시스템을 운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너 따로 나 따로


이처럼 정책적 지원이 부실한 가운데 외국인 학생들은 수업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기존의 내국인 학생 사회와 어우러지지 못하고 이질적인 존재로 남아있다. 실제로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내국인 학생과 유리된 채 ‘자신들만의 리그’에서 생활하고 있다.

학내에서 외국인 학생과 내국인 학생의 교류를 꾀하는 단체로는 외국인 학생회 ‘SISA’, SNU Buddy, ISF(international student fellowship)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단기 방문하는 교환학생 위주인데다 그 성격이 소규모 동아리에 가깝다. 과·반 체제 등 기초적인 자치단위가 외국인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포괄하지 못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후기 외국인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하진희씨(고고미술사학과·10)는 “외국인 학생들의 활동 범위를 몇몇 동아리나 외국인 단체로 제한시켜 생각하다보니 이질감이 더욱 강조되는 측면이 있다”며 “외국인특별전형생은 한국에서 최소 4년 동안 학교를 다니고 졸업해야 하는 엄연한 학내 구성원인데 이 점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 학생과 교류할 기회가 적다보니 내국인 학생의 입장에서도 국제화란 피부로 와 닿지 않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공식적으로 외국인 학생과 내국인 학생이 교류하는 소통의 장이 부족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송지수씨(국사학과·09)는 “외국인 학생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얘기를 나누거나 교류를 해본 적은 없다”며 “국제화를 해서 정말 뭐가 좋아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외국인 학생과 내국인 학생의 괴리감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부 학생들이 서로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스누라이프의 한 내국인 학생은 “본부는 외국인 학생에게만 너무 큰 혜택을 주고 있다”며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도 없는데 왜 배려를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한 외국인 학생은 “내국인 학생들은 우리를 영어 대화 연습을 위한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며 “문화적 차이도 있지만 외국인특별전형생이 내국인 학생보다 쉽게 입학했다는 식의 편견 때문에 더 힘들다”고 호소했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괴리가 애초에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려고 한 목적 달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국제협력본부장 김준기 교수(행정대학원)는 “아직까지는 국제화 초기 단계라 생활상의 제약 해소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앞으로 내국인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국제화 교육을 병행하는 등 전체적인 조화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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