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양 교육, 어디로 가고 있나
서울대 교양 교육, 어디로 가고 있나
  • 나영인 기자
  • 승인 2012.03.11 0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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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육원 설립 10주년, 서울대 교양 교육을 진단하다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안(2007-2025)에 따르면 학부교육은 ‘우수한 미래형 지도자 양성’을 위해 학생들이 ‘폭넓은 교양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인접 학문의 발전까지도 이해하고 수용하는 유연한 사고’를 갖출 것을 지향한다. 그런데 과연 서울대 교양교육은 이에 상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2013년 학과제 확대안과 기초교육원 설립 10주년을 맞아 관악의 교양교육을 진단해본다.

계륵(鷄肋)같은 교양교육?

한국 대학사회에서 교양교육이 전공교육에 비해 소홀히 다뤄져 본래의 교육적 의의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교육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미 수차례 지적돼왔다. 손동현 교수(성균관대 철학과)는 “그동안의 대학교육은 전공교육의 주 과제를 ‘특화된 전문직업교육’에 두고 여기에만 열중해 온 것이 사실이고 그러다 보니 교양교육은 등한시돼 왔다”고 말했다. 서울대도 예외는 아니다. 기초학문 육성정책과 교양교육 강화 방안을 연구해온 김남두 교수(철학과)는 “지금처럼 ‘전공 중심’의 체제가 뿌리 깊은 상황에서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편향된 교육환경의 배경에는 한국 근대사의 경제·사회적 사정이 자리 잡고 있다. 산업화 시기 급속히 국가사회를 근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전문분야 지식과 기술을 단기간에 학생들에게 교육할 필요가 있었다. 군사정부의 독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던 1968-88년 시기에 대학교육은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도구로 상정됐다. 국민윤리, 교련, 한국사 등 필수교양으로 지정된 교과 역시 명목상 교양교육이자 국민 국가 달성을 위한 결속력 마련이라는 목적 하에 교육됐다. 학생들은 일정한 학점 테두리 속에서 교양과정을 밟았고 결과적으로 이렇듯 타율적으로 이뤄진 교양교육은 학생들 사이에서 교양과목이 졸업을 위해 ‘울며 먹는 겨자’라는 인식을 각인시켰다.(기초교육원,『교양교육 60년사』)

그래픽: 김태욱 기자 ktw@snu.kr



기초교육원 출범, 그러나

현재 서울대는 소홀해진 기초교양교육을 강화하고 학과 간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일환으로 기초교육원을 두고 있다. 현재의 기초교육원이 출범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975년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기 전까지 기초교양교육을 전담하던 공릉동 교양과정부(1968-75)는 단과대가 통합·이전되는 과정에서 폐지됐다. 이후 교양교육의 교과과정은 인문·사회·자연대 등 각 단과대로 분산 배정됐고 운영책임은 교무처로 이관됐다. 백종현 교수(철학과)는 “교양과정이 각 단과대로 넘어감에 따라 전공교육에 업무 비중이 쏠리게 됐고 운영책임을 맡은 교무처 역시 행정업무로 인해 교양교육에 전념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996년 본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는데 학부생 1,300여명 중 15%가 교양교육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고 답했으며 90%의 학생들이 수업 준비 없이 강의에 들어간다고 답했다. 이처럼 교양 과목을 체계적으로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자 교양교육을 전담할 부서 설립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고 그 결과물이 바로 기초교육원(2002)이다.

설립 10주년이 된 기초교육원은 지금까지 기초교육 강화를 위한 여러 긍정적 기능들을 수행했다. 기초교육에 대한 장·단기 발전 계획 수립, 교양교과과정 개발·편성 및 조정, 신입생 세미나·사회봉사 교과목 등의 특별 프로그램 개발 등 기초교양교육 강화를 위한 제반 사안들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기초교육원이 교양교육의 전반적 정책 수립과 효율적 운영을 위한 권한과 책임이 분명한 중핵 기관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김남두 교수는 “기초교육원이 교양교육과 관련해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언을 하는 등 기본적으로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단지 ‘지원시설’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현 기초교육원 부원장 이일하 교수(생명과학부) 역시 “일반교양과목처럼 기존 단과대에서 맡고 있는 교양교육 커리큘럼은 기초교육원 차원에서 새로 편성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기초교육원의 권한과 책임에 대한 지적은 기초교육원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라기 보다는 서울대 교육체제 전반과 관련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기초교육원의 설립취지는 장기적으로 ‘학부대학-전문대학원’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중간단계로 제시된 기구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교내에서 활발히 논의됐던 ‘학부대학-전문대학원’ 체제는 기초학문 중심의 폭넓은 기초교양교육을 실시하는 ‘학부대학’과 법학·의학·경영학 등의 응용학문을 담당하는 ‘전문대학원’으로 이뤄진다. 당시 ‘서울대학교 학사 조직 개편안(2004)’을 발표했던 황수익 명예교수(정치학과)는 “학부대학(University College)이란 흔히 알려져 있듯 일괄적으로 학생을 뽑아서 나중에 다시 전공을 나누는 형식이 아니라 공대·미대·음대를 제외한 인문·사회·자연대를 학부대학으로 통합해 기초교양교육만을 담당하는 형태의 대학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교양교육과 관련한 모든 관리가 일원화된 형태로서 제안된 것은 학부대학 모델이지 현재처럼 광역화 제도와 기초교육원이 공존하는 모델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 기초교육원장 박은정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초창기 기초교육원은 학부대학의 이념하에 활동했지만 지금은 더이상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교양교육의 이상, ‘학부대학

그렇다면 왜 ‘학부대학’이 교양교육 강화를 위한 대안으로 제시됐던 것일까. 교양교육의 중요성과 국내 교양교육 체제의 개선에 동의하는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학부대학’ 체제는 지금과 같은 전공학과 중심 체제에 대한 이상적 대안으로 여겨진다. ‘학부대학-전문대학원’안 역시 지난 2002년부터 시행된 광역화 제도가 교양교육을 강화하고자 했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제안됐다. 현 기초교육원장 허남진 교수(철학과)는 “지금까지 시행된 광역화 제도는 학부대학과는 전혀 다른 형태”라며 “광역화 제도는 입학할 때 모집을 어떻게 하느냐와 관련할 뿐, 1학년 때 학과에 소속되지 않는 점을 제외하면 2013년부터 시행될 학과제 확대안과 사실상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특정 학과에 소속돼 그 학과의 커리큘럼을 이수하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구성된 학제를 따르는 교양중심의 학부대학에 대해 손동현 교수는 “산업화 시대에 요구됐던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만이 아닌 정보사회에서 요구되는 융·복합적 지식이 습득 가능하다”고 평했다. ‘학부대학-전문대학원’ 체제는 서울대 교수사회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2006년 『대학신문』에서 인문대, 사회대, 사범대 교수 9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 현행 광역화 제도의 대안으로 32.2%가 ‘학부대학-전문대학원’ 체제에 동의해 학과별 모집(50%)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대학신문』 2006년 4월 10일자)

학부대학은 미국식 대학교육 시스템, 특히 하버드 대학이 대표적인 모델이다. 이미 1980년대부터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전공을 결정하지 않고 ‘하버드 학부대학’에 입학해 광범한 기초교육을 받는다. 고전·음악·수학·천문학 등 광범한 기초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하버드 학부대학의 FAS(Faculty of Art and Science) 시스템에 따라 학생들은 폭넓은 기초교양학문 교육을 제공받는다. 널리 알려진 하버드 의대나 법대는 응용분야이기에 FAS와는 별도로 대학원에서 운영되는 것이다. 황수익 교수는 “미국 대학은 기초교양교육에 상당한 관심을 가져 왔다”며 “하버드대를 비롯해 상당수의 세계적 대학들이 학부대학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식 학부대학 모델을 부분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대학 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출범 3년째를 맞고 있는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다. 기본적으로 하버드대의 교육이념을 따라 경희대는 신입생 전체가 전공이나 소속 캠퍼스에 상관없이 ‘중핵(core)교과 과목’을 수강한다. 중핵교과과목 ‘문명전개의 지구적 문맥 1, 2’는 인문·사회·자연과학 간의 학제적 성격을 지향한다.

관악의 잠든 교양을 깨우기 위해

하지만 경희대식 학부대학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허남진 교수는 “하버드 칼리지의 경우 칼리지 교수들이 교양교육 커리큘럼을 모두 장악하고 있지만 경희대의 경우 각 단과대 교수와 칼리지 교수가 구분돼 전체 교수들이 교양교육에 모든 역량을 쏟기 어렵다”며 “장기적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될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손동현 교수 역시 “1학년 때만 교양교육을 받고 다시 전공으로 진입한다는 점에서 학부대학 모델을 온전히 만족시킨다고 보기엔 미흡하다”며 “중핵교과라는 하나의 과목에서 여러 기초학문들을 아우르는 교육을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했다.

학부대학 체제가 서울대에서 실현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도 학생들의 교양교육과 생활 전반을 관리할 시스템의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허남진 교수는 “하버드대의 경우 전체 학생 수 대비 교수진의 비율이 서울대에 비해 훨씬 높을 뿐 아니라 재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기숙사 생활에서부터 교육까지 칼리지에서 담당할 수 있다”며 “학부대학을 이상적으로 생각하지만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시하면 오히려 학과제보다 부작용이 심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학부대학이 안착하기 어려운 핵심 요인은 전공교육을 중시하는 통념이다. 손동현 교수는 “교수들, 특히 기초학문 교수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전공학과 공동체가 와해되길 원치 않는다”며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전공 학과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학과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학부대학 체제가 교양교육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이었던 만큼 학부대학의 실현과정에서 봉착했던 난제들은 동시에 서울대 교양교육이 헤쳐 가야할 과제들이다. 박은정 교수는 “특정 분야에 국한된 지식만으로는 더이상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어려울 만큼 급변하는 지식정보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안목을 갖춘 인재”라며 “설령 학과제를 확대한다고 하더라도 교양교육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두 교수는 “아직까지 서울대는 단과대 학과들의 연합체이지 진정한 의미의 종합대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종합대학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분과 학문 중심의 체제를 벗어나 교양교육에 대한 꾸준한 제도적 지원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기초교육원을 비롯해 교양교육의 제도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실천적 관심과 지원이 이뤄질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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