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이유뿐 아니라 평화주의 사상, 개인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늘어나는 추세
부정적 여론을 이유로 지지부진한 대체복무제 도입… 소수자 인권문제 차원에서 적극 추진 필요하다는 주장 제기돼

지난 1일(화) 최기원씨(경제학부·04)가 자신의 입영날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최씨는 기자회견에서 2009년 용산참사를 보며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생겼고 자신의 양심이 불의한 공권력에 가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씨뿐 아니라 매년 수백명의 사람들이 병역을 거부하며 스스로 감옥살이를 선택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종교적 이유부터 평화주의와 위계질서 거부까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처음 이슈화된 것은 10여년 전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집단적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부터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성경에서 예수가 칼을 든 제자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고 말한 구절을 ‘무기를 들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해석해 군사훈련을 거부한다. 이들은 일제강점기부터 신자 38명이 체포당하는 등 탄압을 받았으며 해방 이후에도 병역거부를 이유로 징역살이를 해왔다. 2009년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해방 이후 병역거부로 수감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는 1만6천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의 병역거부는 종교적인 이유에 국한되지 않는다. 병역거부자와 후원인의 모임 ‘전쟁없는세상’의 자료에 따르면 평화주의 사상과 개인의 신념을 근거로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병역거부자들의 소견서를 살펴보면 과거 폭력을 경험하면서 군사훈련과 위계질서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임재성씨(사회학과 박사과정)는 “스스로 평화운동을 하고 간접적으로 전쟁을 목격하면서 군대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고 이것이 자연스레 양심적 병역거부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성소수자들은 아직 군대가 그들의 권익과 인권을 지켜줄만한 제도적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며 입대를 거부하기도 한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장병권 사무국장은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군대에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으며 무언의 압력에 의해 그것을 숨길 것을 강요당한다”며 “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성소수자들은 병역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회적으로 수용되기에는 이르다?

아직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병역이라는 말 자체가 도덕화돼 병역거부가 곧 의무에 대한 회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제도적 시스템에도 반영돼 여전히 정부와 사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지난 8월 헌법재판소(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판결문에서 위 조항에 대해 “국가안보 및 병역의무의 형평성이라는 중대한 공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며 “국방의 의무는 국가의 안전보장 실현을 위해 헌법이 채택한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대체복무만으로는 국방의 의무를 대신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양심적 병역거부가 사회적, 법적으로 외면당하면서 2005년부터 지난해 7월 말까지 징역형을 살거나 재판 중인 병역거부자는 3,674명에 이른다. 이들은 평균 2~4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출소 후에도 5년 동안 국가고시 응시가 금지되는 등 각종 불이익을 받는다. 이에 전문가들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현재의 시각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담당 박순호 간사는 “병역거부 문제는 소수자 인권문제인데 법원과 정부에서는 이를 공리주의적 차원에서만 접근하려고 한다”며 “개개인의 인권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 제19조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대체복무제와 같은 대안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과거에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헌재가 대체복무제 논의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고 2006년에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을 중단하라는 권고를 내린 바 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지난 2007년 국방부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발표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민정서와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등을 근거로 대체복무제 도입이 시기상조라며 사실상 백지화시킨 상황이다.

대체복무제, 현실로 만들려면

일각에서는 현재 시행 중인 재난구호요원, 사회공익요원 등의 제도를 손질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공익근무요원, 의무소방대원 등 현행 대체복무는 특정한 신체조건을 요구하는 등 제한이 있거나 몇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아야 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입장에서는 완전한 대체복무제라고 보기 힘들다. 전쟁없는세상 여옥 활동가는 “현행 제도들은 실제로 해외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체복무제도를 변형해 수용한 것으로 군사훈련을 포함하고 있어 완전한 대체복무제로 볼 수 없다”며 “제도 수정을 통해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체복무제는 일반 군복무와 형평성에서 어긋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가 군복무를 기피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복무기간과 강도를 조절해 형평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독일 등 외국의 경우 대체복무기간이 2배 가까이 길고 복무강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오재창 국제연대위원장은 “외국 어디에서도 대체복무로 지원자가 몰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며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볼 때 예상되는 문제점들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지난 9월 민주당 김부겸 의원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병역법 일부 개정법률안 2건 및 향토예비군 설치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오재창 위원장은 “개정안의 통과여부는 알 수 없지만 국회에서 논의된다는 것 자체가 대체복무제의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여옥 활동가는 “민족주의 정서가 강하고 북한과 군사적 대치가 지속되는 한국의 상황에서 대체복무제를 국민의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어 도입하기는 어렵다”며 “정부와 여당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인권과 양심을 존중한다면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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