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否定)’의 선택으로 내몰려야 했던
소설 속 바틀비와 현실의 강정
평화가 보장되는 강정은
소설 속 허구일 뿐일 것인가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모비딕」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한 대목이다. 상황을 설명하면 이렇다. 때는 1853년 미국의 한 변호사 사무실. 모든 문서 작업이 직접 써서 이뤄지던 시절 필사를 하는 필경사의 업무는 상당했다. 바틀비는 평소 놀라운 업무 속도로 많은 양의 업무를 소화하며 낮이고 밤이고 흡사 기계처럼 일해 왔다. 일을 주면 주는 대로 다 처리하니 그를 고용한 변호사로서는 꽤나 만족스러운 직원이었던 셈. 그러던 어느날, 여느 때처럼 변호사는 그에게 일을 맡기지만 바틀비는 “하지 않는 것을 택하겠다”며 일을 거부하고 나선다.
고용자에게 힘없는 노동자가 던진 투정으로 치부하고 덮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화법이 적극적이다. ‘하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을 택하겠다’라니. 상황이 심각해지자 바틀비를 고용한 변호사는 ‘일을 하든 그만두든 하나를 고르라’거나 ‘두 일 중 하나만 하라’며 선택을 권하지만 바틀비는 그럴 때마다 ‘떠나지 않는 것을 선호’하고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며 상황을 피해간다. 어쩌면 바틀비에게 그 선택은 이미 변호사의 권력에 의해 강요받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부정(否定)을 선택하고 나선 바틀비의 독특한 화법은 강요받은 권력에의 (소극적이지만 동시에) 적극적인 저항의 모습으로 해석된다.

소설 「필경사 바틀비」는 이런 바틀비의 행동을 시종 변호사의 시선에서 건조하게 풀어나간다. 그런데 요즘 이 책을 다시 보면 소설의 행간에 덤덤히 내놓아진 바틀비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구럼비 해안 발파로 연일 긴장감이 감도는 강정마을의 현실 때문이리라.

사실 해군기지 건립을 둘러싼 강정마을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7년 해군기지 건립이 결정된 후 강정마을을 지키려는 이들의 분투는 6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애당초 날치기로 시작된 해군기지 사업에 주민들이 반대 목소리를 표출할 수 있는 통로는 없었다. 5일만에 졸속으로 이뤄진 여론조사는 표본추출과정에서 공정성 문제를 낳았다. 여론조사에 반발해 주민들이 실시한 투표 결과 94%의 절대 다수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했지만 정부는 적법한 절차를 따랐다는 말만 반복할 뿐 논의 요구에는 귀를 닫고 있다.

강정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바틀비의 모습이 겹쳐지는 건 바틀비의 선택지처럼 주민들이 받아든 선택지 역시, 충분한 선택의 여지가 있어보이지만 실상 이미 선택된 하나의 통보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정부라는 거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택하는’ 부정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간 수없이 많이 있어온 현장집회와 촛불시위, 문화·예술인들의 공연은 그들이 그들의 선택을 실행에 적극적으로 옮긴 절박한 사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절실한 부정의 선택을 통해 바틀비와 지금 강정마을을 지키려는 이들이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단지 인간이기에 주장할 수 있는, 그리고 주장돼야만 하는 기본적인 가치다. 바틀비는 자본의 노예가 아닌 사람답게 살 수 있기를 바랐고 강정의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 터전에서 평화로운 삶을 이어나가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이나 현실이나 이들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지켜줄 수 있는 큰 힘은 도리어 대척점에서 이들을 내몰고 있다.

마치 스포일러를 보는 것처럼 소설 속 바틀비와 궤를 같이하고 있는 강정이지만 그 끝이 같을지는 미지수다. 소설 속 변호사는 바틀비를 해고하고 그를 끊임없이 몰아붙이지만 극의 마지막, 바틀비의 행동을 인정하며 오히려 그를 ‘진정한 인간’이라 부르는 등 그에게 압도당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부는 어떤가. 지난 2년간 강정 해군기지 건립을 반대하다 연행된 사람만 300명이 넘는다. 폭력과 무조건 밀어붙이기를 기반으로 한 정부는 이제 구럼비 바위를 예정대로 폭파하고 총선 전까지 말뚝을 박겠다는 열의를 자랑스레 내비치고 있다. 역시나, 소설과 현실은 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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