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대신 대학입시거부를 선택한 고3 학생들 등장…
입시 위주 교육, 학벌에 따른 차별에 문제 제기

대부분의 고3 수험생들이 피 말리는 입시 경쟁에 투신하는 가운데 이러한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벗어나겠다는 고3들이 등장했다. 수능 당일, 이들은 시험을 치는 대신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했다. 『대학신문』은 수능 전날인 9일(수), 충무로의 작은 카페에서 있었던 입시거부자들의 공식선언 준비 현장을 찾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는 왜 이곳에 왔는가

카페에 모인 11명의 사람들 중에는 서로 아는 이들도 있지만 모임에 처음 참석한 사람도 있었다. 인터넷 기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김경수씨(18)는 같은 뜻을 가진 또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평소에 전 대학을 강요하고 학벌에 따라 차별하는 사회가 정말 잘못됐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전 프로그래머가 꿈이에요. 제가 대학에 가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게 되면 교과 과정 상 2, 3학년 땐 이미 습득한 프로그래밍 기술을 반복해서 배워야 해요. 등록금도 아깝지만 그보다 시간이 더 아까운 일이죠. 대학 다닐 4년 동안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몇몇은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지방에서 먼 걸음을 했다. 강원도 홍천에서 온 송준호씨(18)는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본인을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현실에서 앞날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이곳에서 도움을 받고 싶어 했다. “전 성실한 학생이었고 공부도 재미있어서 대학에 꼭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회운동을 하면서 공부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제는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생각보다 사회활동가로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하지만 주변에서는 맨발로 가시밭길을 가는 거라고 다들 말리세요. 어른들 말씀대로 아직 우리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 없이 살아가는 건 분명 모험일 텐데 저와 같은 선택을 하신 분들이 이런 것을 어떻게 감수할 건지,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해요.”

청소년 인권운동에서 입시거부로

이번 총회는 대학입시거부자들의 세 번째 정식 모임이었다. 청소년인권행동단체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던 5명의 청소년활동가가 제안해 지난 9월 3일 모인 것이 첫 출발이다. 창단멤버인 ‘따이루’씨(별명·19)는 14살부터 청소년인권운동가로 활동해왔다. “예전부터 사회활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중1때 초·중등교육법에 학생인권조항을 끼워 넣겠다고 서명 받으러 뛰어다녔던 기억이 나요.” 따이루씨와 함께 모임을 제안했던 장주성씨(19)도 고등학생 활동가다. “제가 청소년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1때에요.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체벌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시민단체에 참여해 학교에 체벌 중지를 권고하는 공문을 보내기 시작했어요.”

교사들의 부당한 체벌을 참을 수 없어 시작한 작은 움직임은 어느새 영역을 확대해 입시제도에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데 이르렀다. “고3이 되서 또래 친구들과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대학 진학만을 최선으로 강요하는 사회가 학생인권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입시거부가 본격적으로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 건 청소년 인권운동가였던 유윤종씨(사회학과 자퇴)가 대학거부를 선언하고 서울대를 자퇴하면서부터다. ‘준코’씨(별명·19)는 ‘서울대생의 자퇴’만 부각되고 고3 대학입시거부자들의 목소리는 외면당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세상은 공현(유윤종씨의 별명)을 주목하지만 사실 입시거부를 먼저 시작하고 선언한 건 우리 청소년들이었어요. 우리 사회가 어디에 집중하고 관심을 갖는지 다시 한 번 드러난 거죠.” 학벌을 중요시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나오는 순간에도 서울대라는 학벌만 주목받는 상황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우리가 거부하는 건 공부가 아니다

장주성씨는 대학만이 살 길이라고 세뇌시키는 사회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꼭 대학을 통해야만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건가요?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데 학력과 학벌에 따라 일방적으로 줄 세우고 차별의 근거로 삼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이처럼 대학을 강요하는 사회적 흐름이 교육의 본질을 왜곡시켰다는 데 공감했다. 따이루씨는 “경쟁 위주의 입시구조에서 진정한 배움을 추구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누군가가 배움에 있어서 학생의 개인적 주관을 존중하는 독일 학교에서는 시험지에 객관식 문항을 넣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채점하기 어렵겠다는 말이 나오자 준코씨가 질문을 던진다. “자유로운 배움에 왜 굳이 서열을 나눠야 해요? 나는 공부한 성과를 숫자로 채점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아요.”

이들은 현 대학입시체제에서 승리자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서울대생들은 독한 사람들이죠. 경쟁에서 승리한 1등들이잖아요. 그런데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과연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냐고, 졸업하고 나서 뭐할 거냐고. 일단 일류대에 입성하기만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고 주입시키는 이 사회에서 오로지 대학이란 목표를 향해 달려왔을 텐데, 그들의 앞으로의 계획은 대체 뭘까요.”

걸음은 흔들리지만

이들도 대학을 포기하면서 상당한 불안감을 느낀다. 소신에 따라 대학입시를 거부하면서도 고졸자로 살아가는 것이 이 사회에서 힘든 일임을 알기에 잘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고 한다. 송준호씨는 “사람들은 입시거부운동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한다”며 “나를 말리는 어른들이 잘못된 건지, 대학을 거부하는 내가 잘못된 건지 답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회의가 무르익던 와중 준호씨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내일 수능을 치러야 할 것 같아요. 서울 사시는 작은아버지까지 제가 입시거부하는 걸 아시고는 지금 데리러 오셨대요.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누군가 물었다. “본인 의사는요?” 갈등하던 준호씨는 “수능을 보고 싶지는 않지만 주변 사람들의 바람에 정면으로 반하기는 어렵다”며 자리를 떴다. 본래 시험을 볼 예정이었던 현생씨도 함께 일어섰다.

이렇듯 대학입시거부에 동감하는 이들 중 다음날 수능을 치른 이들도 있다. 현 교육제도를 비판하면서도 학벌 중심 사회 구조에 반할 용기까지는 나지 않거나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것이다.

한편 대학입시거부자들 중에도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대학에 진학해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길 꿈꾸는 이들이 있다. 장주성씨는 신학대에서 공부해 목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입시 거부는 잘못된 입시교육을 비판하고 대학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규정하는 이 사회를 규탄하는 거지 대학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은 이렇게 사회를 바꾸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나중에 꼭 제대로 원하는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입시거부에 머물지 않는 움직임 

이들이 거부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줄 세우기만을 위한 경쟁이다. “배움 없이는 사람답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은 일회성 입시거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안교육도 모색하고 있다. 밤늦게까지 이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안 대학을 만들고 이를 지탱할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자는 의견과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했다.

입시거부자들은 이 움직임이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동력이 되길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문화와 예술의 영역을 활용해 사람들의 공감을 유도하자는 의견들이 제기됐다. 내년의 총선, 대선 때는 관련 정책 제언도 할 예정이다. 따이루씨는 “입시제도는 사회 여러 문제들과 함께 얽혀있다”며 “단편적으로 대학입시에만 문제를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교육 문제를 전반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임의 향후 계획에 대한 논의를 마치고 이들은 곧 다음날 예정된 대학입시거부선언을 위해 선언문 읽기 연습에 열을 올렸다. 선언문에는 줄 세우기식 무한경쟁교육 반대,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 반대, 학생 인권 보장 등의 8대 요구안이 담겼다. “그 부분은 이 단어를 조금 더 세게 읽어봐. 사람들이 듣고 우리가 정말 원한다는 걸 알 수 있도록.” 선언문 낭독 소리가 그치지 않는 가운데 이들의 밤도 새고 있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