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권연대로 서울시장 선거 승리하면서 통합 논의 가속화…
정치적 이해 엇갈려 완전한 통합은 불확실

지난 4·27 보궐선거와 10·26 재보궐선거로 드러난 선거 연대의 위력이 야권의 재편을 가속하고 있다. 정치권을 뒤흔들던 통합 논의는 민주노동당(민노당)·국민참여당(참여당)·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의 ‘진보통합’과 민주당·혁신과통합(혁통) 중심의 ‘민주통합’으로 점차 정리되는 양상이다. 야권 재편과 통합 방향이 내년 총선 구도를 상당히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되지만 각 세력의 정치적 이해가 얽혀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두 바퀴로 달리는 야권통합

먼저 통합의 속도를 내는 것은 진보통합 측이다. 민노당·참여당·통합연대는 지난 17일(목) 합당에 최종 합의했다. 지난 10일 실무협의를 통해 △대의기구 구성 방식(민노당 55%, 참여당 30%, 통합연대 15%) △비례대표 30% 외부 개방 △시·도당 운영은 자율 협의 △공동대표 구성 등에 잠정 합의한 지 일주일만이다.

진보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진보정당들의 지지부진한 현실이 일차적 원인이 됐다.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출범한 민노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으나 그 뒤로 진보정치는 분당과 내부 반목으로 현격히 존재감을 상실해 왔다. 민노당 이정희 국회의원실 이소희 공보부장은 “그동안 진보정당이 자신감 부족과 갈등으로 위축돼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통합의 이유를 밝혔다.

민주당과 혁통도 지난 20일 ‘민주진보 및 시민 통합정당 출범을 위한 연석회의’(민주통합)를 출범하는 등 본격적으로 움직임에 나섰다. 당초 민주통합은 진보정당을 포함한 야권대통합을 지향했으나 진보통합이 별도로 진행됨에 따라 우선 참여 가능한 세력끼리 협상을 시작했다.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출범식에 참석하고 한국노총이 논의 참여 의사를 밝히는 등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가담하는 양상이다. 민주통합은 다음달 17일 통합전당대회 개최를 목표로 여러 정파들과 합의를 모색하고 있다.

야권 통합의 원동력은 야권이 연합해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주로 지난 두 번의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거론된다. 한명숙(민주당)과 노회찬(진보신당)이 동시에 출마했던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박빙의 접전 끝에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으나 지난 10월 재보궐선거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가 성사돼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이 됐다. 다음해 총·대선 국면을 앞둔 상황에서 야권이 통합을 이뤄내야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범야권 정계 인사들과 ‘국민의명령’ 등 시민단체가 주도해 통합을 이끌고 있다.

단일진보정당 부활할까

그러나 통합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참여당의 진보통합 참여다. 일각에서는 자유주의적 정강을 표방하는 참여당은 계급정치를 지향하는 진보정당보다는 오히려 민주당과 정치색이 가깝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를 두고 참여당은 적극적 계승을 표방해 왔고 진보정당은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비판하는 입장이다. 또 비정규직 문제나 정리해고 등 노동계 사안에 대한 두 세력의 태도에 온도차가 있어 그 접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주요한 논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진보정치 안팎에서는 갈등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지도부의 합의에도 각 당 내 반발 여론이 상당한 것이다. 민노당 대의원들은 이미 지난 9월 참여당과의 통합안을 한 차례 부결시킨 바 있으며 진보신당의 경우 민노당, 참여당과의 합당 문제를 거치면서 통합연대(탈당파)와 잔류파로 당이 나눠지기도 했다.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은 “참여당과의 통합은 진보정치의 우경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대는 원칙 없는 통합”이라고 비판했다.

진보통합 측은 내부 의견조율에 나선 상태다. 참여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공식 노선을 수정하는 등 진보적 색채를 강화했고 민노당은 중앙당 합동회의를 열어 통합논의 상황을 설명하는 등 당내 반발을 수습하고 있다. 다음달 창당을 목표로 강령, 당헌 등 남은 쟁점 사안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최종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등 사회운동세력의 입장도 진보통합 향방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은 민노당 출범에 큰 역할을 한 이래로 오랫동안 민노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민주노총 산하의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전·현직 위원장들이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통합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참여당 통합 반대 금속 노동자 선언’이 조직되는 등 이견이 적지 않다.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관계자는 “아직 진보통합에 대한 민주노총의 공식적 입장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면서 “다음해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대통합의 전망은

혁통은 진보통합을 포함한 제반 범야권 세력이 모두 민주통합에 참여해 야권대통합을 이룰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진보통합의 참여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혁통은 이들이 언제라도 합류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촉구한다는 입장이다. 혁통 오종식 사무처장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하는 가장 유력한 방안은 야권이 하나의 정당으로 한나라당과 일대일로 대결하는 방법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진보통합 측은 선거연대로 충분하다는 분위기다. 각자의 정치적 지향이 다른 상황에서 무리한 통합은 당의 정체성을 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난 4.27 보궐선거와 10.26 재보궐선거에서 정책 공조를 기반으로 한 야권 연대로도 상당한 위력을 드러낸 만큼 무리하게 정당 통합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여러 정당이 함께 선대위를 꾸렸던 지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박원순 후보 캠프의 경우처럼 공동의제를 바탕으로 선거 공조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강원택 교수(정치학과)는 “민주당 독자적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이번 선거로 드러난 만큼 총·대선의 국면에서 선거 연대 수준의 협력이 필요할 것”이라며 “하지만 진보통합은 계급정치적 속성이 강해 민주당·혁통 중심 통합과의 완전한 통합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다만 선거법 개정 공동추진 여부에 따라 가설정당(페이퍼정당) 수준의 통합 가능성은 남아있다. 노회찬 전 대표 등 진보진영 일각에서 민주당이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을 약속한다면 정당 통합까지도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혁통 측도 이를 긍정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제의 장단점을 보완한 것으로 각 정당이 정당득표율과 일치하는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사표를 방지해 여론을 공정하게 반영하고 지역적 기반이 취약한 정당들도 원내진출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그동안 진보정당들이 도입을 주장해 왔다.

나아가 진보와 민주 양 세력이 2012년의 ‘연립정부 구성’을 목표로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심상정 전 대표 측은 “각 세력의 정치적 독자성을 지키면서도 진보적 연립정부를 통해 대중적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혁통 측도 선거연합과 연립정부가 보장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는 법안을 공동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이정희 의원실 측은 “일단은 총선을 통해 통합진보정당이 정치적 실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연립정부 구성은 그 이후에 정치 공학적 차원에서 고려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교수 등 정당 바깥 유력 인사들의 거취도 야권 통합의 변수로 남아있다. 혁통 회원이기도 한 박원순 시장은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바 있고 지난 13일 민주통합 준비모임에도 참석해 야권통합정당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안철수 교수의 정치참여가 불확실하고 ‘제3 정당론’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어 당적을 갖지 않고 남아있으리라는 예측도 있다.

강원택 교수는 “재편이 진행될수록 야권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치열해질 것”이라며 “통합 과정에서 누가 효과적인 조정자 역할을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야권통합은 향후 한국 정치 판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당분간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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