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은 구호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지난 8일(화)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던 윤모씨(46)가 자살한 채 발견된 데 이어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 만에 땅을 밟은 10일에는 쌍용차 해고자 차모씨의 부인 오모씨(41)가 숨을 거둬 하늘로 돌아갔다. 이로써 2009년 4월 쌍용차의 구조조정 이후 현재까지 스트레스성 질환과 자살로 사망한 노동자와 가족은 벌써 19명이 됐다. 하지만 앞으로도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8월 평택시 실태조사에서 쌍용차 해고자와 무급휴직자 중 52.5%가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의 충동을 느낀 적 있다’고 응답하는 등 구조조정 당사자와 가족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를 방관하지 않고 상처받은 이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출하고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지난 3월부터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심리 상담을 진행해왔으며 지난 10월에는 평택에 이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열었다. 『대학신문』은 정혜신 박사를 만나 정신과 의사로서의 그의 삶과 상처받은 이들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 하태승 기자 gkxotmd@snu.kr

정신과 의사로 산다는 것의 의미

정혜신 박사의 사회 참여적 삶의 배경에는 어린 시절 암으로 투병하다 12살 때 사망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의 가슴 아픈 기억은 그로 하여금 ‘의사가 돼서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겠다’는 꿈을 품게 만들었다. 이에 그는 연세대 의대에 진학했고 전공으로 정신과를 선택했다. “두세 개 과를 동시에 지원한 다른 친구들과 달리 정신과만을 생각하고 지원했어요. 그때는 정신과를 좋아하는 이유를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망,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욕구가 컸던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많이 우울했지만 정신과에 들어가면서 내 세상을 얻은 듯 정말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어요.” 정신의학은 이처럼 그를 ‘치유 받는 사람’에서 ‘치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마음에 대한 관심은 그를 사회적 약자들이 입은 깊은 상처에 둔감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는 정신과 전문의가 된 뒤 본업인 기업 인사들에 대한 심리상담을 하는 동시에 4년 전부터 공권력에 의한 고문 피해자들의 상담을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정씨는 이처럼 곳곳에 숨어 있는 상처 입은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자신의 직업의 본질이자 의무라고 말한다. “국가권력의 피해자들은 치유 받을 길이 별로 없어요. 어떤 고문 피해자는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70여일간 불법으로 감금당해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을 당하면서 큰 정신적 충격에 시달렸지만 2, 30년 전 정신과 의사들은 아무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해요. 전문가들도 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죠. 이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마음을 더 굳게 닫았고요. 이러한 사람들을 먼저 찾아가 치유하는 것은 제게 당연한 일이고 제 직업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숨어있던 상처에 다가가기까지

주로 고문 피해자들의 상담을 맡아 오던 정혜신 박사가 쌍용자동차의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손을 뻗게 된 것은 올해 초 쌍용자동차의 13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때부터였다. 2년 전 구조조정으로 무급휴직자가 돼 복직을 기다리던 임모씨는 지난 2월 어느 날 아침 돌연사한 채로 발견됐다. 그의 부인도 지난해 겨울 자살한 상황이었으며 통장 잔고는 4만원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침에 아이가 아빠의 방에 들어왔는데 아버지가 죽어있었다는 거에요. 부모가 전쟁에 파병된 것도 아니고 직장에 다니고 있던 것뿐인데 아이 둘이 순식간에 고아가 된 거죠. 전부터 쌍용차 소식을 접하면서 마음이 늘 무거웠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무작정 상담을 하겠다고 나섰어요.”

정씨가 상담을 시작하면서 마주치게 된 그들은 단순한 정신질환의 문제를 넘어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경찰, 회사가 제기한 100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 소송으로 수많은 이들의 통장과 집이 가압류됐으며 쌍용차 출신이라는 이유로 취직이 안 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신과 상담을 사치로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정씨는 정신 상담이 아닌 아이들 놀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홍보하면서 해고노동자 가족 30여명 정도를 모았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건 부모들의 시름과 죄책감을 덜어줄 수 있었기 때문에 쌍용차의 쌍시옷만 들어도 도망가던 이들이 모일 수 있었어요. 이와 관련된 사회적 기업의 도움을 요청했고 가수 박혜경씨가 기획한 ‘레몬트리공작단’도 이를 위해 달려 왔죠. 사람을 모으고 나서 자연스럽게 부모들과 얘기를 시작하니 그들이 평소 느끼던 공포와 두려움 등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날 오후부터 매주 한 번씩 그들과의 심리상담이 시작됐다.

정씨가 상담한 해고노동자들은 모두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77일 동안의 파업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었다. “식수와 약품, 전기가 끊긴 상황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경험, 수천명의 경찰특공대와 용역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짓밟힌 기억,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자신을 향해 새총을 쏘는 모습을 봤을 때의 씻을 수 없는 배신감 등으로부터 그들은 아직 자유롭지 못해요. 무엇보다 죽음의 문턱에서 온몸이 각성됐을 때 느낀 현실의 생생함은 평생 또다시 겪을 수 없는 것이죠. 이러한 공포를 끊임없이 재경험하면서 해고자들은 극심한 무기력감에 시달리고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를 지켜본 가족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청소년 자녀들은 사회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가출하는 경우도 많았다.

상처를 ‘와락’ 안아주기

정혜신 박사가 이들을 대면하면서 목표로 삼은 것은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느끼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가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자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끔찍한 경험을 했을 때 집단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직시하고 다시 평화롭던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점차 그는 평택시청의 회의실에서 일주일에 한 번 집단 상담을 하는 방식으로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는 곧 ‘와락’이라는 심리치유센터의 건립으로 이어졌다. 그는 “부모들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치료하기 시작하면서 일상 속에서 심층적이고 통합적으로 치유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며 “의학적 치료와 일상적 치유 프로그램들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심리치유센터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곳곳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와락’ 센터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였다. 그는 “전국에 100여개가 넘는 파업과 투쟁 지역이 있는 상황에서 통합적인 치유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번져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을 넘어 체계적인 모델의 설립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최근 ‘나는 꼼수다’ 등 언론을 통해 ‘와락’ 프로젝트가 소개되면서 2억원에 가까운 시민 후원금이 모였고 지난달 30일 평택의 ‘와락’이 개관했다. 그는 앞으로 ‘와락 영도’, ‘와락 유성’ 등 다른 지역으로 ‘와락’을 확대할 계획이다.

‘와락’에서는 연령대별로 놀이치료와 상담 등 의학적 치료부터 음악 및 미술 치료, 멘토링, 육아 프로그램 등 일상적 치유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프로그램들이 제공되고 있다. 이 중 정혜신 박사가 강조하는 것은 ‘와락’ 내부에 마련된 부엌과 식당이다. “하루에 세 끼 밥을 먹는 것은 일상성의 근본이에요. 사람이 제대로 먹지 못하면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질 수 없거든요. 투쟁하러 아빠들이 나가기 전에 아침밥을 먹게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오면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게 하는 것은 심리적 안정의 중요한 기반입니다.” 일상의 회복을 위한 밥 한 공기의 온기는 그 어떤 정치적 목적도 아닌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묶인 정혜신 박사와 ‘와락’ 후원자들의 따뜻한 마음과도 닮아 있었다.

고문피해자들부터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까지,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져온 정혜신 박사는 이를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그는 ‘인간의 근원적 품위’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분들은 모두 전쟁 같은 경험을 하면서 삶의 많은 부분이 허물어졌어요. 상담을 진행하면서 ‘내가 이런 경험을 했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만 이분들이 결국에는 상처를 극복해내고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며 살아가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까지도 하더라고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품위와 힘의 극대치를 순간순간 많이 느낍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요즘, ‘와락 바이러스’는 이처럼 이곳저곳에 퍼져나가며 사랑의 숭고함을, 사람의 위대함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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