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국가소송제 조항 두고 여야 의견 좁혀지지 않아 충돌 예상…
‘간접수용’ 등 투자이익 과도하게 보호하는 개념 포함돼­ 공공정책 제약 우려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싼 갈등이 갈수록 첨예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야권은 투자자의 이익과 당사국의 정책이 충돌할 때 국제 중재재판소에 회부하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심각한 독소조항이라며 한·미 FTA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한·미 FTA 추진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투자 자유화’를 중심으로 핵심 쟁점을 살펴봤다.

한·미 FTA, 충돌의 역사

FTA는 노무현 정부가 장기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로 ‘선진통상국가전략’을 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다자간 무역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다수의 FTA를 통해 수출 증대, 투자 확대, 통상제도 선진화 등 경제적 이익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근거였다. 노무현 정부는 ‘여러 개의 FTA를 동시에 추진·발효해 각 협상의 부정적 효과를 상쇄한다’는 논리에 따라 2003년 ‘동시다발적 FTA 전략’을 수립했다. 이후 싱가포르, 인도 등과 조약이 체결됐고, 미국과 유럽연합이라는 거대경제권역과 협상이 시작되면서 전략이 본격화됐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FTA 정책을 대체로 계승하면서도 자원 부국, 대륙별 거점국가 등으로 체결 대상을 다면화하는 ‘FTA글로벌네트워크’전략을 제시해 자유무역의 효과를 극대화하려했다.

그 중 한·미 FTA는 최대 경제국인 미국과의 협상이라는 점에서 추진 초기부터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협상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공청회의 기초자료를 조작하는 등 졸속으로 FTA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부가 미국과 협상을 시작하면서 △쇠고기 수입 재개 △스크린쿼터 축소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 △의약품 가격인하 조치 완화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모두 수용한 것으로 알려지자 반발은 최고조에 달했고, 2007년 7월엔 시민 7만명(주최측 추산)이 도심 집회에 참가해 협상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정부는 한·미 FTA를 홍보하면서 △소비자의 후생 증가 △자원의 재배분을 통한 경제 효율성 증대 △규모의 경제 실현 등을 통해 향후 10년간 실질 국내총생산이 약 6% 증가하고 대미 무역수지 46억 달러 개선, 약 33만 5천 개의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 의뢰로 작성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비공개 보고서 ‘기발표 FTA와 한·미 FTA 발효시 경제적 효과 분석’(2009)은 이전의 주장과 달리 한·미 FTA 발효 15년 후 대미 무역수지에서 71억 달러 적자를 예상해 정부 발표의 신뢰성이 논란을 빚었다. 민주노총도 정책보고서 ‘한·미FTA의 조작된 경제효과 비판과 본질적 문제점’(2011)을 통해 정부가 검증되지 않은 경제효과 분석방법론과 실증적인 근거가 없는 수치를 활용해 경제효과를 부풀렸다고 비판했다. 일반적으로 FTA 분석에 범세계적으로 사용하는 ‘연산가능일반균형모형’을 이용하면 한·미 FTA는 0.32%의 경제효과만을 유발하지만 정부의 예측은 여기에 자본축적효과와 생산성 증가율을 자의적으로 적용해 5.97%까지 부풀린 결과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오히려 FTA 발효에 따른 경제성장률 증가치는 사실상 ‘제로’에 가깝고, 대미 무역수지는 발효 후 15년이 지났을 때 총 70억7785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계속되는 논란 속에서도 한·미 FTA는 2007년 6월 30일 체결됐다. 이후 FTA는 미국 정권교체 등 양국 국내 정치변화에 따라 한동안 표류하다가 작년 6월 미국 정부가 자동차영역에 대한 부분적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논의가 재개됐다.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알려져 ‘퍼주기’논란을 남기기는 했지만 양국은 합의에 도달했고 지난 10월 미국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면서 한·미 FTA 처리는 한국 국회의 비준만을 남겨두고 있다.

FTA, 투자자유 위해 정책에 고삐 채우나

그동안 한·미 FTA를 둘러싼 관심사는 대부분 상품 무역에 집중돼 있었다. 협상의 득실은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를 중심으로 양국이 무역장벽을 조절해 ‘이익균형’을 맞추는 문제로 이해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쟁점으로 부상한 ‘투자자유화’야말로 한·미 FTA가 한국경제에 가져올 핵심적 변화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해영 교수(한신대 국제관계학부)는 “한·미 FTA에서 독소조항이 가장 많은 곳이 금융과 투자 분야”라면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정치의 흐름이 자유화·민영화에서 공공복지 중심으로 바뀜에 따라 투자협정은 한국 사회를 거꾸로 가게 하는 족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한·미 FTA에 포함된 ‘간접수용에 대한 손해 보상’이 초국적자본의 투자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적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직접수용’이 국유화, 몰수 등 재산권의 직접적 박탈이라면 ‘간접수용’은 국가의 조치가 개인 재산의 사용이나 수익을 제한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국가의 환경보호정책이 특정 기업의 수익 창출을 막는다면 이는 ‘간접수용’으로 정부는 투자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게 된다. 이때 ‘간접수용’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투자자가 당사국을 대상으로 국제 중재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보장한 제도가 바로 ISD 조항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여경훈 상임연구원은 “ISD 제도가 도입되면 투자자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상충될 때 정부가 국민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정책선택권이 제한된다”며 “간접수용 규정이 모호해 정책 수립 과정에서 심각한 위축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미국 폐기물 관리업체 메탈클래드사는 멕시코 중앙정부로부터 산루이 포토시 주의 폐기물 매립장 운영권을 땄지만 주(州)정부가 해당 지역을 자연보존지역으로 설정하면서 사업이 어려워지자 ISD 조항에 의거해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신청했다. 이에 중재재판부는 멕시코 정부의 환경규제를 간접수용으로 보고 1,660만 달러의 배상판결을 내렸다. ‘투자자의 합리적 수익 기대’와 공공복리를 위한 환경규제가 충돌할 때 투자이익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정부는 한·미 FTA의 영향에 대한 일각의 우려가 과장됐다는 입장이다. 외교통상부는 지난 3일 긴급 보도자료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절차(ISD), 공정한 글로벌 스탠다드’를 배포하면서 “ISD가 우리나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절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도자료에서는 미국 기업이 외국 정부를 제소한 108건 중 승소는 15건, 패소는 22건이고 나머지는 제소가 취하되거나 각하됐다며 국제 중재재판소가 미국에 유리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우려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정부는 한·미 FTA가 공공정책을 제약할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환경·보건 등 44개 분야에서 ISD 적용을 포괄적으로 유보해 문제될 것 없다며 메탈클래드사-멕시코의 사례는 주 지방정부의 자의적 환경정책에 의해 제약된 ‘투자자의 합리적 이익 기대’를 중재를 통해 보장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보도로는 우려가 해소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미국 기업의 승소율이 높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외국 기업이 미국을 제소한 15건에서 모두 승소하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미국 기업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또 이번 협정에서 국제관습법상 외국인 투자에 대한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인 최소 대우기준은 유보하지 못해 여전히 분쟁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이나 유통법, 상생법 등은 국제관습법으로 널리 인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최소 대우기준에 어긋나 외국인 투자자들의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메탈클래드사가 승소할 당시 중재재판부가 “환경보호 조치와 같은 동기나 의도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고려할 문제는 오로지 투자에 어떤 영향이 있는가다”라고 판시한 것도 비판의 근거가 됐다. 공공정책의 정당성 여부 판단이 자국정부가 아닌 국제 중재재판소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국민의 이익에 기초한 폭넓은 정책고려가 제한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해영 교수는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입김이 강한 상황에서 공정한 중재가 어려울 수 있다”며 “호주도 미국과의 FTA에서 ISD조항을 제외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ISD조항에 대한 문제 인식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제는 상존하고 있지만 정부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비준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야당은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를 결사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도 오는 13일과 26일 국회 일정에 맞춰 대규모 범국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혀 충돌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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