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식당. 모두들 신랑과 신부에 대한 관심보다는, 식당 음식이 동이 나기 전에 빨리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분위기.


5월 1일에 있을 내 결혼식을 위해  한 번도 보지 못한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다. 친척 어르신의 안내로 친척들 한 분, 한 분께 90도로 인사를 하며 결혼식을 알렸다. 식사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 사람들과 하객이 적을까 걱정하는 소심증 환자가 만나는 자리라고나 할까.


그래도 어색하게 말을 꺼내 본다.
“5월 1일에 저 결혼합니다.”
“그래? 신랑은 뭐 하나?”
“설계사무소 다닙니다.”
“아이구, 월급이 적어서 생활이 되겠                 
나?”
속에서 불뚝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애써 내리누르고는 화사하게 웃으며, 다음엔 더 좋아지지 않겠냐며 너스레를 떨어본다.
“안녕하세요. 저 3주 후에 결혼합니다.”
“그래? 너는 뭐하냐?”
“아직 학생입니다.”
“학교는 어디 다니냐?”
“어디 다닙니다.”
“그래? 우리 며느리가 그 학교 석사 마치고 Y대 나온 우리 아들이랑 지금 미국 가 있다. 우리 며느리 친정아버지가 어느  대학 총장이고, 그 집이….”


전 단계까지 참았던 울화통이 다시 참을 수 없는 단계로 진전한다. 내 결혼과 그 댁 며느리의 유학이, 또 집안 상황이 무슨 상관인지. 더 듣기 싫어서 중간에 나오는 데 마치 구정물을 마신 듯한 느낌, 괜히 갔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정말 사람들은 왜 이렇게 숫자를 ―나도 그 부분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긴 하지만 ― 좋아한단 말인가.


창턱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는 분홍빛의 벽돌집을 보았다고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고, 얼마짜리 집을 보았다고 하면 ‘참 좋은 집이구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내게 축하의 말보다 다른 것을 먼저 질문했던 그 분들에게 결혼이라는 것은 그들이 만족할 수 있는 조건으로 조각조각 끼워 맞출 수 있는 모자이크와 같은 것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것인가 보다.


내게 만약 그 사람의 인성은 어떠냐고, 서로 어떤 점이 잘 맞느냐고, 혹은 둘이서 가지고 있는 희망은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얼굴을 붉히며 행복하게 대답했을 것 같은 데 말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그 말이 요즘 들어 더 절실히 가슴에 와 닿는다. 가식적인 축하와 계산기 같은 질문들 속에 있기에 그렇다.


문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 때까지 술을 마시며, ‘너는 아직 하심(下心)을 몰라. 결혼 생활을 잘하려면 좀더 진실해져.’라고 눈물이 쏙 빠지게 꾸짖으시고는, 손가락 펼친 듯 조화롭게 뻗어나가는, 봄물 오른 나뭇가지의 아름다움을 가리키시던 한 선생님의 충고는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이었다.


돈을 요구하는 한의사 남편과 이혼한 여성이 소송에서 승소하는 것을 보고 씁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사람이 처음부터 조금 더 마음의 향방에 귀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떳떳하게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 더 진실해지고, 조금 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충실해지리라. 지키기엔 어렵지만,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내가 얻은 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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